눈사람 레코드 (17) 그게 다 외로워서래 / 김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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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다발의 시선 / 김목인 (2013)

K가 내게 말했다. 고독한 시집을 추천해 달라고. 나는 잠깐 고민하는 척 하다 최하림 시집을 읽어보라고 말했다.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은 라면이 불기 전에 어서 먹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K는 포크로 떡볶이를 찍으며 최하림 빌리러 도서관에 가자라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왜 최하림이 떠올랐을까. 말년에 투병을 하는 모습이 쓸쓸해 보인 걸까. 그의 시에서 느낄 수 있는 내면의 한랭전선 때문일까.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풍경 뒤의 풍경>,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 등. 최하림의 시집은 아이슬란드의 작은 마을 같다. 침엽수에 흩날리는 눈 같다. 혹시 스승을 좋아해서 이름의 ‘림’자를 필명으로 쓴 여림 때문일까. 하루종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찾다가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여림 때문일까. 신춘문예로 나왔지만 발표작 한 편 없이 유고시집만 남긴 제자 여림을 생각하며 최하림은 시 ‘메아리’를 썼다. 성호 이익과 그 문하가 팠다는 우물을 들여다보며 최하림은 속으로 눈물을 흘렸으리라.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을 알아보는 걸까. 그는 외로운 혁명가 김수영 평전을 내기도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낸 책은 <러시아 예술 기행>이다. 차가운 인생이다. K가 최하림의 시집에서 고독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내가 더 궁금한 것은 K가 왜 고독한 시집을 찾는가 하는 점이다. 김목인은 노래한다. ‘그게 다 외로워서래 / 그가 굳이 옷을 챙겨 입고 라면을 사러 가는 것도 / 티비를 켜놓고 잠드는 것도 / 그게 다 외로워서래’. 커피 자판기 앞에서 정치가 이렇다저렇다 말하는 것도, 홈쇼핑에서 여행 상품이 나오면 집중해서 보는 것도, 우체국 앞을 지날 때는 괜스레 한 손을 호주머니 속에 넣고서 가로수의 우듬지를 쳐다보는 것도. /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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