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의 제주담론] (31) 세상의 모든 일보다 급한 일, 제주어 살리기 ⑤
-도지사 직속 제주어살리기운동본부 설치해야

보다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제주어문화운동이 시작되어야

죽어가던 언어의 불씨를 되살린, 앞의 성공적인 사례들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전면적인 언어부활정책을 펼쳤다는 점이다. 현재 제주어의 위기를 지방정부만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님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이는 또한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만으로는 제주어의 사멸을 막을 수 없다는 한계를 읽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브르타뉴어의 예를 놓고 보면, 현재 우리의 제주어 살리기 정책은 위기의 국면에서도 너무나 소극적이며, 어쩌면 ‘제주어 살리기 이벤트’를 벌이는 수준의 노력에 그치고 있다고 보인다. 이렇게 간다면, 필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이든 프랑스든 결국 국가가 나서서 전반적인 정책과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자했으며, 그렇게 했을 때 결실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국가가 나서야 한다. 국가 차원의 전폭적 지원과 지방정부의 적극적 육성노력에 의해, ‘제주어 살리기’의 전반적인 판짜기를 다시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브르타뉴어의 예에서 보듯, 유아․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전승교육과 생활 속의 ‘이중언어생활’의 실천, 각종 행․재정적 육성책의 시행, 문화적 전략 구사 등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도정 역시 제주어를 살리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난 우근민 도정에서는 ‘탐라~’를 정책적 아젠다로 내세워 탐라대전 개최, 탐라문화제 강화, 탐라문화권 사업 추진, 탐라광장사업 추진 등 ‘탐라~’로 시작되는 지역정체성을 구현하는 각종 사업을 전개했다.

하지만 정작 그 ‘탐라~’의 가장 중요한 심장인 ‘제주어’에 대한 보전과 활성화 노력에서는 별다른 특기할 만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기존의 정책을 답습하는 정도에 그치고 만 것이다. 탐라대전에 쏟아부어 날씨 탓에 날려버린 예산만 투입했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에 도달했을 것이다.

이제 ‘제주어 살리기’에서 ‘제주어 르네상스(문예부흥) 사업’으로 좀 더 확장시키고, 더 큰 문화적 맥락 속에서 위기를 극복해내야 할 것이다. 특히 문화정체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특별자치도 시대’에, 이는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탐라문화의 가장 큰 핵심가치는 ‘고대해상왕국 탐라’의 강조보다는 가까이 있는 제주어의 소중한 가치에 들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장 구체적인 실체 없는 탐라의 선언적 강조보다, 제주어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일이 탐라의 정체성 확립과 탐라문화의 구현을 위해 더욱 시급하고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제주어가 바로 탐라에서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탐라문화의 심장이기 때문이다.

2012년 ‘제주학연구센터’의 설문조사에서 제주어 보존에 대해 ‘반드시 보존돼야 한다’ 45.8%, ‘가능하면 보존해야 한다’ 45.3%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 이유로는 ‘제주도민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고’(47.4%), ‘제주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24.5%) 등의 의견이 제시됐다. 제주어를 잘 알지 못하는 세대를 대상으로 한 제주어 교육 실시에 대해서는 69.4%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9.1%에 불과했다.

제주지역 부모 대다수가 제주어(語)를 보존해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10명 중 4명은 자녀들에게 제주어 사용을 권장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문화적 관점에서는 필요하다고 여기지만 현실의 여건과 필요성 등에서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부모세대들이 제주어에 대한 문화적 가치, 언어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지식습득의 부재와 언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재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정서적으로는 제주어가 모어이므로 당위적인 측면에서는 보존해야 하겠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별 의미와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솔직한 말일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그 시간이면 영어 공부 시키겠다.”가 더욱 솔직한 말일 것이다. 그러므로 ‘제주어 르네상스’ 운동에는 반드시 현 기성세대의 제주어 인식을 전환하기 위한 대대적인 문화운동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는 어쩌면 새마을 운동 차원의 노력과 참여를 도모할 정도의 붐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일단 이런 인식의 전환만 이루어진다면, 제주어에 대한 기성세대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며, 또한 이는 가정에서 제주어가 생활어로 정착할 수 있게 하고, 유아시기부터 제주어를 습득하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곧 제주어의 지속 가능성의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제주어 살리기의 핵심집단

이제 좀 더 구체적인 제주어의 제도적 회생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제주어를 지역의 중요한 언어가 되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집단을 꼽으라면 5,000여 명의 안정적 직장을 보장받는 공무원그룹과 차세대 성장집단을 교육하는 교사그룹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기실 그들은 제주어 소멸 위기를 좌우해 온 그룹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두 그룹의 제주어에 대한 인식, 제주어 사용구사능력, 사용 여부는 지역사회의 제주어 보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핵심축이다.

제주특별자치도청
제주어의 세대 전승을 위해, 제주어가 지역에서 주요 언어가 되기 위한 방안으로 우선 제안하고 싶은 것이, ‘제주특별자치도 지방공무원 채용시험’에서 제주어 구사능력을 우대하는 조건을 추가해 새로운 세대들이 제주어에 관심을 갖게 하고 스스로 습득하게 하자는 방안이다. 인간의 관심사 중 가장 중요한 사안은 밥과 관련된 것이다. 즉, 일용할 양식을 얻는 방법, 생업을 보장받는 일이 가장 중요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최근 공무원은 최고의 직업이다.

정년이 보장되고 급여가 일정하며, 한번 공무원이 되면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평생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88만 원 세대, 청년실업의 시대, 고용 없는 저성장의 시대에 공무원채용시험에 폭발적으로 응시자가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주특별자치도 지방공무원 채용시험의 시험과목에 제주어 언어능력시험을 포함시켜 고득점자를 우선 채용하는 우대정책을 편다면, 응시자들은 제주어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며, 그들은 최초로 가내전승을 받지 않은 제주어 구사의 첫 세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 공무원 수를 대략 5,000명으로 잡는다면, 적어도 제주도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그룹인 공무원그룹은 막강한 제주어 보전집단이 된다. 가족을 포함하면 적어도 2만여 명이라는, 제주어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집단이 생겨나는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과 학교 공간
제주어를 부끄러운 방언으로 인식하게 하고, 표준어 중심의 교육정책으로 ‘제주어 죽이기’의 가장 대표적인 제도적 공간이었던 학교. 일제강점기 이래, 일제가 물러난 이후에도 학교는 방언 죽이기의 공장이었다. 방언에 대한 이미지들, 촌스러운 언어라는 인식은 사실 교실에서 반복된 표준어 교육의 결과다. 그 결과 사회에 배출된 이후에도 방언에 대한 인식은 삶의 전반을 관통했고, 결국 그렇게 성장한 이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점차 제주어를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이 오늘의 사태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제주특별자치도 교육청은 제주어를 살리는 데 있어서 가장 열정적으로 나서야 한다. 방언죽이기 공장에서 제주어 언어회생의 가장 유용한 공간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교사가 제주어를 알아야 하는 문제가 놓여 있다. 현직 교사들 중 30~40대 교사만 해도 이전 세대에 비해 제주어 구사능력이 현격히 떨어져, 제주어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필수적으로 제주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예전에 교사가 먼저 표준어를 구사했듯이 말이다. 이를 위해, 신규교원 채용 후 제주어 교육을 필수연수과목으로 지정해 반드시 제주어 구사능력을 보유, 함양케 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재교육연수과정을 가령 5년마다 설정해, 지속적으로 제주어 구사능력을 보유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한 세대가 바뀔 때쯤이면 결국 모든 교사가 제주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젊은 교사들의 제주어 구사능력이 갖추어지면, 이를 교육과정에 적용하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물론 이 과정은 그 이전부터 시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제주어교육과정을 별도로 개설, 제주어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을 어린 시절부터 체득하게 해야 하며, 실제 정규수업이 아닌 방과 후 수업 등에서는 모든 교육과정을 제주어로 진행하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제주어를 배울 수 있는 방과 후 수업시간의 비중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도내 대학교
대학도 예외일 수는 없다. 대학의 교양과정에 제주어과목을 신설해 학생들이 제주어를 이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특히 학생들 중에는 졸업 후 공무원이나 교사임용시험에 응시하는 학생들도 다수 있을 것이기에 이들에게 제주어 습득의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언론과 방송
다음으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방송이다. 방송은 가장 탁월한 대중설득과 전파력을 지니고 있다. 제주어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는 데 가장 유용한 매체이기도 하다. 도내 방송사들이 각자 그들의 방식으로 제주어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게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연중 캠페인은 물론, 제주어 다큐 제작, 제주어 프로그램, 제주어 드라마 제작, 제주어코너 개설 등 전파를 타고 제주어가 곳곳에서 흘러나오도록 지원해야 한다.

말은 늘 가까이서 들려야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사용할 때 살아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많은 방법들이 있을 것이나, 적어도 도정, 교육청, 방송사 이들 3자만 제대로 제주어 살리기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적어도 한 세대 내에 제주어는 다시 세대 전승의 궤도에 제대로 안착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제주어의 원형 보전을 위한 시급한 사업들에 대해 살펴보자.

제주섬의 인구통계(2012년 기준)를 살펴보면, 85세 이상이 6,935명으로 전체의 1.2%, 80세~84세가 9,806명으로 1.5%, 75~79세가 15,979명으로 2.7%를 차지한다. 전체 인구수 대비 5.4%가 제주어 구사 세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세부적으로 분석해보면, 제주어의 원형을 구사할 수 있는 인구는 많지 않다.

특히 75~79세(1935~1939)의 경우, 표준어에 의한 언어변이가 존재하는데, 이들은 해방 이후 중등교육세대들로서 이미 표준어 교육체계 안에 포섭되었다는 점에서 제주어 원형이 많이 변질된 세대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세대는 85세 이상 세대이나, 이 세대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남성과 여성비의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하며, 남성들의 생업 관련 언어는 수집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뱃일, 테우리들의 언어, 농업 관련 기술적 언어들, 즉 섬의 환경에 적응한 제주섬의 다양한 지혜의 언어들이 사장되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선후차성이 존재한다. 제주어를 보전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일은 사라지는 제주어 수집이다. 그동안 대학의 연구자들이나 개별 연구자들에 의한 제주어 수집과 사전 편찬 등이 이어지고 있으나, 이는 매우 더딘 속도의 산물이다. 이를 위한 예산과 인력의 절대적 부족이 주원인이다.

영어나 중국어 등 외국어 습득을 위해 투자되는 예산에 비해, 제주어는 뒷전인 것이 현실이다. 그런 탓에 늘 부족한 예산과 인력으로 도 전역의 현장에서 제주어를 수집하는 일은 학자들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늘 부족하다. 즉, 제주어 구사능력 보유자들의 소멸의 속도를 이를 수집․보존하는 노력이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격적으로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제주어에 대한 전면적 수집사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규모 조사단을 꾸리고 이들을 현장조사요원으로 훈련시켜, 동시다발적으로 제주도 전 지역에서 85세 이상의 최고령자 그룹을 중심으로 한 제주어의 다양한 어휘와 언어관습을 수집해야 한다. 특히 사용빈도가 낮은 제주어의 낱알 같은 언어 하나라도 더 수집할 수 있을 때 수집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제주도는 예산과 인력의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근민 도정 출범 당시 엄청난 인력과 재원을 쏟아 부었던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사업을 벌인 것처럼, 제주어 살리기에 나섰다면, 아니 그때의 반의반만이라도 도지사가 관심을 갖고 제주어 살리기에 나섰다면, 상황은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투표는 그야말로 전 국가적으로 나섰던 사업이었다.

그 당시에도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데 힘을 모으기보다는 차라리 제주어 살리기에 힘을 쏟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글을 쓰는 순간에는 분노가 치민다. 도민사회의 총역량을 그처럼 어리석게 사용하다니. 정작 그 시기에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로 지정했다. 하지만 투표독려에 올인한 도정은 제주어에 대해 무관심했고, 제주어는 그 사이에 더욱 절멸의 시간을 앞두게 되었다.

이제 정신 좀 차리자. 제주어는 그냥 무늬만 살리기 운동으로 살아나지 않는다. 치명적이고 열정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것도 시급하게.

이러한 제주어 살리기 또는 제주어 부흥운동을 위해서는 도지사와 교육감이 직접 전면에 나서야 한다. 도지사는 직속으로 ‘(가칭)제주어살리기운동본부’를 설치해 사업의 목표를 단계별로 설정하여 각 단계별 진행상황을 손수 챙길 필요가 있다. 교육감 역시 ‘(가칭)제주어살리기교육본부’를 직속으로 설치해 교육현장에서의 제주어 살리기 교육상황을 일일이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여 지속적인 관심과 인적․물적 투자를 아낌없이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최근의 바람직한 문화현상들
- 고른베기, 지슬, 사우스카니발의 화이팅

제주의 시인들은 대부분 표준어로 시를 쓴다. 그 배경 중 하나가 육지사람들이 못 알아먹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필자들의 그러한 배려(?)에도 육지사람들 중 몇이나 그 시집을 읽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원래 표준어는 어느 나라든 그렇지만 권력의 언어다. 그리고 그 권력에는 당연히 지식권력도 포함된다.

어쩌면 이 섬의 문학인들은 그동안 제주어를 외면하고 부단히 한반도의 지식권력자들에게 짝사랑을 해 온 것은 아니었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또한 제주어로 심상을 표현하는 문학사가 전무하기에 제주어가 보다 복잡하게 분화 발전하는 소위 고급언어로서의 기능은 발전하지 못하고, 그 풍부한 표현력 또한 쇠퇴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부분의 제주 문학인들이 먼저 제주어를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도 제주어로 시를 쓴 시인들은 의외로 여럿이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 몇 편의 시도로 끝나고, 전면적으로 제주어 시집이나 소설집을 묶은 이는 드물다. 제주어만으로 한 권의 시집을 묶어 발간한 시인들로만 놓고 보면, 제주어 시집의 계보는 서귀포 출신의 작고시인인 고 김광협에서 시작된다. 그는 1984년 《돌할으방 어디 감수광》을 발간한다. 제주어로 창작된 작품만을 엮은 시집으로는 최초의 것이다.

당시 제주어로만 쓰인 그의 시들은 제주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선사했다. 그 후 2004년에 고정국 시인의 《지만 울단 장쿨래기》, 2008년엔 양전형 시인의 《허천바레당 푸더진다》가 이어진다. 고훈식 시인은 제주어 시집을 가장 많이 발간한 시인인데, 2006년 《요보록 소보록》, 《어글락 다글락》을, 2009년 《할타간다 할타온다》를, 2013년에 《건 들읍써》를 발간해 한국의 시인들 중 가장 많은 제주어 시집을 펴냈으며, 현재에도 제주어 시작 활동을 왕성하게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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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로부터 시계방향으로 《고른베기》 동시집을 펴낸 ‘황금녀 시인’, 제주어 노래만으로 열정적인 활동을 펼치는 제주어 노래 전도사 ‘뚜럼성아시’, 4․3이라는 무거운 역사적 주제를 제주어로 돌돌 말아 전 세계 영화의 바다에 던져 넣어 세계인의 찬사를 얻은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의 한 장면, 제주어로 만든 노래 <몬딱 도르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제주도의 9인조 스카밴드 <사우스카니발>.

올해 팔순을 바라보는 황금녀 시인(77세, 제주시 연동 거주)은 머리에 허옇게 서리 내린 할머니다. 그런 그녀는 작년에 제주어가 위기에 처한 언어라는 상황을 보다 못해, 자라나는 아이들이 제주어를 살갑게 만날 수 있도록 동시를 쓰기 시작했고, 거기에 직접 육성으로 제주어 발음을 들려주는 음성녹음 자료도 만들어 동시집을 묶어냈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황금녀 시인은 수백의 제주시인들 중 제주어로 된 시를 가장 많이 쓴 시인 중의 한 분이기도 하다. 제주어로 된 시집만 3권을 상재했으니 말이다. 황금녀 시인은 제주어로 시를 쓴 이유가 바로 아이들이 제주어를 모르고 자라나는 게 안타까워서라고 밝힌 바 있다. 고령에도 소멸 위기에 처한 제주어의 끝자락을 잡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제주어 시집 발간이나 문학작품 활동 또는 다른 예술장르로의 확장은 최근의 추세이도 하다. 2012년 말부터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거머쥐면서 독립영화 한 편이 문화적 사건이 되게 한 오멸 감독의 4․3영화 <지슬>, 그리고 제주의 공연장 어디든 달려가서 제주어 노래를 선사하는 <뚜럼 성아시>, 제주어로만 이루어진 ‘몬딱 도르라’라는 곡으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전국을 평정한 8인조 스카밴드인 <사우스 카니발(South Carnival)> 등은 순전히 제주섬에서 ‘맨땅에 머리 박기’ 하여 전국으로, 세계로 나갔고, 그리고 통했다. 과거 문학하던 분들이 제주어 못 알아들을까 걱정하던 것도 깡그리 무시하고, 아예 생짜 제주어로 맞붙은 것이다. 그런데 그게 통했다. 즉, 말이 통한 셈이다. 젊은 세대의 이런 신선한 노력들은 제주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고 있다.

떠오르는 단상 하나가 있다. 바로 제주도문화상이 그것이다. 그 문화상은 왜 이런 외로운 제주문화 지킴이 전사들에겐 수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들의 활동은 역대 그 어떤 수상자들에 뒤지지 않는 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을 받는 사람은 따로 있다. 번지수가 잘못된 것이며, 상의 역할과 가치 역시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탓이다.

마치며

‘제주어 살리기’라는 상당히 소극적인 슬로건에서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간 ‘제주어 부흥운동’이 필요한 시대다. 이러한 필요성의 배경에는 제주어의 소멸을 현재의 방책으로는 막아낼 수 없다는 판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어의 소멸을 막고 급기야 지역어 중심의 문화발전까지 이루어 나갔던 외국의 사례들을 보면서, 언어의 소멸은 결국 문화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지역문화정체성 운운이나 탐라문화에 대한 강조 역시 언어의 위기와 지역사회의 개방화와 세계화에 다른 필연적인 귀결일 수 있다. 결국, 이는 동전의 양면의 문제인 것이다. 개방화, 세계화에 따른 최초의 근본적인 변화는 언어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우리는 이제야 눈치 챈 것이다. 그리고 언어의 붕괴는 문화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점 역시 이제 시작되는 인식의 단면이다. 사실 언어 소멸 위기에서 시작된 지역, 지역어, 지역문화의 논의는 이제야 제주특별자치도의 중심적 의제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자치’의 논점들이다.

2007년에 시작된 그리고 그 당시 빠트리고 지나쳐버린, 자치의 근원인 지역에 대한 담론의제가 이제야 형성된 것이고, 제주어의 절멸 위기가 그 모든 논의의 중심에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제주어의 절멸을 막기 위한 대처방안과 노력들에는 국가와 지방,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표준어와 지역어 등 이전까지 한국사회에서는 체험해보지 못한 근대 이후의 최초의 논란과 경험들이 예정되어 있다.

이제 정책적인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국가-지방정부의 역할과 경계들 그리고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 전면적으로 고민할 때가 되었다. 또한 언어의 문제가 지역 또는 지역문화 전반을 꿰차는 핵심적인 의제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모두는 우선적으로 제주어의 절멸 위기 극복을 위한 일정 내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국어학자 강정희(한남대 교수)는 제주어를 살리는 문제에 있어, 다음과 같은 결기 있는 선행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하였듯이 제주방언의 현실은 아주 심각하게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 방언을 이 지경까지 방치한 주체들은 누구일까? 이 물음에 대해 우리는 제주 사회, 환경 변화라는 외적인 요인을 지적해왔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바로 이 방언의 화자들인 ‘제주 사람들’이다. 이제 제주방언 공동체 구성원들은 제주방언의 보존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이 사명을 수행하기에 앞서서 방언사용의 주체자인 제주방언의 화자들의 인식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인식전환이야말로 생태학의 기본 개념인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생명체는 물론, 언어들은 다 평등하다는 생태학적 사고들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방언 유전자를 후대에 전승하기 위한 윤리적 반성과 책임감이다.(강정희, 2011)

강정희의 이러한 요구는 과한 것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기도 하다. 결국 언어의 주체는 사용자다. 제주말 또는 제주어는 제주인의 언어다. 그러므로 제주어의 소멸 위기는 제주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것, 아이들에게 전수하지 않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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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물론 이러한 쓰지 않는 행위가 일어나기 이전에 표준어의 방언 정책, 또한 문화정체성 구현과 실생활에서의 효용성, 언어의 이데올로기화 등에 의해 조장된 방언사용의 내적 문제들도 해명되어야 하겠지만, 결국 제주어를 살린다는 것은 제주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제주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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