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나눔 릴레이] (16) 생태의사 홍성직이 꿈꾸는 제주는?

참가와 동시에 참가비의 일부가 자동 기부되는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대회’, 어려운 이웃들을 향한 ‘사랑의 연탄나눔’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부와 나눔의 홀씨를 퍼뜨려온 [제주의소리]가 한국의 대표 사회적기업 ‘아름다운 가게’ 신제주점(매니저 김정민)과 새로운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제주지역 명사(名士)는 물론 나눔행렬에 동참한 일반 시민들이 각자 사연이 깃든 소중한 물건을 기증하는 ‘아름다운 나눔릴레이’이다. 이 소중하고 특별한 물건의 판매 수익금은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를 통해 출산·육아 비용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 산모들에게 전달된다. [제주의소리]는 기증품에 얽힌 사연을 통해 나눔과 공유의 가치를 확산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IMG_0387.JPG
▲ 홍성직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대표. ⓒ제주의소리

1990년, 홀연 제주로 향했다. 아마 요새 말하는 ‘문화이주민’ 1세대가 그였을 거다. 의사이긴 의사인데 좀 독특하다. 농장을 운영하기도 하고 유기농에도 관심이 많다. 약이나 수술대신 식습관이 먼저라며 ‘생활을 바꾸라’고 주문한다.

제주도에서 해녀의 잠수병을 공론화하고 그 근본 치료를 위해 고압산소치료센터를 만든 이가 바로 홍성직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대표다. 동시에 외국인 이주자와 노동자의 인권 보호, 문화적 삶을 꿈꾸는 로맨티스트기도 하다.

그가 이번에 당장 아름다운 릴레이에 기증할 물건들도 이런 삶의 궤적과 무관하지 않다.

그가 운영하는 생태공동체 초록생명마을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아늑한 다원에서 에코파티를 한다. 여기서는 자선바자회도 열리는데 예술가들의 작품이 인기품목 중 하나다. 얼마 전 이 자선바자회에는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그의 대학 시절 축제 때 첫 번째 댄스 파트너였던 여학생이 홀연 자신이 그린 그림을 기증한 것. 탄자니아에서 머물던 시절에 그렸던 작품이다.

또 하나는 제주도 조수 교회의 김정기 목사의 그림. 화가이기도 한 김 목사는 매년 조수비엔날레라는 조그마한 미술제를 진행한다. 히말라야 시킴왕국의 차렙 부족을 위한 학교를 짓기 위한 목적에서 열린 이 미술제에서 구입한 물건이다.

그가 인터뷰 중간중간 “제주에서는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고 강조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IMG_0363.jpg
▲ 김옥영 작가의 작품(왼쪽)과 김정기 목사의 그림(오른쪽). ⓒ제주의소리

“건강? 삶의 방향부터 바꿔야”

-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맨 처음 어떻게 연고도 없는 제주로 오게됐는지 궁금하다.

“한국에는 살 곳이 제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제주 아니면 속초를 가려고 했는데 제주로 오기를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다. 제주가 닫힌 섬 같지만 굉장히 열려있는 공간이고 많은 사람 포용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기회의 땅이다. 본인이 뭔가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토양이 이뤄져 있는 곳이다.”

-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제주생명농업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흥미롭다. 농부(?)와 의사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병원을 둘러보니 뭔가 일반 병원 같지가 않다.

“제가 의사지만 약이나 수술보다 먹거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는 병원을 옮기면서 데크에 식물원과 텃밭도 만들 생각이다. 식탁도 만들어서 먹는 방법을 나누려고 한다. 비만을 약으로 치료하기보다는 어떻게 먹어야 할지, 어떤 음식, 어떤 요리를 해야할지 같이 고민하는 장소로 만들려고 한다. 하여튼 가끔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준비해서 건강한 음식으로 해서 문화를 알리려는 생각, ‘건강런치카페’를 만드려고 하고 있다.”

- 얘기는 여러번 들었지만 보통 외과의사 입에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인 거 같다.

“약이나 주사는 최종적으로 어쩔수 없이 쓰는 것이고 먼저 생활을 바꿔야 한다. 먹는 문제, 자는 문제 또 가치관의 문제다. 저희 클리닉 이름이 라이프스타일 리모델링 센터라고 붙이고 싶다. 최종적으로는 어떤 ‘힐링 공간’을 우리 초록생명마을에 만들 생각이다. 거기서 사람들이 와서 땀을 흘리고, 쉬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체험도 했으면 한다.”

IMG_0416.JPG
▲ 홍성직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대표. ⓒ제주의소리

- 이왕 건강얘기가 나왔으니 제주인들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도 묻고싶다. 흡연, 비만율 전국 1위는 매년 반복되는 얘기가 됐고, 청소년들의 정신건강도 도마에 오른다. 천혜의 아름다운 힐링의 섬이라는 제주가 왜 이 지경이 된 건가.

“삶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먼저 소아비만이 많아지는 이유는 엄마가 아이들의 밥을 안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엄마의 밥상이 다시 부활되고 밥상공동체 만들어져야 한다. 패스트푸드, 외식 중심이 아니라 손수 텃밭에서 키운 것으로 차려진 전통음식이 필요하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병원이나 의사가 지켜줄거라고 생각하는데 잘못된거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얘기 중 건강의 핵심 조건이 ‘소식, 다동’ 즉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거다. 현대인의 많은 병에 중요한 해결책이다. 지금 너무 많이 먹고 안 움직인다. 그래서 심장병, 당뇨병, 고혈압이며 암이며 생겨나는 거다.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고 본다. 지키는 방법 중 하나가 자기가 가능하면 키워서, 자기가 집안에서 요리하는 밥상이 최고다. 따라서 모든 남자들이 요리를 해야된다는 거다.(웃음) 모든 제주 사람이 농부가 돼야 한다. 옥상에서도 얼마든지 텃밭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 조금 얘기를 돌려보자.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대표를 거쳐 지금은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대표이기도 하다.

“사실은 한 10여년 전부터 제주도에 이주노동자부터 많이 오기 시작했는데, 그때 이주노동자 지원센터를 만들었다. 당시만해도 이주노동자들이 의료보험이 없었다. 그들의 의료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서 ‘무료 의료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환자가 오면 의사들이 각자 자기 전공분야에 맡게 보내주는 제주이주노동자지원의료센터였다.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보람도 있고 배운 게 많다. 정말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고,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기쁨도 있다.”

IMG_0382.JPG
▲ 홍성직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대표. ⓒ제주의소리

- 시민사회에서 볼 때, 지난 20년간 제주 사회를 살펴보면 어떤가. 제주의 삶은 더 나아졌는가? 아니면 더 어려워졌는가?

“두 가지 다 있다. 환경적인 면에서는 많이 파괴가 됐고, 그 대신 더 다양하게 제주사회가 개방되고 많은 문화적인 마인드를 가진 타 지역의 인적 인프라가 최근에는 빠른 속도로 들어와서 제주 문화를 바꿔주고 있다. 카페나 레스토랑이나 음식점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계 사람들이 와서 활동하게 된 것은 굉장히 긍정적이다.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가 제주가 됐다는 것도 기쁜 일이고.”

- 안타까운 제주에 변화라면 역시 개발주의, 환경파괴 이런 부분인가.

“저는 제주가 너무 지나치게 눈 앞에 경제적인 이득만 추구하고, 그게 목표가 돼 있다는 게 제일 안타깝다. 그걸 위해서 중국자본을 엄청나게 끌어당기고 부동산 다 팔아버리고 이런 게 얼마나 잘못된건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알 수 있다. 그보다는 자생적인 제주경제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제주도민이 직접 오너로 참여하는 작은 가게들, 작은 레스토랑, 작은 숙소다. 제주의 경제적인 문제는 외국인 투자유치로 해결될 수 없다고 보고 제주를 파괴시킨다고 본다.”

- 그럼 홍 대표가 바라는 제주는 어떤 모습인가.

“저는 많이 안 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큰 도시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지금 바다의, 지금의 산과 들 그 다음에 농토, 그 할머니들이 농사짓는 논밭 이런 것들이 살아있어야 한다. 이 모습이 간직되면서 거기에 문화가 접목이 됐을 때 가장 부가가치도 높아지고 우리 행복지수도 높아진다.

천천히 진행을 시켜야 한다. 너무나 많은 길, 너무나 많은 차, 너무나 많은 관광객은 제주를 살리는 길이 아니다. 지금 중국 사람들이 몰려와서 돈을 뿌리고 가는 것 같지만 굉장히 많이 망가졌다. 조용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당도 번잡해지고 거리도 망가지고 물가도 너무 올랐다. 이런 것들이 제주사람들한테 경제적으로 이득되는 게 아니라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거 다. 관광객 1000만 시대는 결코 자랑할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편집자 주] 홍 대표가 기증한 작품은 아름다운가게 신제주점(064-749-0038)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각별한 사연이 깃든 소중한 물건, 남다른 의미를 가진 귀한 소장품을 이웃과 나누고 싶은 분들은 아름다운가게 신제주점이나 제주의소리(064-711-7021)로 연락바랍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