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프랑스에서 첫 출간되었을 때는 세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21세기의 자본"이라는 경제학 책이 금년 4월 영어 번역판이 등장하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한달 만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차지했다.

그것은 불평등의 역사와 그 미래에 관한 책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저자인 토마스 피케티를 현대의 칼 마르크스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가 말하는 자본은 부(富)의 총칭이다. 토지, 건물, 기계뿐 아니라 주식과 채권, 은행예금 등 금융자산까지를 다 포함한다.

거두절미하고 그의 주장은 한 사회의 경제가 전체적으로 일정 비율로 성장하면 생산에 기여한 경영자와 근로자에게도 같은 비율의 대가가 돌아가야 하는데 산업혁명 이후 250년 동안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자본을 가진 자에게 돌아가는 대가가 항상 컸다는 것, 그리고 이로 인한 부의 편중이 오늘날 사회 및 경제가 안정을 찾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해결책으로는 국가가 개인의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금액)에 대하여 부유세(wealth tax)를 과세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부자들의 자산과 부채를 조세당국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세 민주주의를 통하여 자본주의의 허점인 양극화 현상을 막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나아가 민주주의도 위기를 맞는다는 주장이다.

부유세 얘기는 오래 묵은 것이다. 영국에서는 1974년 노동당이 집권할 때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이데 집권 기간 중 이를 이행하지 못했다. 행정의 비용이 과다하다는 노동당 내외의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및 민주주의의 위기를 막자"

1999년에는 미국의 부동산 거물 도널드 트럼프도 1천만 달러(한화 백억 원) 이상의 순자산 보유자에게 딱 한번 14.25%의 부유세를 징수하여 5조7천억 달러를 걷어 들이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이는 당시 미국 정부의 총 부채에 맞먹는 금액으로서 한 동안은 다른 세금을 일체 면제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순자산 가액을 평가하는 것은 특히 부자의 경우 매우 어렵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자산순위 상위 1%의 경우 예금, 주식, 채권 등 금융자산은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비 금융자산이 62%을 점한다고 보도했다(2012.1.11자). 또한 비 금융자산의 3분의 2는 비상장회사 형태로 보유하고 있어 이들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및 회사 전체의 순자산가액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온갖 기만이 끼어들 소지가 큰 점을 우려했다. 그 외에도 세금 납부를 위해 일부 때어서 처분할 수도 없는 비 금융자산의 속성을 감안하면 피케티 식의 자본주의 해법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은 타당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이유는 현재 세계 도처의 불안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미국의 경우 2009년 3월의 바닥 이후 만 5년 이상 주식시장의 호황이 이어지고 있고 2009년 6월부터는 밀로는 경기회복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중산층의 경제사정은 좋아지는 기미가 없고 금년 들어서는 동유럽의 우크라이나, 중동의 시리아, 그리고 최근에는 이라크에서의 긴장과 불안이 깊어가고 있다.

마크 파버(Marc Faber)라는 스위스 출신의 투자전문가에게는 닥터 둠(Doctor Doom)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그가 사전에 예측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2012년 이래 줄기차게 주요국의 경기후퇴를 경고해 왔다. 주식 및 채권 시장은 그의 경고를 비웃듯이 호황을 이어왔다. 최근에 그는 그의 예측이 빗나간 것은 미국 연준의 전례 없는 양적완화로 자본주의의 창조적 파괴가 미루어 지고 있기 때문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깊어가는 불안과 긴장아무튼 사정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미국 금융위기의 전철을 피해가려고 애써 왔던 중국도 최근 양적완화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7월의 인플레이션 수치가 정부가 타깃으로 삼는 3.5%에 못 미치는 2,3%에 그쳤다는 소식에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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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 새 경제팀의 확장적 거시정책도 양적완화 기조에 뒤늦게 편승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가계부채의 규모 억제에 중심을 두었던 정책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과감한 정책적 선택을 한 것인데 물론 이것은 한시적이고 국부적인 모면책일 뿐 지속 가능한 해결책은 아니다.

피케티의 처방 그 자체는 현실성을 결여 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양극화 경향에 대한 해법은 계속 인류를 목마르게 할 것 같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이 글은 <내일신문> 8월 13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 실린 내용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제주의소리>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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