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 (21) 맥주는 술이 아니야 / 바비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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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Man Of The 3M / 바비빌 (2005)

식당이나 술집에서 병맥주를 주문할 때 대개의 사람들은 카스를 시킨다. 이것은 거의 불문율에 가깝다. 그냥 맥주를 달라고 하면 카스가 나올 정도다. 사회생활에서 혼자만 다르게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은 고독한 바보가 되는 일이다. 회식 자리에서, 나는, 속으로는 하이트를 마시고 싶지만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마음으로 하이트의 손을 놓친다. 그런데 최근에 하이트 맥주가 돌아왔다. 디자인을 아주 새롭게 한 것은 아니지만 ‘1933’이라는 숫자 디자인이 전통을 느끼게 하고 무엇보다 목넘김이 무척 부드럽다. 톡 쏘는 맛이 강한 카스에 비해 하이트의 특징을 제대로 살렸다. 이제는 회식 자리에서 떳떳하게 하이트를 외친다. 양념갈비가 맛있는 한섬식당, 상 세 개를 이어 붙인 회식 자리에서 하이트를 외친다. 물론 이것은 기호의 문제이다. 럭키 스트라이크가 아니면 담배를 피지 않는 J의 고집도 기호 아닌가. 하이트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하이트의 귀환이 스푸트니크 2호가 라이카를 싣고 지구로 돌아온 것 같은 환상을 느끼게 한다. 유럽에 가서 맥주를 마셔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국 맥주 맛 없다며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다고 한다. 여태껏 속았다며 한 병 더 주문한다고 한다. 하이트진로를 온전히 믿을 수는 없다. 그래도 이 시원함에 나는 믿기로(속기로) 한다. 어차피 여름도 한 계절이고, 이때 아니면 또 언제 맥주를 마실 것이며 계곡이나 바다에 갈 것인가. 돈내코에 가서 차가운 바위틈에 캔맥주를 집어넣자. 함덕 해수욕장에 가서 밤늦도록 맥주를 들이켜자. 계곡 물소리나 여름 밤바다보다 더 좋은 안주는 없으니. /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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