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협치, 시스템화 못하면 인치로 끝날 수도...'풀뿌리 민주' 확장으로 나아가야

기대가 너무 커서일까 원희룡 지사에 대해 특히 인사 문제를 둘러싸고 여기저기서 말이 많다. 원래 익숙하지 않은 새로움에 대해서는 시비가 많은 게 세상사이기에 그에 너무 신경쓸 것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개혁의 기대를 한 몸에 담뿍 받고 나선 원희룡 도정이 시작부터 삐걱되면서 비판을 받는 게 안타깝기도 해서, 특히 협치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생각을 전달하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과 우근민 전 지사의 경우도 인사 문제로 곤혹과 비판을 받는 걸 보면서, 제주도민들은 협치를 통해 무언가 새로운 개혁을 해 나가려는 원희룡 지사에 대해 박근혜-우근민과는 다른 인사를 기대한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원희룡 지사는 선거과정에서 역대 후보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그 어떤 정파로부터 큰 도움을 받지 않고 당선되었기에 보다 자율적이고 혁신적으로 인사를 해 나갈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인사에 관한 한 아마도 원희룡 지사의 어려움은 바로 이와 같은 이상과 현실간의 괴리로부터 시작할 듯싶다. 협치란 이름으로 120만 도내외 도민을 포함하여 대한민국 5천만 국민이 제주도정 인사의 후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원희룡 지사의 소속정당인 새누리당과 선거공신을 포함하여 이른바 협치의 대상인 새정치민주연합과 시민사회단체은 물론이고 대통령을 꿈꾸는 지사이기에 5천만 국민 모두가 다 협치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60만 도민을 대표하는 제주도지사에게 주어진 재원과 인사 자리는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를 어떤 자리에 앉히든 인사에 따른 기대와 좌절의 갭의 시작은 새도정 출범을 위한 준비위원회에 너무 많은 인사를 영입하면서 촉발되지 않았나 싶다. 여기에 제주시장에 시민사회단체 인사를 임명하면서 그리고 부지사-서울본부장-협치정책실장 등 정무측 라인에 비제주 인사를 위촉하면서 더욱 인사에 대한 불만이 커지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도지사가 줄 자리는 몇 개 안 되는데 이미 한 자리 기대를 하도록 한 지사의 매머드 준비위원 위촉으로 인해 어떤 자리가 주어지지 않은 불만과 좌절은 크기 마련기 때문이다. 협치를 하는 과정에서 이상과 현실의 갭은 이렇게 클 수밖에 없다.

협치와 관련하여 주위를 둘러보면 인사를 잘한 대표적 리더로 누굴 꼽을 것인지도 쉽지 않다. 그나마 필자가 보기에는 DJP(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합을 통해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의 인사가 최소한 정파간 협치라는 측면에서 보면 가장 크게 탕평책을 쓴 인사가 아닌가 싶다. 물론 DJP 정파간 연대가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러한 협치가 가능한 것은 선거과정에서 이미 무엇인가를 나누어 갖기에 합의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IMF 외환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할 절체절명의 위기 시기이기에 더더욱 협치가 요청되었던 시대적 환경도 일조하였다.

김대중의 DJP 연합 때처럼 선거과정에서 예측 가능했다면 그리고 제주의 환경이 120만 도내외 도민이 똘똘 뭉치지 않으면 부도가 날 위험에 처해 있다면 원희룡의 협치는 좀 더 쉬웠을지 모른다. 아니면 제주경제를 살리기를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인사로 비제주인 3인방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아무리 큰 선거 공신이라도 불만을 토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3인방 정무라인에 왜 제주 출신 인사는 한 사람도 없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없는 한, 제주 인사를 키우지 않는다는 등의 나름 합당한 이유를 대면서 그 자리를 기대한 익명의 아우성은 불 보듯 뻔한 게 현실이다. 

원희룡 지사가 차라리 무소속 후보로 당선되었다면 여야를 아우르고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여 새로운 제주도정을 이끌어 나간다고 하여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원희룡 지사는 여전히 새누리당 소속의 도지사이다. 해서 새누리당 제주도당 인사를 한 두 사람 발탁해 쓰는 것이 협치방책 못지않게 정치적 도의에 합당한 게 아닐까.

어떻든 2014년 7월 취임한 원희룡 지사는 선거과정에서 누누이 강조한 바 그대로 협치를 그의 새로운 도정의 브랜드로 내세워 밀어붙이고 있다. 실제로 원희룡 지사의 협치 방책은 아마도 지난 도정들에서 경험을 했던 바 ‘제왕적 도지사’의 인사 전횡에 대한 도민들의 불만을 타개하고자 한 걸작으로 훌륭해 보인다. 지사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겠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희룡 지사의 협치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바로 그것이 ‘인치’를 뜻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물론 정치란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인치라고 마냥 비판할 것만은 아닐지 모르겠다. 그리고 선의와 덕성을 갖고 인치를 하여 도민들을 행복하고 기분 좋게 해 준다면 서로 좋은 것이기에, 처음 시작부터 인치의 느낌을 준다고 원지사의 협치에 대해 왈가왈부만 할 것도 없다. 

그러나 협치의 성공은 민주적 사고에 달려 있다. 배려와 공감 그리고 나눔을 도정의 인사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철학과 시스템 구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원희룡 지사는 여전히 협치의 이름으로 개인적 기량을 구현하는 데 치우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직 시작이기에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협치를 시스템으로 갖고 가지 못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협치는 인치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설사 일정 부분 협치가 성공을 거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원희룡 지사 시대의 것으로 끝나버릴 공산이 크다.

인치와 협치의 차이는 남경필 경기지사의 정무부지사 선정과 원희룡 제주지사의 제주시장 선정 과정을 보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주지하다시피 남경필 지사는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당에 추천을 의뢰하여 야당과의 협력을 통해 정무부지사를 임명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갔다. 물론 남경필 경기지사는 원희룡 제주지사에 비해 자신이 임명할 수 있는 인사 직위가 많기에 여유롭게 야당과의 협치를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기는 하다. 그에 반해 서울서 국회의원 3번 하다가 갑작스럽게 제주지사직을 맡게 된 원희룡 지사는 남경필 지사에 비해 지역 사정에 어둡고 준비도 덜 되었을 수가 있다. 그래서인지 시민사회운동 주자 한 사람을 골라 제주시장으로 임명하였다가 결국 그가 낙마를 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다. 이지훈 시장의 도덕성에 문제가 없었다면 그런대로 파격적 인사 시도로 받아들여졌을 것이었는데 안타깝기도 하다.

이번 원희룡 지사의 제주시장 임명과 관련하여 도의회에서 인사청문회를 주창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하나의 장면이 떠오른다. 1년 전쯤 우근민 도정에서 제시했던 시장직선제를 제주도의회가 극구 반대해서 좌절시켜 결국 행정시장임명권을 도지사에게 맡겨버린 것이 그것이다. 1년 전에는 ‘누가 시장이 되면 좋은지’의 선택권을 시민에게 돌려주지 못하도록 했던 도의회가 이제 와서는 지사의 임명권에 조금이나마 견제를 하기 위해서 의회에서의 인사청문회를 하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물론 도의회 구성이 지난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일부 바뀌었기에 새로운 접근을 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상당수 도의원이 그대로 다시 선출된 것이기에 이러한 인사청문회 접근이라는 게 뒷북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지훈 시장을 지사의 개인적 선호로 임명했다가 호되게 당해서인지, 처음에는 인사청문회에 부정적이었던 원희룡 지사도 9월에 임명하게 될 신임 제주시장에 대해서는 인사청문회를 수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로써 제주시장 임명에 따른 책임을 도의회와 나누어 가짐으로써 이지훈 시장 임명 사태와 같은 곤혹을 치르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 결과 이번 제주시장 임명에서는 과거와 같은 제왕적 지사의 임명권은 자제될 것이고, 해서 이른바 지사와 도의회간의 견제와 균형이 한 단계 높아지는 시스템을 갖추는 쪽으로 나가게 되었다. 원희룡 지사가 처음부터 협치란 도의회와의 이와 같은 인사권 공유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언명하면서 시장 인사청문회를 수용했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그러나 제주시장 임명에 따른 도의회에서의 청문회는 여전히 과도기적 장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제주시장을 도지사가 임명하는 게 아니라 제주시민에 의해 선출되도록 하는 기초자치단체 부활이야말로 협치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민주적 지방자치의 진전일 것이기 때문이다. 협치란 도지사의 새로운 인사 방책일 수는 있을지언정 주민자치를 뜻하는 민주적 제도는 아니라는 데서, 협치를 넘어 주민자치를 어떻게 한 단계 더 높여나갈 것인지의 문제의식과 방책탐구를 원희룡 지사에게 주문하고 싶다.

원희룡 지사가 사실상 제왕적 권한을 갖고 있는 현행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의 위상과 권한을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와 나누어 행사 하겠다는 협치에 대해 찬성하는 이유는 그가 책임지고 있는 제주도정에 한해서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의 권한을 나누어주겠다는 협치는 상당한 정도로는 엘리트주의적이고 개명된 입헌군주적 방책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다. 기초자치단체 부활 내지는 그에 준하는 어떤 창의적 제도 발굴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 협치란 어디까지나 원희룡지사의 개인적 선의에 의존하는 단기적이고 과도기적인 방책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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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혹 이 글이 원희룡 지사의 협치 방책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게 아님을 유의했으면 좋겠다. 여기에 머물지 말고 2018년 다음 지방선거에서는 최소한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행정시장과 감사위위원회 위원장에 대해서는 주민선거로 선출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나가는 데 애써 달라는 취지의 글이다. 전임 우근민 도정 때 제주형 행정계층구조개편과 관련하여 많은 작업을 해둔 것이 있는 만큼 그것을 잘 활용하면 짧은 시간에 지금의 협치를 넘어서는 새로운 자치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원희룡식 협치의 대상이 다음 도정에서는 도의회와 여-야당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는 물론이고 행정적 차원에서는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행정시장과 감사위원장으로 확장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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