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는 중증 정신병을 앓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중증 정신병을 앓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탄핵정국과 송두율 교수 공안재판 사건을 통한 사회정신분석

인간은 항상 성장하고 발달하고 변화한다. 그런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도 마찬가지로 성장하고 발달한다. 곧 '진보'한다는 뜻이다. 물이 고이면 썩게 되고 그곳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사회도 마찬가지다.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지적하길 성격적(정신적)으로 발달하지 못하고 어떤 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을 '고착'이라고 했다. 그게 너무 심해지면 성격적 파탄을 가져오고 심한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고 하였다.

이것을 사회병리학에 응용한 에릭 프롬도 그 어떤 사회가 병들어 있는 지를 진단하는 중요 잣대로 '소유'와 '존재'를 거론하였다. 즉 물질적인 또는 자신의 기득권에 집착(고착)할 때 그 사회는 병들게 마련이라고 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곧 변화를 말한다. 끊임없는 자기 갱생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교육학자이며 철학자인 죤 두이도 생은 바로 이런 끊임없는 자기갱생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어느 한 안정된(편안한) 상태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태(비록 불안하지만)로 계속 도전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성장이요 발달이다. 나이가 7~80이 넘어서도 인격은 발달한다고 본다.

지금 탄핵정국을 통해서 들여다 보이는 한국사회는 바로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전쟁처럼 비춰진다.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자들이 숫자의 우위만을 이용하여 찬탈하려는 음모였다. 아직도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가 뭐가 잘 못되었는지 전혀 느끼질 못하고 있다. '자기분석'도 '통찰'도 안된다.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나 교육면에서도 똑같이 병들어 있다. 칼 막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의 존엄성이 물질앞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소외 당하는 계층(일용직, '백수')이 날로 늘어나 사회발전과 안정의 균형이 깨진 지 오래다. 사회 빈부의 격차는 건널 수 없는 대해와 같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점수(특히 수능)에 매달려 학생(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인간관계(지성 인성 정서 등의 인격발달)를 가장 중요시하고 가르쳐야 할 교육장은 극도의 악랄하고 치열한 '경쟁'의 장이 되고 말았다. 모두 '일류'를 향해 매진할뿐이다. '제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이다. 공존 공생은 경쟁에서가 아니라 협동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사교육(학원입시위주)이 판을 치는 바람에 공교육 불신이 극에 달하였다. 단순한 경제적 손실만이 아닌 사회적 인간적 손실이 극심하여 보상할 길이 없다.

입법부(국회)가 썩어서 회생가능성이라고는 1%도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모두 한결같이 3공 또는 5공때 상태에 고착되어 있다. 즉 기득권 수호에 '궁민'(=가난한 인민)의 생계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인권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사법부의 경우 송두율 교수의 37년 동안의 학문활동에 대하여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7년형을 선고하였다. 판결문에는 범죄사실로 인정할만한 'FACT'가 들어나 있지 않고, 단지 황장엽의 간접적인 증언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이는 97년 서울 민사지법에서 판결이 난 사안이다.

< P> "송두율이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증거가 없다"라고. 구시대 유물인 국가보안법이 언제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소위 '악법도 법이다'란 아주 상식 이하의 법리다. 소크라테스는 사약을 받으면서 결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아직도 공안검찰과 국정원 공안법원(서울 형사지법)이 위법적인 '준법 서약서'나 '전향각서'에 의거 중형을 선고하고 있다니 얼마나 '퇴행적'인 작태인가?

탄핵국회에서도 공안법원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이 제대로 '사과'하지 안해서 소추되었다고 저 무리들은 주장한다. 이때도 '사과'는 바로 '준법서약서'인 셈이다. 사실상 노 대통령은 만인앞에서 '준법서약'을 두 번이나 한 셈이다. 취임식때와 요전번 대국민 회견에서.

현실적응이 곤란할 때 인간은 과거에 집착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 그때 그 시절이 좋았다'라는 식이다. 잘 걷기도 하고 뛰놀기도 하던 애가 기어다니고 응석을 부리고 이부자리에데 오줌을 싼다. 송두율 교수에 대한 서울형사지법의 1심 판결은 바로 3공 또는 5공으로의 퇴행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의 병인이 여기에 있다. 병이 깊어지면 사람이 인격적 파탄을 가져오고 사회에 적응할 수 없어 폐인이 되듯이 그 사회도 국제사회에서 폐사한다.

송두율 교수만큼 진지하게 장기간 동안 한반도의 통일 과제를 학술적으로 고민하면서 연구해온 학자가 또 있는가? 37년 동안 줄곧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고, 통일담론을 생각하고 글로 써서 정리해 왔다. 그걸 가지고 누가 어떻게 심판을 한단말인가? 그것도 일방적인 그리고 구태의연한 퇴행적 잣대인 '반공'으로 재단하였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6.15 남북공동 선언을 무효화하는 짓거리임에 틀림없다. 이제 더 나아가서 '멸공'을 부르짖을 것이다.

'주체사상을 비판하지 않았다고해서 주체사상에 동조하고 유포했다'식의 법논리가 도대체 그 법관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국정원이나 공안검찰의 주문에 그냥 동조한 것일까? 아마도 후자임에 틀림없다.

벌써부터 이런 법논리를 들어서 익히 아는 바이다. "공안사범의 경우 십중팔구는 공안검찰의 구형량의 절반으로 판결이 나게 되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1심 구형량과 판결이 이 법논리에 거의 98% 적중하였다. 이제 고등법원에 가면 또 절반...이렇게 해서 '집행유예'라는 어물쩍한 판결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게 판례이고 전례란다.

'최대 거물간첩'을 만든 것은 바로 '궁민'들에게 겁주기 위한 것이다. '너희들도 까불다간 이 모양 이 신세가 되는 거야!' 이게 바로 '공포 공작 정치'란 것으로 우리 '궁민'에게 너무나도 익혀져 온, 길들여져 온 관행인 것이다. 아무도 겁먹지 않는다. 사형선고를 해도 대통령이 사면이면 끝. 사법부도 개쫓던 닭이 된다.

1987년 전두환 정권 당시 일어난 KAL858기 폭파사건의 테러범 김현희는 송두율 교수처럼 차가운 감방에 하루도 갇힌 일이 없었다. 단지 그녀의 자백만으로 범죄가 성립되고 사형선고가 내려졌지만, 금방 대통령의 사면을 받고 또 안기부 간부와 결혼하는 기가 막힌 사기극이 벌어졌다.

황장엽의 남쪽으로의 망명케이스를 두고 보더라도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이현령 비현령인지를 가늠케 한다. 황장엽은 자신의 주장대로 보더라도 김일성의 '주체사상의 기초자'요 찬양자요 신봉자였다.

< P> 그런데,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생명을 보지하기 위해서 월남한 그를 단지 '자수, 자백'하였다하여 '안가'의 보호를 받으면 귀빈대우를 하고 있는 것은 또 뭐냐? 그는 분명 남쪽의 공안당국의 달콤한 유혹의 덫에 걸려들어온 희생물이다. 소통령 김현철의 한보사건 연루를 물타기 하기 위한 안보용 희생물이다.'국가보안법'의 잣대에 의하면 엄연히 사형 또는 중형에 처해 마땅하다.

송두율 교수는 그녀의 1만분의 1에 해당하는 대한민국에 해를 끼치는 범죄행위라도 했단 말인가? 그가 장기간 연구해온 학구적 업적(내재적 접근방법에 의한)이 그리고 그가 주최한 남북학자 심포지움이 평화통일에 방해가 되었다는 주장도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다. 김현희는 115명의 무고한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갔고 황장엽의 사상은 2천 5백만 북쪽 인민을 김가 일가의 우상화에 희생되고 있지만, 송두율 교수는 그 누구 한 사람도 해한 적이 없다.

이게 내가 지난 50여년 동안 '내재적'으로 또 '외재적'으로 관찰해온 바이다. 민족 통일의 문을 활짝 열 것인가? 아니면 굳게 걸어 잠글 것인가? 지금 치뤄지고 있는 송두율 교수의 재판은 바로 후자의 우를 범하고 있다.

지금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송두율 교수 재판은 대한민국의 사회가 아직 인권 후진국임을 세계만방에 드러내고 있다. 사상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 그리고 왕래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패쇄된 후진국이란 말이다.

즉 심한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입법, 사법, 행정부의 상호간의 괴리는 마치 프로이드가 가설적으로 설정한 인격 기본 구조에서 자아와 초자아 그리고 원초적 본능이라 할 수 있는 이드(id) 상호간의 괴리로 보인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인격체를 말한다. 국가 사회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자아도 상실하고 초자아도 기능부재 오직 충동만이 판을 치고 있다.

박근혜가 흘리고 다니는 눈물을 보라, 그 얼마나 퇴행적이냐? 죽은 박정희의 망령을 되살려 내려는 주술에 불과하다. 그래, 맞어, 그 때 그 시절이 좋았다?

대한민국 사회는 그 어떤 치료 방안으로도 재활할 수 없는(구재불능) 상태의 중증 정신병을 앓고 있다.

혹, 허준과 같은 명의가 나타나서 효혐있는 처방을 하고 장기간 치료하면 겨우 정상적인 기능을 되찾을 수가 있을 지도 모른다. 철저한 '자기분석'을 통해서 '통찰'이 가능하길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