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프란치스코 교황과 유민이 아빠의 특별한 만남

사막에서 바늘을 찾은 기적

8월 16일 한국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식이 열리던 날, 프란치스코 교황을 태운 무개차가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엄청난 인파를 헤치며 시복식 미사 집전을 위한 제단으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교황이 환호하는 수많은 관중 들 속에서 누군가를 보더니 갑자기 차를 멈춰 세웠다.

그가 이례적으로 차에서 내리고 몸소 다가간 곳에는 세월호 희생자인 유민이 아빠 김용오 씨가 끝없는 인파의 바다에 갇힌 작은 섬처럼 외롭게 서 있었다. 백만이 넘는 군중들 속에 섞여 있던 그는 단지 드넓은 사막 속 한 알의 모래알에 불과했지만, “세월호 진상 규명”이라는 자그만 글귀가 적힌 노란 피켓을 들고 교황의 눈에 띄는 기적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의 손을 덥썩 잡은 순간, 교황의 카퍼레이드 차량의 동선을 쫓던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과 TV 중계를 지켜보던 전세계인들의 모든 시선은 일제히 그동안 정부와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광화문 시멘트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던 김영오 씨에게 집중됐다. 교황은 한 달 이상 단식중인 그의 앙상한 두 손을 어루만지며 위로했다.

그는 영원히 가슴에 묻어야 한다는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오랜 단식으로 하소연하며 차디찬 세상의 메마른 거리를 떠돌아 왔다. 하지만 그는 교황에게서 처음으로 진정어린 위로를 받자 고개를 숙이며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지만, 끝없이 터져 나오는 울먹임 속에서 “세월호를 잊지 말아 달라”는 간청을 겨우 끝마친 그의 목소리에는 신앙보다도 진실된 아버지의 애절한 사랑과 소망이 담겨 있었다.

죽음의 문화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자식을 잃은 아비가 마음껏 울음을 터뜨리는 것조차 녹록지 않은 곳이 돼 버렸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목숨을 건 그의 단식조차 비아냥거리고 단순 교통사고로 애써 깎아내린다. 구조의 최고 책임을 져야 했던 정부의 결정적인 잘못은 아랑곳없다. 경제를 위해서 이제 세월호 타령을 그만하자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가 그런 곳인가. 인간의 죽음보다 주가의 등락이 더 큰 뉴스가 되는 곳이 바로 우리 사회다. 이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경고했던 ‘죽음의 문화’다. 꽃보다 아름다웠던 삼백 명이 넘는 학생들의 생명들을 앗아간 참사의 진상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지금, 경제를 위해 대충 넘어가자는 태도는 사람보다 돈을 섬기는 우리 사회의 ‘물신주의’를 여실히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이미 넉 달이 지났지만 정부와 여당은 아직도 비협조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구조대책 최고 기관들이 구체적인 해명과 관련자료 제출을 기피하는 속에서 책임자들의 임무소홀에 대한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고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신뢰는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알맹이 빠진 세월호 특별법

끝없이 추락하는 것은 제1야당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세월호 유가족들이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통해 주장했던 특별법의 핵심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19일 여당과의 재협상에서 타결된 특별법에도 이러한 알맹이가 여전히 빠져 있었다. 국회가 다음날까지 열리지 못하면 정치자금 비리에 연루된 야당 의원들은 국회의 동의 없이 검찰에 구속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야당은 세월호 비극을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에 실컷 이용해 먹은 후 마지막으로 비리 의원들을 위한 ‘방탄 국회’를 열기 위해 ‘쓸모없어진 집안 고물을 엿 바꿔먹듯’ 여당과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떨칠 수가 없다. 불과 동전 몇 닢을 위해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의 일화가 문득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낮은 곳에 임했던 프란치스코 교황

물은 웅덩이부터 채운 다음 흐르는 법이다. 순교자들을 복자로 추대하는 시복식이 더욱 성스러웠던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먼저 사회에서 냉대 받는 세월호 유족들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몸을 낮출수록 우러러 보였다. 아니, 자신의 몸을 낮춘다는 의식조차 없었던 그였기에 더욱 존경스러웠다.

평소 소형차를 즐겨 타고 자신의 생일상에 노숙자들을 초청한다는 교황.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 내려 함께 눈물을 흘린 그의 따뜻한 손길은 이 부조리한 세상을 원망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행사장에 운집했던 군중들과 TV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의 입에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환호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정약용은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절약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교황의 자애로운 마음도 자신의 검소한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러운 거래와 돈에 탐닉하는  비리 정치인들의 탐욕에서 국민을 사랑하는 정치가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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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지금 당국자들과 정치인들은 경제와 민생을 위해 세월호 진상을 빨리 마무리하자고 외쳐대고 있다. 도도한 강물이 웅덩이를 비껴 흐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진실이 적당한 협상으로 도달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결국 거짓일 뿐이다. 진실된 사회를 되찾기 위해 정치인들부터 앞장서야 한다.

AP 통신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김영오 씨의 극적인 만남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선정했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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