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③]빈 집 수리 후 함께 나눈 식사, 그리고 평화
아침 8시 반, 마리아 누나의 전화를 받고 일어났다. 지킴이네 집으로 아침밥을 먹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이불을 갠 뒤 밖으로 나섰다. 내 눈 앞에는 미군기지의 철조망이 쳐있었다. 아침, 삭막한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무기력감을 불러일으킨다.
찬공기를 가르며 마을길을 걸었다. 지킴이네 집에 도착하여 간단한 세면을 한 뒤 식사를 했다. 그러던 중 밖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나가보니 고물장수가 와서 빈집에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뜯어 가고 있었다. 그들은 창문틀과 난간들을 떼어내 차에 실었다.
급히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였다. 빈집에 남아있는 것들을 뜯어가버리면 새로운 지킴이들이 왔을 때, 수리하는 것을 더욱 힘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황폐한 모습을 연출하여 전체적인 분위기를 침울하게 한다.
그러나 고물장수가 뜯어가는 그 집은 집주인이 호의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무대응하기로 하였다. 이미 떠나버린 사람은 평화촌 만들기를 다른 시선으로 보기도 했다.
마리아 누나와 밖으로 나섰다. 누나가 수리하고 있는 빈집으로 갔다. 밥을 얻어먹었기에 뭔가 일을 하고 싶었고, 해야했다. 평화바람에 가서 손수레를 빌린 후 마을을 돌며 집수리에 필요한 자재들을 모았다.
오늘의 할일은 빈집의 문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집도 고물상이 문을 뜯어가 버렸다. 미리 누나가 준비해둔 연장들로 문틀을 덧대고 이어서 문 크기에 알맞게 만들었다. 이렇게 현관물을 하나 만들었고, 부엌쪽으로 난 조그만 문도 쓰다가 버린 도마를 주워와 박아넣었다.
마리아 누나는 이렇게 집을 수리하는 일어 너무나 재미있다고 했다. 누나 뿐만 아니라, 평화촌 지킴이들 모두가 그러했다. 도시에서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돈을 주고 사는 ‘서비스’상품이지만, 이곳에서는 스스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 속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끊어진 전기를 옆집에서 이어와 연결하고, 가스도 불러 식사를 준비하며, 방을 도배하고, 문을 만드는 일을 직접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했다.
어느 덧 한 낮이 되었다. 이장님께서 방송을 통해 노인정으로 오라고 하셨다. 어떤 분께서 닭을 아주 많이 기증해 주셔서 그것으로 삼계탕을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노인정으로 가니 이미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삼계탕을 먹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평화촌 지킴이들, 그리고 일일주민들이 한데 모여 앉아 밥을 먹는 것은 그야말로 평화였다.
나도 한 자리를 차지해서 삼계탕을 얻어먹었다. 대추리에 와서 먹은 3끼 식사를 모두 얻어먹었다. 이런 경험을 부안에서 한 번 해봤었다. 2004년 2월 14일, 핵폐기장에 반대하는 부안주민투표 날이었다. 그날 부안 주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공동체를 느끼고, 평화와 풀뿌리 민주주의, 그리고 연대를 실현했던 순간이었다.
평택주민들이 올해 결의한 농사짓기 또한 이것의 연장선 상에 있다. 영농자금을 시민과 사회를 통해 모금하여 농사를 지을 것이며, 그 수확물이 나락을 사회의 빈곤계층과 이북의 인민들에게 보낼 계획에 있다. 결국 사람은 밥을 먹으며 사는 존재다. 쌀을 나누는 것은 곧 평화의 지름길이다. 그래서 평택 주민들은 “올해도 농사짓자”고 외치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급히 마을을 떠났다. 서울에서의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 24시간 동안의 방문이 너무나 짧아서 아쉽다. 대추리 주민들과 지킴이들의 투쟁은 미국의 패권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자주적인 반미투쟁이기도 하지만, 이 땅을 거대한 권력으로부터 지켜려는 생명운동이기도 하며, 풀뿌리 주민자치 투쟁이기도 하다.
2006년 한국 사회운동의 최전선에 서있는 평택 투쟁의 현장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서 느꼈으면 한다. 또한 올해 농사를 짓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대추리로 들어가 평화촌 만들기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근처에 있는 한신대에서도 학생들이 들어와 집을 고치고 있고, 크리스천들, 그리고 미전향 장기수 선생님들도 이곳에 와서 계실 예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제주도에서 지방선거를 전후로 해서 화순항해군기지에 대한 논란이 또 일 것으로 보인다. 지역경제활성화도 중요하지만, 주한미군의 재배치와 전략적 유연성 등을 고려해보면 결코 해군기지 건설이 지역사회에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민들의 생활이 통제될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쫓겨날 수 도 있다. 평택에서 나는 그것을 느꼈다. 제주도가 진정한 세계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려면, 깡패국가의 미국의 영향력과 그 직접점인 군사기지를 막아내야한다. 이 점에서 제주도민들은 평택 주민들과 연대를 해야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