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딧 가까이보기-만난 사람] 조명감독 임재영

▲ 임재영 조명감독.
동네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수더분한 인상이다.

벌써 29년. ‘조명’이란 한 분야를 갖고 온갖 영화현장에서 ‘빛의 조율사’로 살아온 세월의 흔적은 어디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와 침체기, 약동기를 차례차례 몸과 기억에 새긴 임재영 조명감독. 근 30년간 쌓인 경험담과 지적자양분을 풀어놓기엔 워낙 테이터가 많았는지 25일 ‘엔딩크레딧 가까이보기’에서는 참석자들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조명을 생산하는 사람과 그것을 맛봤던 위치가 반대로 조명에 대해 질문을 생산하고 맛보는 위치로 바뀌었다.

‘조명분야 백전노장’은 어떤 질문에도 담담했다. 바쁘게 살아온 29년 세월에 큰 쉼표를 찍듯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참석자들을 대했다.

# ‘베테랑’이 말하는 ‘조명뺏

“최근엔 ‘광식이 동생 광태’(김주혁 봉태규 주연),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문소리, 지진희 주연), 사생결단(황정민 류승범 주연)을 했어요”

역시 덤덤하다. 세 작품. 그것도 최근 몇 달간, 상반기까지 화제작으로 두각될 작품의 조명감독을 맡았다.

“조명은 참 어려워요. 그래도 할수록 재밌는 분야에요. 인물 한명 한명에게 조명을 맞추는건 보통일이 아니에요”

조명은 영화를 보는 이들의 상식에 기초하면서도 조명을 담당하는 전문가의 치밀한 계산에 의해 장면 장면마다 조율된다.

조명은 인물의 심리, 장면의 배경, 앞으로 상황 등을 묘사하는 탁월한 도구다. 관객들은 사실상 조명 전문가들의 계산에 따라 그들의 심리도 빨려 들어간다.

흔히 봐왔던 작품 속 명장면이라도 정작 장면 속 조명을 맡은 임 감독의 아쉬움은 마디마디에서 드러났다.

“좋은 장면을 만들어야 하는데 날씨가 받쳐주지 않으면 헛수고가 되죠. 기다리다 안되면 어쩔 수 없이 제작비에 한계가 있어서 문제가 있어도 그대로 조명작업을 진행하게 돼요”

   
임 감독은 흠이 있는 장면이 비쳐질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곤 한다. 분명 자신은 흠이 보이고 부자연스러워 아쉬워 관객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임 감독은 작품구성에 있어 감독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다. 영화 한편의 시나리오가 나오면 그것을 기초로 감독과 충분한 논의를 거친다.

작품에 대한 생각, 특히 작품 속 조명에 대한 생각은 감독과 수시로 의견이 상충된다.

그렇다고 조명분야에서 뼈가 굵은 임 감독의 의견만 다짜고짜 고집하는건 아니다. 29년이란 세월은 한 분야에 대한 옹고집이 아닌 경륜과 작품 전체를 볼 줄 아는 넓은 시야를 갖추게 했다.

‘백전노장’은 지금도 현장을 그리워하고 작업을 목말라한다. 그의 걱정과 기대는 개봉을 앞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과 ‘사생결단’이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감독도 좋았고 내용도 괜찮아서 그리 많은 개런티를 받지 않아도 흔쾌히 작업할 수 있던 작품이었어요. ‘사생결단’은 새로운 기법을 다양하게 시도한 작품이라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되고…”

조명감독이 얘기하는 ‘조명뺏이 제일 잘받는 배우는 누구일까.

“이영애, 최민수는 카메라도 잘 받고 조명도 어떻게하든 잘 받아요. ‘클라이트 특수램프’라고 열이없는 램프가 있는데 김혜수 전도연 이미숙 같은 여배우에게 비추면 정말 이쁘게 나오죠”

# 영화계 입문과‘조명’의 미래

“처음에 영화계 입문할땐 교통비도 없어서 집에 걸어가는 경우가 많았죠”

그가 영화와 처음 맺은 시절의 기억이다. 감독이나 배우가 아닌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은 스텝으로 작업한지 29년이 지났지만 그의 주관은 확고하다.

“초창기 능력을 좋게 봐주셨는지 제일기획이나 방송국 등에서 많은 영입제의가 있었죠. 하지만 조명을 시작한거 조명으로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왔어요”

현재 조명장비 업체 ‘라이트림’ 대표이기도 한 임 감독은 앞으로 조명이 영화 분야에서 점차 발전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명분야에서 일하는 후배들이 많고 현장에서 자신과 못지않은 열정과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조명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충분히 활동할 수 있어요. 제주에서 조명장비를 갖춰놓고 회사를 차리면 나중에 제주에서 영화 촬영하는 스텝으로 일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서울에서 조명 스텝들이 내려오지 않아도 되니까”

충무로의 백전노장은 지금도 전진 또 전진 중이다. ‘노병’이 되도 사라지지 않을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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