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P총회 문화공연을 막은 경찰의 웃지 못할 해프닝

세계 158개국에서 환경부장관을 비롯한 각 국의 대표 1200여명이 참여해 사상 최대 규모로 열린 유엔환경계획(UNEP) 총회 행사장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UNEP총회 부대행사로 마련된 제주를 대표하는 행위예술단체인 ‘Terror J(테러 제이)’의 환경 퍼포먼스 초청공연이 공연시작 두 시간을 앞둬 "테러는 절대로 안 된다(?)"는 강력한 불허방침에 공연이 취소되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Terror J(테러 제이·대표 오경헌)’는 지난 1999년 제주의 젊은 문화를 꽃 피우자는데 뜻을 모은 문화인들이 만든 제주를 대표하는 행위예술 단체. 그 동안 수 차례 정기공연과 일상적인 거리공연 등을 펼쳐왔으며, 서울 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과 한국실험예술제에 참가할 정도로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단체로, 새로운 문화현상에 목말라 하는 제주문화가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문화집단이다.

제주도는 UNEP총회를 준비하면서 ‘제주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문화공연을 고민하던 차에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추천으로 ‘Terror J(테러 제이)’에게 세계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문화 퍼포먼스를 공연해 줄 것을 지난 2월 요청했고, ‘Terror J(테러 제이)’는 한달 여간의 준비를 통해 30일 오후1시 UNEP총회가 열리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다.

“우리의 임무는 테러를 막는 것이다. 테러는 하지 못한다”

▲ 퍼포먼스 지구를 지켜라

‘Terror J(테러 제이)’는 세계 각국 대표들에게 ‘제주의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그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해 왔으며, 좀 더 좋은 공연을 위해 서울에서 마임 공연을 할 연극인 김원범씨도 초청했다.

‘Terror J(테러 제이)’가 이날 오전 10시에 행사장에 도착해 소품들을 풀어 넣고 분장을 시작할 즈음인 낮 11시쯤 갑자기 정복을 입은 경찰들이 나타나 “공연은 못한다”는 불허통보가 떨어지는 날벼락이 일어났다.

경찰이 밝힌 이유는 너무나 황당 그 자체였다.

“우리의 임무는 테러를 막는 것이다. 테러를 하겠다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당황했던 ‘Terror J(테러 제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단체 명칭인 ‘Terror J(테러 제이)’를 경찰은 ‘테러 제의’로 받아들였으며, 세계 각 국의 장관들이 모인 UNEP 총회현장에서 ‘테러를 제의하겠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게 불허 이유였다.

오경헌 대표는 “그런 테러가 아니다. ‘Terror J(테러 제이)’의 j는 ‘jeju’의 약칭이고 ‘테러’는 우리 스스로가 변화해 나가자는 의미에서, 문화적인 충격을 준다는 뜻의 ‘테러’”라고 수 십번 설명을 했지만 경찰은 막무가내 였다.

“어떻게 테러를 하겠다는 것이냐. 우리보고 테러를 용납하라는 것이냐”며 단호한 모습을 보였고, 자칫 하면 테러단체로 연행해 갈 수 있다는 강경한 뜻을 비춰 결국 “외국 손님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우리끼리 싸울 수는 없지 않느냐” 내부 의견에 따라 공연을 취소하기로 했다.

행사장 떠나는 이들을 쫓아와 “신원조회 하겠다”

경찰은 심지어 행사장을 떠나는 이들에게 “신원조회를 하겠다”며 쫓아오기까지 했다. 행사장 주변에 있었던 국내·외 총회 참가자들은 경찰의 이런 모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내 지켜봤다.

‘Terror J(테러 제이)’가 준비했던 퍼포먼스는 모두 4가지 내용으로 UNEP 총회 주제인 ‘물, 위생, 인간정주’에 맞춰 물과 연관된 제주의 정서를 보여주기 위한 ‘물허벅 여인상’, 씨앗이 싹을 틔워 나무로 자라는 이미지를 연출한 ‘나무’, 환경오염에서 지구를 보호하자는 퍼포먼스 ‘지구를 지켜라’, 그리고 인형극 ‘제주도 현무암’이었다.

이 모두 환경을 주제로 제주의 이미지를 물씬 풍기는 내용을 담고 있는 퍼포먼스 였다.

서귀포 경찰서에서 항의 공연…경찰 “미안하다. 이해해 달라”

▲ 테러제이는 30일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 공연을 해야했다.
공연도 하지 못한 채 행사장에서 쫓겨나 어이가 없었던 이들은 준비했던 공연을 제주시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30일 저녁 오후6시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 공연을 했고, 그래도 머리 끝까지 오른 화가 풀리지 않아 31일 오후 5시10분에는 공연을 막은 서귀포경찰서에서 항의하는 뜻에서 ‘물허벅 여인상’ 작품을 30분간 공연했다.

이들의 작품을 본 경찰들은 “미안하다. 이해해 달라”며 이들에게 사과했다.

한 경찰은 “왜 막았는지 모르겠다. 경찰 입장에서 ‘테러제이’라는 단체 명칭 때문에 그랬다고 이해는 할 수 있으나, 공연과 명칭이 무슨 연관이 있느냐”며 어이없어 했다.

오경헌 대표는 “너무나 어이없다. 아니 어떻게 우리 단체 모임인 ‘Terror J(테러 제이)’를 테러를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느냐”며 분개해 했다.

오 대표는 “세계 각국의 대표들에게 제주의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정말 한달 여 동안 쉬지않고 열심히 연습했다. 그런데 이런 어이없는 이유로 공연을 막는다는 것은 정말 세계가 웃을 일”이라면서 “보안에 신경을 쓰는 경찰의 입장을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이는 문화적 몰이해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귀포 경찰서장 “테러 단어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

오 대표의 분함과 달리 경찰은 아직도 단호했다.

이날 공연을 막은 김동규 경찰서장은 “집회를 불허한 게 아니다. 못하게 막았다”면서 “사전에 환경부로부터 통보되지 않는 행사였다.”고 말했다.

▲ 테러제이 물허벅 여인상
“제주도가 초청한 공식 부대행사 였다”는 기자의 이야기에 대해 김 서장은 “나중에 도청의 사무관이 와서 이야기를 했지만…테러가 뭐냐 테러가"라며 “우리는 테러를 막아야 하는 입장인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김 서장은 이어 “제목이 중요하다. 모든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인데 ‘테러 제의’란 것이 외국인들에게 테러를 부추기고, ‘동의하겠느냐. 이해해 달라’고 하겠다는 데 당연히 막아야 한다”며 그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테러란 단어에 너무 예민한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예민할 정도가 아니다. 테러란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 테러를 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고 해명했다.

전세계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 놓고 테러 대비에 모든 신경이 집중된 상황에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경찰’이 만들어 낸 해프닝 아닌 해프닝인 셈이다. 그러나 이를 해프닝으로만 보기에는, 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협한 시각이 너무나 아쉬운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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