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주4·3연구소 고희범 신임 이사장 "불가능한 꿈을 꿔라"
"4·3은 아직 끝나지 않아…삶속에 4·3 투영되어야"

▲ (사)제주4.3연구소 제5대  이사장에 선출된 고희범 한겨레신문 고문
올해는 제주4.3사건 제58주기를 맞는 해다. 대통령의 4.3위령제 방문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목소리도 어느 때 보다 높다. 

4.3운동의 산실인 (사)제주4.3연구소의 새 대표를 맡은 고희범 신임 이사장(55.전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금기의 시대에 4.3운동 주역의 한 명이었던 그에게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지난해 3월 한겨레신문 사장직을 내놓은지 1년이 채 안된 시점에서 제5대 이사장직을 맡게된 그는 4.3의 역사적 재조명과 외연 확대를 위한 중책을 짊어지게 됐다.

언론인 출신…고희범 신임 이사장은?

북초등학교 앞 상점집 아들로 북교, 오중, 오고를 나온 그는 80년대 서울에서 4.3운동을 이끌었던 주역 중 하나다.  언론인 출신(75년 CBS 입사)으로 88년 한겨레신문 창간멤버로 합류했다.
한겨레신문 초대 노조위원장을 맡는 등 한국 언론사에 크고 작은 족적을 남겼다.  이후 정치부장과 민권사회1부장, 국제부장을 거쳐 출판 및 경영국장과 논설위원 등을 두루 거치면서 지난 2003년 2월 치러진 직선제를 통해 대표이사에 선출된, 전국에서는 비교적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고향인 제주에서보다 서울 지역에서 더 유명세를 치르는 인사다.

언론의 길을 걸으면서 그는 늘 4.3 운동의 한복판에 있었다. 선배인 현기영 전 한국문예진흥원장과 함께 70년대부터 제주4.3 진상규명운동을 위해 헌신해 왔으며 4.3 제50주기를 맞은 1997년에는 재경 인사까지 아우른 제주4,3범국민위원회를 결성하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범국민위원회가 만들 당시엔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해 결성한 '제주사회문제협의회'가 거의 마미될 정도로 '올인'했던 경험이 있다. 범국민위는 99년 '제주 4.3 진상규명.명예회복추진 범국민위원회'로 외연을 넓히면서 4.3특별법 제정을 위한 주춧돌이 됐다. 지금은 한겨레신문 고문을 맡고 있다.

"연구소가 태동한 후 18년 세월을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 감회가 깊다. 당시에도 불가능한 꿈을 꿨지만  다시 우리는 불가능한 꿈을 꾸지 않을 수 없다. 4.3의 전국화, 세계화를 위해 세계인의 가슴속에 4.3의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 또 다른 꿈을 꾸어야 한다".

 "반인륜적 범죄행위가 어떠했는지를 보려면 제주도로 가야한다. 억압과 비통의 세월 속에서도 진실은 반드시 규명된다는 사실을 보려면 4.3연구소로 가야한다. 인권과 평화를 보려면 제주도, 제주의 4.3연구소로 가야한다는 사실을 세계에 각인시키고 싶다".

그는 "세계사에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를 내놓는 일 등이 모두 꿈을 이루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열정 담긴 목소리를 냈다.
 
지난 24일 취임사를 갈음하면서  "체게바라의 명언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는 말을 좋아한다"는 그는 "오늘 그 꿈을 꾸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늘 제주를 고민하고 제주사람으로 살았다고 생각한다"는 그에게 3.1절을 맞아, 4.3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들어봤다.

'불가능한 꿈을 꿔라...그리고 리얼리스트가 되라'

-80년대 당시 4.3연구소를 만드는 산파 역할을 했다. 다시 돌아온 느낌은 어떤가

4.3운동을 했던 18년 세월을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 감회가 깊다. 재경 4.3 연구회가 만들어지고 정말 당시에는 불가능한 꿈을 꿨었다. 4.3의 진상을 규명하고 제주도민의 명예를 회복하자는 꿈을 다름아닌 4.3을 말하는데서 시작하자는게 당시 제주4.3연구소를 만든 취지였다. 정윤형 선생을 초대 이사장으로 모시고 현기영 소설가를 초대 소장으로 시작한 4.3연구소가 올해 사업비가 3억원이 넘었다는 결산보고 소식까지 들었다. 다양하고 거창한(?) 사업계획을 논의할 정도로 성장한 것에 대해 뿌듯하게 생각한다.

▲ 언론인 출신인 그는 언론사에 크고 작은 족적을 남긴 인물로 유명하다.
-4.3운동의 주역 중 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이사장직을 맡게된 소감은?

4.3 연구소의 창립 순간을 생각해 보면 꿈같은 시간이었다. 88년 당시 4.3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위원 선정, 기획단 구성 등 온갖 과정이 치열한 싸움과 운동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4.3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오고 대통령 사과가 이어지면서 정신이 해이해진 측면이 없지 않다.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4.3은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운동의 양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세계인의 가슴속에 4.3을 심어가는 일에 더욱 열심히, 성실하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꿈을 얘기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반인륜적 범죄행위의 모습을 보려면 제주도로 가야한다. 억압과 비통의 세월 속에서도 진실은 반드시 규명된다는 사실을 보려면 4.3연구소로 가야한다. 인권과 평화를 보려면 제주도, 제주4.3연구소로 가야한다는 사실을 세계에 각인시키고 싶다. 전세계의 가슴속에 이러한 사실들이 각인될 수 있어야 한다는 꿈을 꾸고 싶다는 것이다.세계사에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를 내놓는 일 등이 모두 꿈을 이루는 소중한 바탕이 될 것이다. 다소 불가능해 보이고 황당해보이는 꿈들이지만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 진행해야할 사업들이다. 작지만 매우 소중한 것들이다. 거의 중단상태에 있는 4.3중앙위원회의 희생자 선정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3연구소가 예전보다 4.3 정신과 치열함이 엷어졌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4.3연구소가 제주도와 제주시 등과 조사사업에 참여하면서 연구소 본연의 기능이 많이 약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사실이다. 4.3연구소가 4.3사업소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행정기관과의 공동사업, 예를 들어 유적지 정비사업과 암매장지 유해발굴 사업, 그리고 1000인 증인조사 사업 등 모두 중요하다. 마땅히 연구소가 해야하고, 소홀히 할 수 없는 연구소 본연의 기능이긴 하지만 너무 매몰돼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연구소가 본래의 4.3의 정신을 기리고, 세계화를 위해 재해석하고 과거에 매몰된 운동차원의 4.,3이 아니라 미래로 나가고 4.3을 통해 평화와 번영과 인권과 발전의 요체로 삼아갈 수 있도록 하는게 매우 중요하다. 올해 사업계획에 제시돼 있지만 연구소만이 할 수 있는 일로도 치열하게 할 수 있는게 있다. 결국 연구소 자체만의 결과물들이 나와야 한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겠지만 본래 고유의 사업들을 추진하기 위해 다시 차분하게 정리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과거에 매몰된 4.3운동에서 한걸음 미래로 나아가야"

▲ 고 신임 이사장은 "불가능한 꿈을 꾸고 하나씩 실천해 나갈 것"을 주문했다.

-4.3특별법 개정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3~4월 임시국회에서 다뤄질 것이지만 민주화운동명예회복보상법 등 다른 법안과 연계해서 풀려나갈 것이라고 본다. 법개정 자체가 무리한 수준은 아니다. 평화재단 기금출연 문제 등은 이미 4.3진상조사보고서에 나와 있는 것이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 잘 논의하면 국가차원에서 4.3 해결방안 측면에서 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한다.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4.3진상조사보고서를 일각에선 '미완의 보고서'라고 한다

국내 역사상 어떤 사건에 대해 정부가 진상을 조사해 보고서를 낸 유래가 없다.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는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표현과 어휘, 용어들이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볼 때 흡족하지 못한 내용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선을 다한 성과물이다. 미진한 부분들은 차후 4.3 평화재단이 만들어진 후 새로 발굴된 것을 추가하고 보완해야 한다. 보고서를 다시 써야할 정도는 아니다.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다. 정부에서도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도 이해한다. 추가적으로 점진적인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4.3 규명없이 미래와 발전을 얘기하는 것 불가능"

- 여전히 4.3에 대한 진실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4.3특별법에 규정된 3만여명의 진상을 낱낱히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또 얼만큼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어떠한 보고서가 나오든지 100%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실규명은 과거를 들춰내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비극과 사건에 의해서 발생한 갈등을 치유하고 해결로 가기 위한 단초다. 과거와의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발판을 삼자는 것이다. 4.3의 규명없이 미래와 발전을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를 얘기하자는 것도 아니고 미래와 동떨어진 4.3을 말하자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4.3의 규명은 과거와 미래가 하나로 이어진 것을 말한다. 특별법 제정도 화해와 상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과거를 말함으로서 화해와 상생을 얘기하고 미래의 평화와 발전을 모색해나가는 연장선에서 봐야한다.

-4.3평화공원, 그리고  4.3평화재단과 4.3연구소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가?

4.3평화공원은 4.3연구소와 직접 관계된 일은 아니지만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공원 조성은 너무 늦춰져서도 안되지만 너무 서둘러서도 안된다. 예산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4.3 평화공원은 전 세계인들이 와서 보고 평화와 인권을 몸으로 체득하고 느끼기 위한 장으로써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야한다. '죽은 기념물'이 아니라 현재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자, 나아가 평화의 상징으로서 관광 명소가 되기 위해서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4.3평화재단은 4.3 관련 여러 단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하나의 축으로 봐야한다. 도민 전체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4.3평화재단 설립 취지가 제대로 살아날 수 있도록 지혜와 역량을 모으는데 그 중심에 연구소가 일부분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 연구소 나름대로 주어진 역할을 다할 것이다.

"4.3 정신이 우리 삶속에 투영돼야...그것이 연구소의 역할"

-4.3의 전국화, 세계화가 말처럼 쉽지 않다. 어쩌면 요원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4.3의 전국화, 세계화는 간단한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4.3의 진상과 역사적 규명이 일부 지식인 중심으로 국한돼 인식되고 있다는데도 동의하지 않는다. 또 광주의 사례를 보더라도 광주민중항쟁이 일부 관심있는 이들의 전유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4.3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단절된 문제로 치부될 수 없다. 역사속의 문제로서 큰 줄기로 인식해야 한다. 결국 4.3의 정신과 품고 있는 알맹이들이 우리 삶속에 통시적으로 투영돼 있어야 한다. 그렇게 가기위한 노력들이야말로 4.3연구소의 역할이라고 본다. 전국화 세계화 이전에 우리 삶속에 4.3 가까이 있어야 한다. 아직도 해야할 노력들은 많다.

▲ "우리의 삶속에 4.3을 스미게 하는 것이야 말로 연구소가 해야할 일이다".
- 4.3의 재생산을 위한 교육도 너무 취약하다

중.고교 교과과목에는 일부 4.3의 내용이 들어있지만 대학 교양과목조차 빠져 있다. 연구소가 배출해 내고 현재 소속돼 있는 많은 인력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교육자료도 충분히 확보해 놓고 있다. 올해 도내 대학들과 다양한 논의를 통해 연구소 차원에서 추진해 나갈 생각이다. 운영위원회 차원에서 구체적인 방안과 실행 계획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4.3 유족회가 새롭게 청년회를 정비한다는 소식도 반가운 일이다. 4.3유족회가 대부분 2세들로 구성돼 있는데 청년회, 학생회, 3세, 5세에 가더라도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면 한국역사와 세계역사에 4.3이 기여할 수 있는 날이 오지않을까 한다.

-제주4.3이 국내.외 평화.인권의 산실이라는 점을 어떻게 알려나갈 것인가

제주4.3은 불의(不義)한 권력에 의해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어떻게 저지를 수 있는가를 처절하게 보여줬다. 또한 50년 동안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한 침묵과 억압의 세월이 있었지만 마침내 진실은드러내고야 만다는 것을 보여줬다. 과거를 딛고 일어서는 지혜, 평화와 인권이 우리 삶속에서 얼마나 기본적인 것인지를 4.3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모든 것이 4.3에 담겨 있는 의미와 함의라고 볼 때 앞으로 4.3평화재단을 통해 지향할 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도민 모두가 지혜를 모아나간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외부에서 본 제주도는 어떤가. 제주의 오늘과 내일을 말한다면...

 고교 졸업 후 35년 넘게 객지생활을 했다.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제주사람으로 살았다. 제주사회문제협의회 결성하고 늘 제주 현안에 대해 고민하고 연대를 모색하는 고민을 해왔다. 그 속에서도 4.3 운동은 중요한 화두였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제주학회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추진과 탐라국 독립성 상실 900년'을 회고하는 행사를 가진 바 있다. 올해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말그대로 '특별자치'를 해야하지만 여전히 재정자립도는 채 30%가 되지 않는다.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현실은 없어지지 않았다. 지금 진행되는 분위기를 보면 지방교부금 등에만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관광, 의료, 교육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별도의 조치가 있어야 도민들이 마음놓고 생할하고 먹고 살 수 있다.  '특별자치'의 취지에 맞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도민 스스로 내일을 준비하는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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