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딧 가까이보기-만난 사람] 음악감독 조영욱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한 남자가 행하는 복수에 대한 얘기다.

‘올드보이’에서 복수는 15년을 감금당한 한 남자의 분노에서 시작한다.

‘복수’를 위한 분노는 광기를 동반한다고 인식된다. 그러기에 복수를 위한 분노는 용광로의 쇳물이 펄펄 끓어오르는 것처럼 극단의 에너지가 시종일관 폭발해야 한다고 믿어지게 된다.

▲ 음악감동 조영욱.
‘올드보이’의 복수는 그런 생각들을 뒤집어 놓았다. 15년동안 감금당한 한 남자의 복수를 향한 분노는 차분하고 차갑기 그지없었다.

15년의 세월을 갚기위해 복수를 차근차근 진행한다. ‘올드보이’ 속의 분노는 분출하지 않고 절제한다.

관객들에게 ‘올드보이’의 복수가 기존의 복수보다 새롭고, 더욱 처절하고 잔혹하면서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분노의 에너지가 차분함과 절제함 속에 통제됐기 때문이다.

# 상식을 바꿔 답을 찾다

‘올드보이’의 분노를 통제한건 박찬욱 감독 말고도 이 사람의 힘이 컸다.

조영욱 음악감독. 복수를 향한 끝없는 분노가 담긴 심리묘사를 폭발하는 사운드가 아닌 낭만적인 클래식을 이용한다.

극중 오대수(최민식)가 자신을 가둔 수용소 두목의 이빨을 뽑는 잔혹한 장면에선 비발디의 음악이 흐른다.

오대수와 맞선 슬픈 과거를 지닌 이우진(유지태)을 따라다니는 음악은 왈츠다. 관객들이 장면과 음악에 매혹될때 과연 ‘왜 이 음악인갗라는 물음은 잊어버린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센티멘털한 기분을 풀기 위해 줄곧 들었던 클래식 음악이 한 사람의 분노를 설명해주는 훌륭한 수단이 될지 누가 알았던가.

관객들이 주인공들의 분노와 복수를 향한 의지에 초점을 맞췄지만 조영욱 음악감독은 한걸음 나아가 분노뒤에 감춰진 한 인간의 고독감을 클래식에 담아 표현했다.

“‘올드보이’ 속 치아뽑는 장면에는 원래 클래식을 쓰지 않을 계획이었죠. 처절하고 슬픈 음악을 담았는데 장면이 더 잔인하고 어두워보이는 거에요. 그래서 제안을 한거죠. 비발디를 써보는게 어떻겠느냐”

결과적으로 훌륭한 조합이었지만 제작과정에서 조 감독의 제안이 쉽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비발디의 음악은 아름답고 서정적이란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입견도 결국 장면과 음악을 조합한 뒤에는 바뀌어 영화속에서 큰 효과를 발휘했다.

“실험적인 음악을 쓰기는 쉽지 않아요. ‘실험적’의 기준을 찾기가 애매모호하지만 스스로 많은 시도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텔미썸딩’에서 심은하씨 주제곡을 클래식 바탕에 테크노비트를 입힌 시도가 하나입니다. 영화음악가가 모든 영화의 음악을 듣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음악 외에 미술, 인문 등 음악을 만들기 위한 다른 지식들을 쌓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접속’에서 ‘친절한 금자씨’, 그 이후…

조영욱 음악감독의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된 ‘접속’. 구체적으로 말하면 ‘접속’의 클라이맥스를 담당하는 사라본의 ‘러버스 콘체르토’는 지금도 영화관객의 뇌리에 깊이 남아있다.

첫 영화가 그의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버스 콘체르토’는 어떻게 관객들과 만나게 됐을까.

“‘접속’에는 극중 주인공인 한석규씨의 회상장면이 많았어요. 뭔가 그리움의 정서가 많이 묻어나야 했죠. ‘러버스 콘체르토’ 원곡이 한석규씨를 표현하기에 딱 좋다고 판단했죠”

하지만 정작 감독은 음악감독의 선택을 두고 머뭇거렸다. 그리 알려지지 않은 곡이었고 70년대 음악이 과연 통할 것이냐, 클라이맥스 장면을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냐는 의문이었다.

지금이야 ‘접속’하면 ‘러버스 콘체르토’를 떠올리게 됐으니 음악감독의 선택을 믿어준 감독의 판단력에도 좋은 점수를 줘도 좋겠다.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느낄 수 있듯 조영욱 감독의 음악은 화면을 압도하리만큼 강한 인상을 남긴다.

박찬욱 감독의 ‘센’ 장면에 질세라 음악도 ‘세다’. 이러다보니 박찬욱 감독의 영화만큼 조영욱 음악감독의 음악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예전엔 영화 속 음악이 장면을 메워주는 역할이었지만 지금은 화면의 리듬을 찾아주고 음악이 화면을 압도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주관에 많은 비판이 있습니다. 물론 나만의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면에서 잘 보여지지 않는 부분들은 음악이 끌어내서 관객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그의 믿음은 확고하다. 앞으로 예정된 유하 감독의 누아르 ‘비열한 거리’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도 그런 믿음은 어김없이 발휘될 것 같다.

“음악감독은 관객들과 심리전을 벌입니다. 음악이 주인공 감정에 앞서가면 안되지만 상식과 선입견을 뒤집을 필요도 있습니다”

‘영화광’인 조영욱 음악감독은 음악감독에서 영화제작까지 영역을 넓힐 계획도 잡고 있다.

영화를 향한 진지한 자세와 열정이라면 그의 계획이 ‘마침표’는 아닌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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