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87) 이공신화와 원강아미 이야기3

▲ 제주여성영화제포스터.(제공/제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회) 제주여성영화제가 올해도 어김없이 열린다. 제주신화는 고정되어 있는 어떤 것들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건네고, 다른 관계의 입김을 후후 불어넣는다. 영화제집행위에서 눈 밝혀 찾아낸 올해의 영화들도 늘 그래왔듯, 고정되어 있는 어떤 것들에 대해 다른 이야기들을 건네고, 다른 관계의 입김을 후후, 따뜻하게 불어넣어 주리라.

“어떤 무지렁이 총각이 앉아 있었단 말이냐?  여봐라, 꽃밭지기는 가서 어떤 놈인지 자세히 알아보고 오거라.”
꽃밭지기는 사라도령에게 가서 할락궁이에게 아버지 어머니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우리 아버지는 사라도령이고 어머니는 원강아미입니다.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서천꽃밭 꽃감관으로 왔다고 어머니께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제인장자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꽃밭지기가 돌아와 무지렁이 총각이 한 말을 돌아와 전하자 사라대왕은 당장 할락궁이를 불러들였다. 할락궁이가 사라대왕 앞에 불려왔다. 사라대왕은 물이 가득 든 은대야에 손가락을 깨물어 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이어서 할락궁이도 손가락을 깨물어 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은대야의 물 속에 떨어진 피는 서로 어우러져 분별할 수 없었다.

사라대왕은 할락궁이를 반갑게 끌어안았다.
“내 자식이 분명하구나. 본메는 가지고 왔느냐?”
“예, 여기 있습니다.”
할락궁이는 본메본장(증거물)으로 어머니가 주신 얼레빗을 꺼내 꽃감관인 아버지 사라도령에게 보였다. 꽃감관 사라도령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반쪽 얼레빗과 할락궁이의 얼레빗을 맞춰 보았다. 꼭 들어맞았다. 아들임이 확실했다. 

“설운 아들아, 네 어미가 어찌 되었는지 아느냐?”
“어머니는 지금쯤 제인장자에게 심한 고초를 겪고 있을 겁니다. 저가 이렇게 무사히 도망쳐서 아버지를 마나게 된 것이 다 어머니 덕분입니다.” 
“설운 아들아, 오다 보니 무릎을 찰랑찰랑 치는 물을 만나지 않았더냐?”
“예. 만났습니다.”
“그 물은 너를 보내고, 너의 어미가 첫 번째 고문을 받아, 무릎이 끊어져 나갈 때 흘린 눈물이다.”
“오다가 허리를 치는 물을 건넜더냐?”
“예, 건넜습니다.”
“그건 너의 어미가 두 번째 고문을 받아, 허리가 끊어져 나갈 때 흘린 피다.”
“오다가 목 위까지 차오르는 물을 건넜느냐?”
“예, 건넜습니다.”
“그건 네 어미가 세 번째 고문으로 목이 끊어져 나가면서 뿌린 피다. 오다 보니 외까마귀가 앉아서 울고 있지 않더냐?”
“예, 울고 있었습니다.”
“설운 아들아, 네 어미는 초대김, 이대김, 삼대김을 겪은 것이다. 제인장자 집에서 첫 고문, 두 번째 고문, 세 번째 고문을 받아서 벌써 죽었다. 그 까마귀는 네 어미 혼을 잡아가는 저승차사다. 오다보니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빨래를 하고 있지 않더냐?”
“예,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말을 걸어 보았는데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건 네 어미의 혼정이다.”
“아무리 혼정일지언정 아들인 제가 부르는데도 대답을 하지 않습니까?”
“인간은 목숨이 떨어지면 말을 못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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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제주여성영화제에는 <조이가 매료된 제주 신당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될 예정이다. 위 사진은 영화 촬영현장을 찍은 사진이다.(사진촬영/ Natasha Mistry).
감독 조이 로시타노(Joey ROSITANO)는 미국 출생이고 영어를 가르치며 8년 째 제주에 살고 있다. (영화는 9월 27일(토) 오후 4시 30분 상영되고, 상영 후 조이 감독과의 대화도 이어질 예정이다) 제주의 신당들은 그리스로 치자면 파르테논 신전, 제우스 신전과 같은 곳이다. 제주는 그런 신전을 현재도 400여개나 가지고 있는 보물섬이다.

그때야 할락궁이는 어머니가 제인장자에게 죽음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참혹하게 죽다니 정말 서럽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그 악독한 제인장자 집에서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모르십니다! 어머니와 제가 죽을 둥 살 둥 피눈물을 흘리면서 종살이를 하는데 아버진 이렇게 꽃밭이나 가꾸면서 사셨습니까!”

“설운 아들아, 제인장자 집에서 벌역을 할 적에, 나무 한 바리 하면 마흔아홉 바리가 저절로 쌓여지지 않더냐?”
“예, 그랬습니다.”
“그건 내가 인간세상의 머슴들을 시켜 그렇게 한 것이다. 제인장자가 밤에 새끼줄 쉰 동을 꼬아내라고 했을 때도 네가 한 동 꼬는 사이에 마흔아홉 동이 저절로 꼬아져 있지 않더냐?”
“예, 그랬습니다.”
“그것도 내가 새끼줄을 꼬아서 네게 내려 보내준 것이다. 네 어미가 명주 한 동을 짜면 명주 넉 동이 짜여 쌓여진 것도 나의 신령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설운 아들아, 나는 한시도 너와 네 어미를 잊은 적이 없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버지를 원망하였습니다.”
“설운 아들아, 너의 어머니는 이제 죽어 뼈만 살그랑 해 있다. 돌아가서 어미의 뼈라도 찾아오너라.”
할락궁이는 울부짖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억울합니다! 어머니를 살려주십시오! 저 때문에 어머니가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저에게 원수를 갚도록 해주십시오! 이 서천꽃밭에는 나쁜 놈을 벌주는 수레멸망악심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 그 꽃을 내어주십시오. 제인장자 집에 가지고 가서 그 씨를 멸족시키고 어머니 원수를 갚고야 말겠습니다.”
“그건 그리 하여라.”

사라대왕은 할락궁이를 서천꽃밭으로 데려 갔다. 꽃밭에는 사람을 죽여 멸망시키는 ‘수레멸망악심꽃’,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는 ‘환생꽃’, 피 오르게 하는 ‘피오를꽃’, 살 오르게 하는 ‘살오를꽃’, 앙천 웃음이 터지게 하는 ‘웃음웃을꽃’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하나하나 꽃들에 대해 설명해 주면서 돌아가 원수를 갚고 어머니를 살리라고 일러주었다. 할락궁이는 그 꽃을 주머니에 넣고 서천꽃밭을 떠나 밤낮을 쉬지 않고 걸어서 제인장자 집에 도착했다. 

도망친 할락궁이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마을에 돌았다. 제인장자는 할락궁이를 죽이려 하였다. 제인장자의 일가족들도 모두 모여 만년 원수가 찾아온 듯 할락궁이를 죽일 판으로 몰아갔다. 할락궁이는 제인장자의 일가친척이 모여 있는 곳에서 전혀 기죽지 않고 대뜸 앞으로 나섰다.
“내 재주를 한번 보십시오.”
모두 모아 놓고 할락궁이는 주머니에서 ‘웃음웃을꽃’을 뿌렸다. 동서사방으로 웃음이 번지고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번에는 ‘싸움싸울꽃’을 뿌렸다. 그러자 친척들끼리 서로 달려들어 머리를 허위 뜯고 서로서로 치고 박으며 피투성이가 되어 갔다. 마지막으로 ‘수레멸망악심꽃’을 뿌리니 제인장자의 일가친척들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조리 죽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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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제주 전통문화 엑스포 중 제주 큰굿의 또 다른 미 ‘기메’ 展에 전시된 수레멸망악심꽃.

할락궁이는 제인장자의 막내딸만큼은 살려놓았다.
“우리 어머니는 어디 계시더냐?”
“돌아가셨습니다.”
“어디 계신지 앞장서서 가리켜라!”
막내딸은 어머니가 죽어 있는 곳으로 할락궁이를 안내했다. 어머니의 머리는 청대 밭에, 허리는 흑대 밭에, 무릎은 푸른 띠밭에 던져져 있었다.
살은 다 녹아 없어지고 하얀 뼈만 살그랑하였다.

“상전님아, 제발 저를 살려 주십시오.”
막내딸이 울면서 애원했다.
“아니, 언제부터 내가 너희의 상전이더냐! 너희가 내 상전이었지 않았느냐! 너도 그 악독한 놈의 핏줄이 아니더냐!”
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한 할락궁이는 분노에 치를 떨면서 막내딸도 죽여 버렸다.

할락궁이는 어머니의 뼈를 조근조근 주어다가 차례차례 맞추었다. 아버지가 내어 준 ‘살오를꽃’, ‘피오를꽃’, ‘뼈오를꽃’, ‘숨쉴꽃’, ‘말하는꽃’, ‘오장육부그릴꽃’들을 뿌리니 오색찬란한 무지개빛이 소용돌이처럼 감돌면서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이고, 봄잠이라 너무 오래 잤구나!”
어머니인 원강아미는 그렇게 살아나 아들과 눈물의 상봉을 하였다.
할락궁이는 어머니 누웠던 곳의 흙인들 함부로 내버릴 수 없다는 마음으로 그 흙으로 고리동반 떡을 만들었다. 그 때 원강아미를 죽이고 시신을 끊어 대밭, 띠밭에 던졌던 법으로, 굿을 할 때 심방들은 대 한 줌, 띠 한 줌을 손에 들고서 이를 ‘수레멸망악심꽃’이라 하며, 이 꽃이 사악한 재해를 준다는 말을 한다.

할락궁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서천 꽃밭으로 갔다. 어머니 원강아미는 인간 세상에 태어나길 기다리는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맡았다. 할락궁이는 아버지의 서천꽃밭 꽃감관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래서 사라대왕은 저승의 아버지라 하고 원강아미는 저승의 어머니라 한다.
그때 난 법으로 할아버지 살던 데 아버지 살고, 아버지 살던 데 아들이 물려받으며 대대로 자손에게 이어지게 되었다. (이공신화와 원강아미 이야기 끝./계속 김정숙.) 

참고: 현용준「제주도 무속자료사전」, 문무병「제주도무속신화」, 제주문화원「제주신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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