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88) 원강아미 원형 1

원강아미는 애기구덕에 눕혀 키우는, 아직은 어린아이일 때, 부모의 의사에 따라 결혼을 한 ‘구덕혼사’를 한 여신이다. 남편은 사라도령이다. 아들은 할락궁이로 나중에 서천꽃밭의 꽃감관이 된다. 

‘모성 원리’는 신화에 많이 등장하는 화소이다. 특히 일반신화에서는 ‘모성 원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대체로 어머니로서의 여성 역할이 강조되고 출산의 고통, 남편과의 이별 문제 및 자녀 양육 과정에서의 고통, 아들에 의한 구원으로 형상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 여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관계’다.
처음 그녀가 맺은 ‘관계’는 중층의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임진국이었고 천하 거부였다. 상대인 사라도령의 아버지는 몹시 가난했다. 이 두 아버지는 같은 마을에 살았고, 둘 모두 마흔이 다 되는데도 아이가 없자 함께 불공을 드리면서 누가 뭘 낳든 간에 구덕혼사를 시키기로 언약한다. 제주에서는 애기구덕에 아이를 눕혀서 밭에 들고 나가 흔들어 재우면서 아이를 키웠다. 구덕혼사란 아이들이 이 아기요람인 구덕에 누워 있을 때 혼사를 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 신화에서처럼 제주도는 촌락내혼제를 많이 실시했었다. 늘 가문 간에 쟁투의 위험이 있는, 혈연에 기반한 동족취락의 한반도 지역은 워낙 적덕자로서의 덕망가들끼리가 아니면 동네사돈 맺기가 불가능한 지대였다. 그러나 제주도의 경우는 각성바지가 모여 사는 혼성취락을 형성하고 있었으므로 촌락내혼이 쉽게 이루어졌다. 또, 타지역에 비해 평등한 제주에서는 격이 다른 위의 두 집안끼리의 혼사도 가능했다.
이 촌락내혼은 결국은 공동체 의식을 강화시키는 기능과 함께 남녀평등을 확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여자 쪽 집안이 바로 옆에 살고 있다는 것은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다. 알게 모르게,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원강아미 여신에게 있어 ‘관계’는 복합적 의미망을 가지는 것이었다. ‘구덕혼사’는 원강아미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처럼 온 것이었고 또한 이들의 혼사는 개인적 결혼 이외에 공동체의 결속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관계는 선천적 운명적이고, 후천적 사회적인 모든 관계들의 정점에 있다. 그녀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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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플라이언스.(복종. 크레이그 조벨 감독. 미국./사진출처 2012 부산국제영화제 포토)
복종이 강요되고, 이미 내재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당하기만 하는 주인공. 올해 제주여성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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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플라이언스.(복종. 크레이그 조벨 감독. 미국./사진출처 2012 부산국제영화제 포토)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순종이 가져오는 결말은 나도, 상대도 끊임없이 비인간화 반인간화 되는 최악의 결말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원강아미는 ‘관계’, 그녀에게 내려진 운명에 순응한다. 관계 자체가 그녀의 존재 이유가 된다. 원강아미는 자신들의 존재 의미를 자기 자신이 아닌 상대방과의 관계 지속과 성공에서 찾는다. 아버지가 결정한 결혼이었고 집안과 마을의 결혼이기도 했지만 ‘관계’라는 것에는 갈등이 내재되지 않을 수 없고 이에 반항할 수도, 화를 낼 수도, 변화를 모색할 수도 있을 텐데 신화 내내 원강아미는 그녀에게 내려지는 그대로, 아무 소리 없이 받아들인다.
상대가 어떤지는 상관없다. 따라서 그녀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강하게 애착, 집착하며 무조건 이끌려가는 모습을 보인다. 원강아미의 생각이나 요구, 의지는 그 관계의 형성이나 유지, 변화에 어떤 계기도 되지 못한다. 관계를 맺으면 그녀는 거기에 철저하다. 철저히 사랑하고, 철저히 믿고, 철저히 책임진다.

관계의 변화를, 관계의 파기를 그녀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희생해 버리면, 자신만 인내해 버리면, 자신이 좀 수고하고 감수하면 큰 탈 없이 관계는 유지되어 왔고, 유지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는 원강아미가 일방적으로 희생당하고 수난 당하는 여성이 된다는 의미이고 인내와 양보의 여성성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희생과 수난의 이 여성성은, ‘착함’과 동일시되면서 여성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강력하게 세상에 퍼져나가 우리사회의 전통적인 여성상, 전통적으로 요구되어온 여성상이 되었다. 양보하지 않고 자기 고집만 내세우거나 이기적으로 자기 것을 취하거나 희생하지 않은 모성은 나쁜 어머니가 되었다. 노여움 서러움 을 속으로 삼키며 참고 사는 어머니를 훌륭한 어머니라며 내세웠다. 식구들 중 그 누구도 자동반사적으로 때마다 밥을 차리지 않을 거면서, 밥이 차려지지 않으면 어머니 맞아?, 한다. 참지 않는 아내, 여자는 나쁜 년이 된다. 
이 여신에게 있어 희생과 수난은 예정되어 있다. (계속 /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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