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패권 노리는 미국, 인권 사각지대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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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방성, 관타나모 '예비검속자' 명단 공개 법정명령을 이행
오늘(3월 3일, 금요일) 뉴욕 타임스 인터넷판에 의하면, 미국방성은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는 '예비검속자'(detainees, POW가 아님)의 명단을 AP 통신사에 넘겨줬다고 한다. 미국방성은 예비검속자들의 명단공개는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며 그들 자신 또는 가족들의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된다는 이유로 거부해 왔었다.

그동안 '정보공개법(Freedom of Information Act, FOIA)에 의해서 국방부를 상대로 법정소송을 제기해온 AP 통신사는 두 번째 승리를 거뒀다. 법정 공개기한을 준수하려고 국방부는 서둘러 60개의 CD 롬에 들어 있는 문건(5000 페이지 넘는 분량)을 일과 끝난지 20분 늦게 내주다 보니 그 속에는 예비검속된 자들의 가족들로부터 온 편지들도 입력되어 있어서 수분내에 회수해서 수정하고 1시간 뒤에 다시 내주는 헤프닝도 일어났다.

2001년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이후 탈레반 정권 또는 알케다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약 490명을 큐바 동쪽에 있는 관타나모 만의 수용소에 가둬놓고 있다.

문제는 이들은 전쟁에 포로에 대한 제네바 국제협약에 의해서 재판을 받을 권한도 전쟁포로(Prisoner of War, POW)로의 대우도 받을 수 없으며 무기한 수용될 수도 있다고 미행정부는 주장해 오고 있다. 따라서 미국내 및 세계 인권연맹 단체들로부터 거센 비난의 대상이 되어 오고 있다.

▲ 1950년 8월 17일, 백조일손 집단학살 사건 3일 전, 제주상황 보고서
필자는 메릴랜드에 있는 미 정부문서 보존소(National Archives and Recordings Administration, NARA)에서 약 56년전 한국전쟁 당시 제주도내 예비검속자 상황을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는 미국무성 비밀문건 원본(1950년 8월 17일자 문서번호 795.00/8-1750, 문서위치 LM81 Reel #: 5)(*)과 8월 20일(백조일손 집단학살 사건 발생일)전후의 대구와 부산상황을 잘 알아볼 수 있는 문건들을 찾아내어 복사하고 고속도로를 4시간 반동안 달려서 뉴욕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위의 뉴스를 라디오 체널 AM880을 통해서 수차례 반복해서 들었다. 감회가 남달랐다.

위 8월 17일자 문건(3급비밀)에 의하면 제주도에는 1120명의 '예비검속자'들이 여러 경찰 구치소에 분산 구속되어 있었으며 그 중에는 '국민보도연맹' 간부급(leaders)들이 700명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이외에도 해병대 정보참모부에 의하면, 제주지방법원장(김재천) 제주지방검찰청장(원복범) 제주읍장(김차봉) 등 모두 13명의 섬유지들이 인민군 환영준비모임을 7월 10일, 15일, 그리고 22일 세차례에 걸쳐서 논의한 혐의로 체포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 중에 4명이 그 회합의 성격을 자백했다고 한다.

이 제주지방 유지사건은 Dawson 신부의 한국인 비서가 정보를 제공하여 주어서 알려지게 되었다고 명기하고 있다.

당시 제주도에는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이며 고등군법회의(5명 재판관)와 특별법정(3-4명 재판관) 그리고 직결재판소(1명 재판관)가 있으며 모든 재판관은 군인들이다.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는다.

이 문건에는 해병대 사령부의 조직 현황표도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신현준 사령관, 인사참모(G-1) 김두찬, 정보참모 고길훈(현재 육지본토에 파견되어 있으므로 김두찬으로 교체됨), 작전참모 김동하, 1대대장(진해파견) 김성은, 2대대장(제주읍 주둔) 김충기, 3대대장(모슬포 주둔) 김윤근....장교 152, 사병 2953명.

▲ 1950년 8월 17일 제주주둔 해병대 사령부 조직현황
병참현황표도 들어 있었는데, 이것도 상세하게 나와 있어서 당시 예비검속자들을 운송하고 총살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과 무기가 쉽게 들어나 보였다: 1/4톤 짚 6대, 2.5톤 트럭 4대, 3/4톤 트럭 4대; Mㅡ1소총 497정(실탄 0), 칼빈소총 271정(실탄 11,360발), 일제 99식 소총 634정(실탄 0) 경기관단총 17정 (실탄 40,787)[경기관단총 실탄은 M-1소총에도 쓸 수 있다고 주를 달고 있다.]

주한 미대사관 조사관들 3인은 백낙준 문교부장관을 통역관으로 대동하고 제주현지에 와서 해병대 사령부와 제주경찰국을 현지방문하고 조사를 벌렸으며, 진상조사보고서에 추천사항을 명기하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계엄령은 제주도에서 해제할 것"을 추천하였으며, 경찰이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데 완벽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봤다. 계엄령은 군장교들이 군사계획을 세우고 훈련을 하는데 그들이 시간을 쏟아야 하는 때에 미성숙한 그리고 경험이 없는 군장교들에게 민간인 문제를 다루게 하는 부당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비판하였다. 현재 제주도에는 계엄령을 선포할 임박한 비상조건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조사관: 미해군 무관(해군지휘관) John F. Seifert; 부대사관 Donald S. Macdonald; 부영사 Philip C. Rowe]

이 조사관들은 제주도 구석구석 경찰국과 경찰서는 물론 파출소까지 살펴보고 간 건으로 추정된다.

주한 미대사관 조사관들이 조사보고서를 작성한지 3일만에 당시 제주 계엄사령부인 해병대는 약 1천여명의 예비검속자들을 집단 총살하고 8월 말 진해로 떠났다.

왜? 정말로 왜 비무장 민간인들을 무참하게 살육하고 암매장하거나 수장하고 떠났단 말인가?

필자는 [죽음의 예비검속](월간말, 2000년 8월 발행)을 통해서 밝힌 바 있지만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설정하고 그 증거들을 수집해 오고 있다.

가설 1) 대구 방어선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처한 이승만 정권은 대마도 또는 제주도로 피신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제주사건'으로 인해서 소위 '잔비'의 위협을 느낀 이승만은 '대청소' 명령을 내린 것 아닌가?

가설 2) 최일선으로 출동하는 해병대 기간병들과 장교들에게 사람을 어떻게 죽이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실습용'으로, 그래서 그들에게 '담력'을 키워주기 위해서?

가설 3) 사태가 극악의 상황에서 예비검속된 자들을 후방에 놔 둠으로 반란을 일으킬 염려 때문에 싹쓸이?

오늘 날도 미국은 관타나모의 수용소 뿐만 아니라 이락을 비롯한 여러 곳에 비밀수용소를 설치해서 강제수용하고 있으며 그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반인권적이고 반인륜적인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번의 명단공개는 관타나모에 국한된 것으로 나머지 비밀 수용소에 갇혀 있는 자들의 명단도 공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권'과 '프라이버시'를 가장 잘 존중한다고 하는 미국은 오직 자국민에 한해서만 적용되며 타국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테러방지라는 '애국법'에 의해서 미입국자들에 대해서 지문채취와 증명사진찍기를 강행하고 있다.

인권과 프라이버시는 '나'에게만 적용하는 게 아니라 이 지구촌에 사는 모든 '인간'에게 공평(fair)하게 적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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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미 국무성 문건은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 2003년 12월)의 p.422, p.428, p.437 등에 세차례 인용되고 있는데 그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다. 필자는 서울 '위원회' 사무실에 국제전화를 걸어서 복사본 1부를 얻어서 면밀히 분석하고자 수개월동안 노력했으나 복사본이 존재하지 않으며, 당연히 [제주4.3사건 자료집, 제11권 미국자료편(5)]에 등재되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찾아 볼 수 없었다.

부산일보 김기진 기자가 최근에 엮어내어 2주전에 나에게 보내온 [한국전쟁과 집단학살](푸른역사, 2005년 12월) p.233에 동일문서(LM81, Reel 5: 마이크로필름 위치만을 알 수 있음)를 만나 볼 수 있었다. 영인본이 아닌 워드로 다시 옮겨 놓은 문건이며 거두절미되어 있고 상당부분 빠져 있어서 전체 내용을 알아 볼 수가 없었다. 3월 3일과 4일 이틀동안 본 문건의 원소재지인 NARA에 가서 마이크로필름을 찾아내어 프린트를 할 수가 있었다.

문건은 표지를 포함해서 모두 17페이지에 달하는 꽤나 긴 문건이었다. 김 기자도 본문 해석에 있어서 오해가 있었다: "예비검속이 이뤄진 뒤 매일 밤 산속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라고 해서 보도연맹원들이 집단학살됐음을 전하고 있다라고 적기하고 있는데, 본문 그 어디에도 그런 문구는 없었다. 다만 주를 단 곳에서 "Signal fires are observed in the mountain areas almost every night...."가 발견되었다. 이는 직역하면 "(서로 연락을 취하기 위한) 봉화불들이 산악지대에서 거의 매일 밤마다 관찰되었다..."이다.

김 기자는 [국민보도연맹: 끝나지 않은 전쟁](역사비평사, 2002년 5월)을 펴낸 바 있으며, 부산, 경남 유족회를 재결성하는 일을 주도하였왔으며 1950년 '부산형무소 정치범 처형사건'을 집중적으로 밝혀왔다. 남원면 의귀리 외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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