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힌 돌 뽑히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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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봉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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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선화. ⓒ고봉선
봉 선 화
  - 김형준 작사, 홍난파 작곡/노래 김천애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 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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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선화. ⓒ고봉선

생김새가 마치 봉(鳳)을 닮아 봉선화라고 부른다는 꽃. 이 꽃만 보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첫째는 일본에 계신 오빠다. 오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뭍으로 나갔고, 다시 일을 따라 일본으로 가셨다. 나랑 두 살 터울의 오빠는 유난히도 꽃을 좋아하셨다. 마당에도 뒤뜰에도 꽃씨를 뿌리고는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며 관찰하셨고, 어디선가 꽃씨 얻어다 심어놓는 걸 즐기셨다. 거기에 봉선화 역시 빼놓을 수 없었는데, 가사 그대로 울 밑에 키웠었다.

둘째는, 어릴 적 나만 보면 이 노래를 부르시던 동네 삼춘이다. 마주칠 때마다 이 노래를 부르셨는데, 난 그때마다 얼굴이 빨개지곤 했었다. 내가 어른이 된 후에도 마주치면 이 노래를 부르셨다. 그 덕분인지 삼촌이 전에 없이 가깝고 편안하게 느껴지고는 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문을 풍문으로 들었을 뿐, 조문조차 가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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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선화. ⓒ고봉선

셋째는 손톱에 물을 들인 사람들이다. 언제부터 손톱 물들이는 데 봉선화를 사용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궁녀가 손톱에 물들였다는 전설이 고려 충선왕 때 있었다는 걸 보면, 그 이전부터 봉선화 꽃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걸 쉽게 짐작할 수도 있다. 나는 아직 손톱에 봉숭아 물 한 번 들여본 적이 없다. 그런 나로서는 괜히 봉숭아 물 들인 손톱을 보면 가슴에 설레기도 하며 정겹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옷감을 염색하기도 하는데, 꽃잎 뿐만 아니라 이파리, 줄기, 뿌리 모두 이용한다고 한다. 어떤 색의 꽃이건 이 모두를 합해 빻아 물들이면 주황색이 된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넷째, 홍난파 선생이 떠오른다. 이 노래의 작사자인 김형준 선생은 생전의 홍난파 선생과 이웃해 살았다고 한다. 김형준 선생의 집 울 안에는 봉선화가 가득했는데, 선생은 그 봉선화를 바라보면서 '우리 신세가 저 봉선화 꽃 같다.'라는 얘기를 곧잘 했다고 한다. 봉숭아가 맞을까, 봉선화가 맞을까 헷갈리기도 하지만, 조선 시대 책에는 분명히 봉선화로 기록되어 있으며 김형준 선생의 가사에 홍난파 선생이 작곡한 그 노래 역시 제목은 봉선화라고 한다.

성악가 김천애는 1940년 조선일보가 실시한 신인 음악회에서 데뷔했다. 그리고 1942년 히바야 공회당 신인 음악회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그게 시초가 되었고, 귀국 후에도 여러 곳에서 독창회를 하며 청중들의 눈물을 글썽이게 했다. 주권을 침탈당한 국민의 가슴을 어루만지는데 어찌 눈물 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당연히 일본은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무대에 설 때마다 김천애는 이 노래를 불렀고,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방송전파를 탔고 레코드가 제작되고 보급되었다. 금지곡이 되었어도 우리 민족은 봉선화를 부르며 울분을 달랬다. 당연히 민족감정이 솟았고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되었다. 독립운동을 주도한 꽃인 셈이다. 그렇게 봉선화는 오늘날까지 우리랑 같이하여 왔고 또 불려 왔다.

▲ 봉선화. ⓒ고봉선
최근의 제주도 지역을 지도로 살펴보면 그야말로 빨간 점이다. 그 빨간 점의 점유율을 보면 굳이 제주사람이 아니어도, 적어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가슴이 덜컥할 것이다. 오빠를 생각나게 하는 꽃 봉선화, 이제 고인이 되신 동네 삼촌이 불러주시던 노래 봉선화, 손톱을 물들이고 첫사랑이 이뤄지길 바라던 정감어린 꽃 봉선화, 일제강점기를 노래하며 울분을 달래던 봉선화. 예나 지금이나 못된 귀신, 뱀까지 물리친다는 봉선화. 어쩌면 이 봉선화도 특별자치도라는 이름 아래 야금야금 먹혀가는 아픔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독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이었다.


봉선화

박힌 돌 뽑히면 안 돼, 여름 내내 울었다
빨간 점 퍼져가는 탐라지도 보면서
때 되면 울 밑에 와서 방글방글 웃던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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