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의 도백열전(21] 제7대 도지사 길성운⑥

길 지사는 이 대통령으로부터 한꺼번에 많은 지시를 받고서도 이 대통령의 제주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 해 7월5일에는 서귀면과 대정면·한림면에 대한 邑승격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희소식이 겹쳤다. 3개면이 동시에 읍으로 승격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더구나 한림면은 읍으로 승격되면서 판포리를 경계로 하는 한경면의 분면안(分面案)이 가결됨으로써 주민들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한림면사무소는 갑작스런 분면으로 업무를 제때에 처리하지 못해 직원들이 밤을 새우는 등 곤욕을 치렀다. 그것은 도의원 선거를 불과 한달여 남겨둔 상태에서 갑자기 분면이 결정되는 바람에 선거업무가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제2대 도의원 선거는 8월13일로 예정돼 있었다. 1955년 9월1일 제주읍이 시로 승격된 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이번 선거에는 시승격에 따른 의원배정에 주민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도의원수는 제1대의 20명보다 5명이 줄어든 15명으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제주시의회에서는 인구비례에 따라 제주시 4명, 북제주군 5명, 남제주군 6명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길성은 지사에게 제주시의회의 결정사항을 내무부에 반드시 반영해줄 것을 요구했다.

길 지사 역시 유일한 시지역인 제주시에 의원 배정수를 4명으로 한다는 데에 동의하고 내무부에 건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7월9일에 제주도에 통보돼온 의원 배정수는 제주시 3명, 북제주군 5명, 남제주군 7명으로 돼 있었다. 내무부의 이 같은 의원배정은 1955년 9월말에 조사된 인구수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서 제주시 3.2, 북제주군 4.9, 남제주군 6.9의 비율을 4사5입 해서 산출해낸 것이었다. 제주시의회에서는 즉각 길 지사를 방문하고 길 지사가 제주시와 약속한 사실하고 다르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즉, 제주시는 남제주군의 인구에 유령인구 3만6000여명이 포함돼 있으며, 특히 길 지사가 김석호 의원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4:5:6으로 언질 한 것과 다를 뿐만 아니라 내무부에 3:5:7로 상신한 이유를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신두방 제주시의회 의장은 제주신보 지상(紙上)을 통해 길 지사의 해명을 정식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그때 길 지사는 업무협의차 상경 중 이었다.

신 의장은 「도의회 의원 배정에 일언(一言)」이라는 기고문에서 "吉 도백 영감이 도의원 배정을 4:5:6으로 하겠다고 분명히 밝힌 상태에서 이제 와서 3:5:7로 내무부에 상신 했다는 사실은 그대로 간과할 수 없는 없으며 그 진상을 숨김없이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도의원 배정에 대한 의혹파문은 점점 확산돼갔다. 국민회도지부에서도 여론이 악화되자 李承晩 대통령과 국회의장, 내무부장관에게 재배정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제출했다.

길 지사는 문제가 심각히 돌아가자 서울출장에서 귀임하는 즉시 해명에 나섰다. 길 지사는 "내가 도의원 배정문제와 관련해서 내무부를 방문했을 때에는 이미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의한 인구비례에 따라 3:5:7로 결정된 뒤였다"고 말하고 "나는 결코 내무부에 3:5:7로 건의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길 지사의 해명과 내무부의 회시로 이 문제는 겨우 일단락될 수 있었다. 도의원 선거는 후보간에 출마사퇴를 둘러싼 금품수수와 담합사건이 발생하는 등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선거 와중에 제주도제 폐지안이 터져 나옴으로써 제주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제주도제 폐지안은 상경중인 제주출신 김석호 의원(前제주신보사장)이 정부의 기구 간소화안으로서 제주도의 도제를 폐지해 전라남도의 소속으로 이관하려는 움직임을 알아내고 제주도청에 전해옴에 따라 밝혀졌다.

김 의원에 따르면 정부안으로 채택된 제주도제 폐지안은 이미 자유당정책위원회에 회부됐음이 8월6일 오전 주무부처인 부흥부장관에 의해 확인됐고, 이날 오후에 개최된 정부와 자유당 정책위원회의 연석회의에 앞서 곽의영(郭義榮) 정책위원장이 제주도제 폐지를 포함한 정부기구 간소화안이 정부안으로 제출된 사실을 시인했으며 8월15일전에 공포할 예정으로 국회통과를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도민들은 분노했다. 각 기관단체에서도 "전라남도에 다시 예속할 수 없다"는 주장과 함께 대규모 진정단을 서울에 파견키로 하면서 거도적인 반대운동을 펴나갈 것을 결의했다. 또한 전라남도에 예속될 경우 그나마 발전일로에 있는 제주건설이 정체될 뿐만 아니라 전체예산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국고보조비가 크게 감소될 것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 갔다.

이에 대해 길 지사는 "제주도가 정부의 특별청으로 되는 것은 모르되 전라남도의 예속은 부당하며 크게 불행한 일이다. 과거 전남에 예속됐을 때의 발전상과 그 후의 발전상을 비교하더라도 도제는 반드시 존속돼야 한다. 제주도의 기구가 어느 정도 축소하거나 특별청을 설치해 중앙정부와 연결할 수 있는 방안은 모르지만 도제폐지 자체는 있을 수 없으며, 도정 최고책임자로서 도민여론을 꼭 반영시켜 도제를 존속시키겠다"고 밝혔다.

길 지사는 가만히 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8월9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기관장회의를 하루 앞당겨 긴급 소집했다. 그러자 제주시내 유지 가운데는 자신들도 기관장회의에 참석 시켜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이날 기관장회의는 도내 각급 기관단체장과 지역유지,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룬 가운데 도제폐지를 위한 조직적인 투쟁을 위해서 「도제폐지반대추진위원회」구성키로 했다. 위원장에는 박치순, 부위원장에는 신두방·전인홍(제주시), 진문종(북군), 강성건(남군)이 선출됐고 총무책임위원에는 고원찬·강성준·황경수·김경탁·허두구·서상흠 등이 선출됐다.

이날 회의는 또 대중앙절충팀을 구성해 즉시 파견키로 하는 한편 8월10일부터는 시·읍·면 단위로 일제히 도민궐기대회를 개최하기로 뜻을 모았다.

도제폐지반대추진위원회는 본부를 제주신보 중역실에 설치했으며 시내 곳곳에는 도제폐지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벽보가 붙여졌다. 이와 함께 제주출신 국회의원 3명도 국회와 재무부 등 중앙부처를 방문하고 도제폐지의 불가론을 주장했다. 재경(在京) 도민회에서도 이들과 합세하는 동시에 8월9일 오전9시30분에는 서울시내 회현동 소재 유림여관에 모여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했다. 자유당제주도당부도 반대성명을 발표한 뒤 강경옥 道당위원장과 각 시군위원장으로 구성된 진정단을 상경시켰다.

중앙정부에 대한 도민들의 실망은 엄청나게 컸다. 제2대 도의원선거일을 사흘 앞둔 8월10일 오후6시30분에 개최된 도민궐기대회에는 5000여명의 주민이 참석하여 정부의 처사를 강력히 비난했다. 대회가 열린 관덕정 주위에는 「제주도제폐지 결사반대」 「30만 도민은 총궐기하자」 「도제폐지는 시대의 역행」을 적은 플랜카드들이 나부꼈다.

이날 대회에서 박치순 위원장은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를 36년간 지배했을 당시 제주도가 전라남도에 소속돼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며 발전도 크게 더디었음을 상기하자"면서 "30만 제 주도민은 합심하여 도제폐지안을 결사반대하자"고 독려했다.

그런데 도제폐지문제는 엉뚱하게 남·북제주군과 경찰국의 폐지가 절충안으로 변질돼 더욱 도민들의 분노를 샀다. 더구나 이 절충안은 제주출신 국회의원들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의원이 내놓은 타협안은 「남·북군을 모두 폐지하는 동시에 경찰국과 성산·모슬포경찰서를 폐지해 道에 경찰과를 둔다면 예산면에서 도제를 폐지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도제를 계속 존속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타 시·도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발전적인 안이라고 여겨 적극적인 검토에 나섬으로써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에서는 물론 경찰 쪽의 반발만 초래하는 꼴이 돼버렸다.

이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도제폐지반대추진위원회는 "제주출신 세 국회의원이 제안한 郡制와 경찰국 폐지는 다른 시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며 최소한 700여명을 감원하는, 사실상의 폐도나 다름없는 것이다"면서 결코 제주도로서는 수용할 수 없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또한 일부에서는 "지역의 중차대한 문제를 국회의원 3명에게만 맡길 수 없는 일이므로 대표단을 다시 구성해서 상경 시키자"고 주장했다. 8월15일 오현고등학교에서 개최된 연석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군청과 경찰국을 없애는 것은 머리만 남기고 팔다리를 모두 잘라버리는 것이며, 나중에는 머리조차 필요 없다 하여 자연스레 도제가 폐지될 것이 분명하다"는 강경한 입장들을 밝히고 대표단을 새로 구성하여 파견하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이러한 제주도민들의 분위기를 감지한 자유당 정책위원회는 8월16일 제주출신 세 국회의원을 불러 도제 폐지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세 의원은 "제주도제 폐지안이 끝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자유당제주도당부의 조직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될 것이다"면서 도제폐지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이날 제주에서도 도제가 폐지되면 자유당원들은 전원 탈당하기로 결의하는 한편 지방의회의원선거의 참정권을 포기하기로 결의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더욱 공고히 했다.또 도민대표로 구성된 「시위대」200명을 상경시키기로 결의하고 제주출신 국회의원들에게는 사표를 제출하여 귀향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도제폐지반대운동에는 학생들도 대거 동참하기 시작, 거도적인 운동으로 번져 나갔다.

8월20일 국회 상임위원장 연석회의는 자유당정책위원회가 제출한 정부기구간소화안을 부결키로 하면서, 제주도제를 존속시키되 제주출신 세 국회의원이 제안한 절충안을 수용하자는 의견들이 나왔다. 특히 제주출신 국회의원들은 "도민들이 우리들의 대안을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겠으며 폐도전망은 기우에 불과하고 도민들의 절대 다수는 내심으로 우리들의 안을 찬성하고 있다"고 말해 다시 일파만파를 불러 일으켰다.

이어 8월21일에 속개된 자유당정책위원회에서 제주도의 총무국·산업국·경찰국 등 3개국을 사무국 1개국으로 통폐합하고, 총무국의 내무과·서무과·지방과를 총무과와 문교사회과로, 경찰국을 경찰과로 축소해 공무원수를 현재보다 3분의 2로 줄이기로 전격 의결함에 따라 남·북군과 경찰국의 폐지가 현실로 다가섰다.

그러나 길성은 지사를 비롯한 도제폐지반대추진위원회 진정단이 중앙관계 요로를 방문하면서 도제폐지의 부당성을 설득하고 있는 반면에 제주출신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대안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도민들의 상당수는 군청폐지와 경찰국의 축소를 바라고 있다"는 상반된 입장을 계속 고집했다.

길 지사는 제주출신 국회의원들과의 논쟁은 더 이상 지역에 이익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고 곧바로 내무부장관을 방문하여 군청과 경찰국의 존속 필요성을 역설했다. 내무부장관은 군청은 존속시킬 수 있으나 경찰국은 더 검토해보자고 답변했다.

이러한 가운데 제2대 도의회가 출범하여 도의장에 강재량(康才良), 부의장에 김도준(金道準)을 선출한데 이어 「도제폐지반대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조직적으로 반대운동을 펼쳐나가기로 했다.

도제폐지문제는 그 해 11월3일에 개최된 임시 국무회의에서 다시 거론됨으로써 도민들을 불안케 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도 행정기구 간소화안을 의결하고 제주도의 경찰국을 폐지하여 총무국 산하의 경찰과로 축소하는 동시에 모슬포경찰서와 성산경찰서를 폐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도의회 의원들은 진정단을 보냈다.

이러한 노력으로 11월30일에 열린 국무회의는 제주도 경찰국의 폐지를 번복함으로써 4개월여를 끌어온 도제폐지안과 그로부터 야기된 군청 및 경찰국 폐지도 백지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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