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라산리조트, 법절차·동료위원 예의는 지켰어야

제주도환경영향평가위원님, 뭐가 그리도 급하셨습니까.
여러분들의 ‘성급한 결정(?)’에 제주도가 시끄럽습니다. 환경단체에서는 기자회견과 피켓시위를 벌이며 여러분들이 내린 결정을 철회하고,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또 종교계인사들도 나서 여러분들의 행동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쓴소리를 하셨습니다. 언론도 여러분들의 ‘버스 안 회의’를 꼬집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하셨습니까. 무엇이 여러분들이 버스 안에서 회의를 하도록 내몰았습니까.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님께서도 너무나 잘 알다시피 한라산리조트 개발사업은 지난 2003년부터 환경훼손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현안중의 현안이었습니다.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한라산리조트가 들어서는 교래곶자왈은 원시림 상태가 너무나도 잘 보전돼 있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또 이곳에는 제주특산식물로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상 보전자원 지정대상으로 보호받고 있는 '가시딸기' 군락지와 국내에서는 제주 곶자왈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된 양치식물인 '큰톱지네고사리' 등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KBS환경스페셜팀에 의해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 곤충인 '애기뿔소똥구리'도 발견됐습니다. 환경단체는 이곳을 제주생태계의 ‘허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난 1월 26일 열린 제주도통합환경영향평가에서는 한라산리조트 개발사업자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재심의’결정을 내렸습니다. 한 마디로 “용역보고서가 잘못됐으니 재작성하라”는 것이었죠. 환경단체들이 지난 2년간 주장했던 내용들이 심의과정에서 받아들여진 것이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번에는(?) 제대로 된 심의를 하고 있구나’라는 기대가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날 결정이후부터 환경영향평가 회의는 뒤틀리기 시작했습니다.
심의위가 ‘재심의’결정을 내린지 불과 한 달만인 2월 24일 통합영향평가심의회가 다시 열렸고 당초 위원회가 주문한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영향평가보고서가 ‘조건부 동의’란 이름으로 사실상 통과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단서는 달았습니다. 첫 번째는 최대 쟁점으로 곶자왈 훼손우려가 너무나 명백한 한라산리조트 ‘진입로’를 변경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5만평에 달하는 곶자왈 훼손면적을 최소화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심의위원들은 현장확인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환경영향평가위원회는 3월 3일 교래곶자왈 현장확인을 통해 사상 유례없는 ‘버스 회의’란 불법 회의를 통해 자신들이 결정한 ‘조건부 동의’내용을 단 1주일 만에 ‘없었던 일’로 뒤집어 버렸습니다.

환경전문가인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교래곶자왈의 갖고 있는 환경적 중요성은 다시금 강조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몇 가지 중대한 실수를 범했습니다. 이제 이를 확인해 가고자 합니다.

문제제기 1: 심의위원회는 조례를 ‘위반’한 불법회의를 자행했습니다.

첫 번째는 3월 3일 현장확인 과정에서 과연 환경영향평가심의가 열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시행조례(65조·통합평가심의위원회의 운영)는 '위원장은 회의를 개최하고자 할 경우 소속위원에게 회의개최 전 7일까지 회의일시·장소·심의안건 등을 사전에 통지하여야 한다. 다만,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회의개최 전 3일까지 통지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시행조례가 회의절차를 규정한 것은 이번 한라산리조트심의에서 드러난 것처럼 자치단체의 의지나 개발사업자의 편의에 따라 위원회 회의가 휘둘리는 것을 방지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제주도는 “회의가 열리기 3일 전인 2월 28일 공문을 통해 통합영향평가심의회 개최사실을 각 위원들에게 통보했기 때문에 회의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심의위원님. 이 말이 맞습니까. 공문을 자세히 보셨습니까. 제주도가 여러분들에게 보낸 공문에는 ‘현장확인’이었습니다. 환경영향평가회의를 한다는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현장에서 회의를 열고 말았습니다.

일부 위원들은 “위원전체가 합의했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회의절차를 규정한 것은 조례입니다. 조례는 지방정부의 ‘법’입니다. 아무리 위원회가 100% 만장일치 결의를 한다고 해도 법(조례)을 뒤집을 순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조례를 위반하고 회의를 열었습니다.

문제제기 2 : 심의위는 ‘버스회의’란 치욕적 선례를 제주도에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회의의 형식과 내용입니다.
저는 ‘버스회의’란 게 육지부 일부 지방의회가 선거구획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해 조례를 제 멋대로 통과시키기 위한 변칙적 수법으로 사용한 회의로만 알았습니다. 차마 제주도에서도 이런 ‘버스회의’가 열릴 줄은 몰랐습니다.

무엇이 그리 급하셨습니까. 급할수록 원칙과 절차가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조건부 동의를 철회하는 게 맞다는 여러분들의 판단이 설령 옳다고 하더라도 회의는 법절차에 따라 열려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현장에서 ‘위원 합의’를 명분으로 제주도통합영향평가심의회 사상 초유의 ‘버스회의’를 열고 말았습니다.

지난 1월말 도의원 선거구획정 최종회의를 앞둬 이에 반발하는 주민들이 회의장에 난입하면서 회의가 4시간 동안 지연될 당시 선거구획정위원들이 보여준 ‘원칙’은 여러분들과 너무나도 비교됩니다.

선거구획정회의는 이번 한라산리조트 회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중대한 회의이자 ‘시간’에 쫓기는 회의였습니다. 선거구획정위원들이 마음만 먹었다면 도청회의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회의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획정위원들은 끝까지 회의장을 사수했습니다. 원칙의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선거구획정위원들이 여러분들처럼 ‘버스 안’에서 선거구획정안을 통과시켰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여러분들은 제주도 행정사상 씻을 수 없는 치욕인 ‘버스 회의’란 선례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문제제기 3 : 3월3일 회의는 위원회 합의에 의한 ‘날치기 통과’일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날 결정한 ‘조건부 동의’ 철회는 날치기 통과였습니다.
회의는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이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날 결정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법적 절차가 모두 갖춰졌을 때를 말합니다.

우리는 국회에서 법안이 날치기 통과되는 광경을 종종 목격합니다. 우리가 날치기 통과라고 하더라도 여기에는 여러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다수결의 원칙’이 깔려있습니다. 정해진 회의장소를 벗어나거나 회의절차기 국회에서 정하고 있는 규정에서 위배될 때 정치적 표현으로 ‘날치기’라고 꼬집습니다.

여러분들이 지난 3월3일 버스 안에서 연 회의는 너무나도 당연한 ‘날치기 회의’였습니다.
조례를 위배했음은 물론, 회의를 버스 안에서 시급하게 열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저 이유가 있었다면 여러분들의 ‘합의’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3월 3일 회의는 일부 환경영향평가 위원들의 합의에 의한 날치기 회의란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환경영향평가심위원들께서 현장을 두 차례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차례 전부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진입로 곶자왈을 파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물론 100만평을 샅샅이 살펴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입로가 최대 쟁점이었다면 이곳은 둘러보셔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느냐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여러분들은 3월 3일 현장확인에서도 진입로 입구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도 관계자는 “수풀이 너무나 우거져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왜 진입로가 변경돼야하는지를 이야기 해주는 대목입니다.

문제제기 4 : 동료 위원이 협박 당하는 상황에서 결정을 뒤집었습니다.

심의위원들께서는 최소한 동료 위원에 대한 예의는 지켰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경단체를 대표해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사가 특정인으로부터 ‘가족몰살’ 협박을 받았다고 공개한 것은 3월 2일이었습니다.

누가 왜 협박을 했는지는 위원이 공개한 전화통화 내역과 편지를 통해 충분히 유추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라산리조트 개발사업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협박을 받은 위원 개인의 문제를 넘어 제주도통합환경영향평가위원회에 대한 협박이자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여러분들 중 누구나 상황에 따라서는 이 같은 협박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이었기에 언론은 이에 대해 공분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바로 그 다음 날 ‘가족몰살’협박 운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입장표명도 없이 스스로 내린 결정을 뒤집어버렸습니다. 이는 최소한 동료위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급했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문제제기 5 : 앞으로 심의위 결정을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9일 묘산봉 관광지개발사업에 대한 통합영향평가 첫 심의가 열립니다.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서 여러분들이 내린 결정이 행정적 타당성은 갖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도덕적 타당성에 대한 논란을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전체 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을 현장 확인에서 그것도 버스회의란 절차적 타당성이 크게 결여된 회의에서 뒤집어 버린다면 앞으로도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또 위원회의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환경단체에서는 이날 회의에 대해 무효를 선언하고, 심의위원들의 사퇴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환경단체의 주장이 다 옳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심의위원님들도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해명을 하셔야 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위원회 스스로가 밝히셔야 합니다. 이번 일로 전체 통합영향평가심의위원들이 마치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음을 저희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밝힐 것은 밝히고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지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개인의 문제를 떠나 제주도 통합영향평가심의위원 위상과 미래를 위해서도 마땅히 그래야만 합니다.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환경을 지켜나갈 유일한 법적 기구는 통합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 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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