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가을, 나 자신을 만나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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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쉼] 낭만 가을

가을이다.
높고 푸른 하늘에서 보석 같은 햇볕이 아낌없이 쏟아져 내린다.
살며시 몸으로 내려오는 햇살이 따뜻하고 정겹다. 한여름의 열정을 넓은 품에 안은 가을 햇살은 삶의 생채기들을 치유하는 묘약이다.
낭만 가을이다.

낭만 가을에 혼자 있음을 즐긴다.
왁자지껄 여러 벗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좋지만 깊어가는 가을에 혼자 사색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

지지난주 일요일 교래리 자연휴양림 짧은 코스를 얼른 갔다 왔다. 깊은 산의 정취를 맛보고 싶으나 헉헉 바쁜 숨 몰아쉬며 산을 오르긴 싫은 사람에게 교래리 휴양림은 안성맞춤 코스다. 걷기 코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벌써 오래된 세월이 곳곳에 묻어있는 바위, 이끼, 뿌리를 드러낸 나무들, 그늘 사이로 색감을 자랑하는 작은 꽃들, 거침없이 뻗어나간 고사리...등이 인사를 한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제주의 보물 곶자왈이다.
  
울울창창한 나무사이를 걷고 또 걷는다.
딱히 무엇을 이루겠다는 장한 결심이 없어도,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없어도
걷고 또 걷는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자연을 걸으며 굳이 모든 사물과 생각에 경계를 지을 필요가 있겠는가,
걸림 없이 걸어가며 눈부신 햇살에, 달고 단 바람결에, 단단하고 오래된 땅바닥에 내 몸을 포개며 그냥 걷고 또 걷는다.

또 며칠 전에는 우연히 오일장에서 낭만 가을을 만났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니 당연한 끌림인가.

먹고 사는 일 때문에 오라는 곳은 없지만 혼자 갈 길 바쁠 때가 많다. 며칠 전도 그리 호들갑을 떨다가 잠깐 딴 생각하는 사이 길을 놓쳤다. 돌아가다 보니 오일장 입구가 보인다. 잠깐 망설이다 얼른 들어갔다.

시장 입구부터 색색 국화꽃 화분이 눈길을 잡아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오래된 빨간 고무대야에 제주산 꾸지뽕이 가득 담겨있다.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조금 더 가니 야채 코너이다. 얼른 브로콜리와 가지 , 호박과 시금치 한 단을 샀다.
머릿속으로 휙휙 영상이 지나간다.
브로콜리는 예쁜 나무 모양을 살려 적당히 썰어 잘 달군 팬에 볶을 것이다.
채 썬 당근, 표고버섯이 친구가 될 것이고 간혹 냉장고 야채 칸에서 오래 머물렀던 야채들이 특별히 함께 할 수도 있겠다. 이들이 함께 어울려 잘 익으면 얼른 걷어내 당면과 합체해 주겠다. 미리 물에 불렸다가 잠깐 끊는 물에 삶은 당면은 적당히 꼬들꼬들하다. 이제 그 당면은 빨강 파랑 야채들과 하나 되어 ‘잡채’로 위대한 탄생의 순간을 맞을 것이다.
싱싱한 가지는 오이와 같이 채 썰어 간장 소스를 휘익 뿌려줄 것이다.
아니면 적당히 팬에 구워 익힌 다음 송송 썬 부추나 쪽파와 함께 참기름 간장 깨 양념을 할 수도 있겠다.
다음 코스는 금방 기름통을 탈출한 뜨끈한 도넛 한 입 베어 물기. 이 맛은 아는 사람만 아는 , 현장 구매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특권이다.

불과 삼십 여분의 짧은 가을 여행이었지만 그날 하루 머릿속에 가득 들어있던 근심 걱정 몰아내고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채울 수 있었다. 요즘 계산 좋아하는 사람들 방식대로라면 시간 돈 투자 대비 얻을 것이 참 많은 순간 아닌가.


낭만 가을은 특별한 어떤 곳을 찾아가도 만날 수 있지만, 그냥 눈을 뜨고 마음만 열면 언제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마루 창문을 열었을 때 만나는 신선한 공기, 바쁘지만 틈을 내 마시는 차 한 잔, 요즘 거리를 걸으며 쉽게 만나는 아름다운 구절초, 봄여름의 에너지를 열매로 뭉쳐놓은 구실잣밤나무, 그리고 날마다 만나는 익숙한 사람들, 새로운 사람들.

도처에 널려있는 낭만 가을. 혼자 있음을 즐겨보는 것은 어떠한가.
늘 그러라는 것이 아니라, 잠깐 틈을 내어 온전히 혼자를 즐겨보자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좀 벗어나 혼자의 시간을 가지면 그간 스스로도 잘 몰랐던 자기를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대견한 모습도 보이고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모습도 보일 것이다.
어찌되었건 모두 다 꺼내 싸악 늘어놓아 스스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순간은 참 중요하다. 살아온 나날들만큼  얽히고설킨 여러 관계가 주는 이름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의 본질을 들여다보고자 노력하면, 뜻밖의 낯선 나가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또 다른 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나’에게 한 번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언제  행복한가, 또는 언제 행복하지 않은가.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기분이 좋은가.
나의 에너지가 솟아오를 때는 언제, 어떤 때인가.
지금 내가 채우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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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섬(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 ⓒ제주의소리
당장 답이 나올 수도 있고, 답을 찾기가 힘들 수도 있다.
답을 당장 찾아도 좋고, 조금 늦어도 좋다.
그 과정에서 요즘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정답은 절로 나올 것이다.

자 이렇게 아름다운 날에, 연말의 복잡함이 채 다가오기 전에 오로지 혼자 있음을 즐기며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낭만 가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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