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송 신동철 화백...재선충으로 죽어가는 소나무 화폭으로 되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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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송(玄松) 신동철 화백. ⓒ 제주의소리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고요하고 아늑한 올레길 옆. 제주 특유의 모습을 지닌 감귤창고 외벽에 온통 소나무가 새겨져있다. 소나무 화가, 현송(玄松) 신동철 화백의 작업실이다.

손꼽히는 진경산수화가 신 화백은 담백한 산수와 안온한 서정, 현실에서 포착한 이상의 표정들을 담아내는 게 특징이다. ‘느림의 미학’이 그의 작품세계의 토대를 이룬다.

스물셋에 뒤늦게 들어간 중국 북경 중앙미술학원에서 진경산수화를 배웠고, 중국의 대가 가우복(賈又福) 선생이 인정한 첫 외국인 제자가 됐다. 중국 북경 중앙미술학원에서 20여회의 개인초대전을 열었고, 전국 각지에서 200여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세계평화미술대전, 통일미술대전은 물론 국전인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심사위원을 역임하기도 했고, 미술평론가들이 뽑는 ‘이달의 작가’에도 수차례 올랐다.

경기 양평과 서울을 넘나들며 활동하던 그가 제주로 향한 건 올해 3월. 평생 연이 없을 거 같았던 이 곳을 택한 건 아내의 건강 때문이었다. 위암으로 시작돼 췌장암까지 번져 위태로웠다.

어느 날 미술계 지인들과 술을 먹던 신 화백은 ‘제주로 가면 좋지않겠냐’는 얘기를 듣는다. 우연히 나온 얘기지만 뇌리에 강렬히 꽂혔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바로 짐을 싸 제주로 향했다.

소나무에 둘러싸인 목조 건물, 과거 밀감저장창고로 쓰이던 집. 마치 그를 기다리던 것만 같았다. 건물 사방에 먹으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소나무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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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송(玄松) 신동철 화백. 그림은 수산 곰솔. ⓒ 제주의소리

새롭게 시작된 제주에서의 생활. 아내의 낯빛도 점점 좋아졌다. 암 진행이 멈춘 것. 그는 “제주로 와서 천만다행”이라고 자신의 선택을 흐믓해한다. 비단 아내에게만 좋은 게 아니었다.

요즘 그는 제주 곳곳, 숨겨진 근사한 장소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게 하루 일과다. 한라산과 수산봉, 해안가, 용천수, 현무암과 황칠나무, 송악산과 수월봉, 황칠나무와 현무암, 제주의 흙.  눈길 닿는 곳마다 온통 그의 그림이 될 작은 우주들이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작가들이 제일 좋은 곳이 제주라고 생각을 해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곳이에요. 섬이면서도 대륙같은 맛이 있고, 이 모든 걸 산 위에 올라서면 다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는 풍경화를 그릴 때 사진을 찍는 대신 현장에 5~6차례는 가서 보고 익히고 스케치를 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그는 이를 두고 ‘내가 그 만큼 실력이 안된다는 것’이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사실은 그 사물을 온전히 담으려는 그의 의지다. 제주의 자연은 더더욱 그렇단다. 

제주의 자연 뿐 아니라 제주의 마을들도 그에게는 그에게 영감을 주는 화수분이었다.

“인물은 안 들어가는 대신 거기 역사를 집어넣는 작업이기도 해요. 제주 마을 곳곳의 역사를 넣고 싶기도 합니다. 제주 역사를 둘러보니 이걸 제대로 찾아다니려면 20년도 부족하겠더군요. 우리 동네 ‘물통’도 사연이 많더군요. 이런 것들을 다루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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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송(玄松) 신동철 화백의 작은 갤러리. 온통 소나무로 가득 차있다. 손에 든 거친 대형 붓이 눈에 띤다. ⓒ 제주의소리

소나무가 사라진다, 현송에 눈에 비친 비극

“수묵과 채색의 조화를 통한 실경의 표현과 강한 먹색이 두드러지는 소나무의 자태, 그리고 소소한 농촌 기물들이 어우러지는 작가의 작업들은 분명 농촌 서정에 대한 감상적인 접근과 이해가 두드러지는 것이다”(김상철 월간 미술세계 주간)

“살아서 꿈틀대는 거목의 웅혼한 자태를 담아냈어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면 정겹다”(김택근 시인)

“현송이 그린 소나무를 보고 말았다. 말하고, 웃고, 떠들거나, 침묵하는 소나무를 보게 된 것이다. 아니, 소나무로 만들어진 사람을 보게 된 것이다”(자유기고가 최영심)

모두 현송의 작품을 두고 한 말 들이다. 이처럼 그와 소나무는 떼려야 뗄 수 없다.

감귤저장창고를 개조한 만든 20평 남짓한 그의 갤러리 역시 온통 소나무로 가득 차있다. 짙고 웅장한 먹으로 바닥 위 그린 대형 작품은 산천단의 곰솔이다. 그만의 화법으로 그려낸 수산의 곰솔 혹은 한라산 영실의 적송도 볼 수 있다.

사실 이는 죽어가는 것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추모곡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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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송(玄松) 신동철 화백. ⓒ 제주의소리

그가 제주에 온 이번 3월,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충격을 받은 건 통째로 스러져가는 소나무들이었다. 재선충. 그에게는 특히 더 끔찍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소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더군요. 저는 많이 울었어요.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흔하니까 사람들이 귀한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사라져버리게 되면 정말... 어떻게 말을 해야될 지 모르겠네요”

이젠 소나무를 볼 때 마다 불안하단다. 전남 완도 고금도에서 태어나 북경과 서울을 거쳐 생전 연이 없던 제주에 정착한 외지인이지만 누구보다 섬의 뿌리를 깊숙히 사랑했기에 마음이 좋지 않다. 안타까운 건 또 있다. 제주가 가진 특유의 풍경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아쉬움이다.

“옛 돌담과 옛 제주집, 그리고 자연. 이런 것들 파괴 좀 안 시켜주면 좋겠어요. 이런 걸 지켜야지요. 제주에 곳곳에 산재해 있는 자연들이 개발되다보니 사라지더군요. 또 올레길도 너무 상품화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감동과 안타까움의 감정이 교차하면서 이 공간에 대한 애정은 더욱 깊어졌다. 그는 제주에 아예 못을 박기로 했다.

지역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작은 도서관도 꾸미고, 사정이 더 나아지면 여기에 미술관 하나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단다. 그가 웃으며 “육지에서 작가들 오면 나쁜 짓 하러 온 거 아니니 마음을 열어 달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시 한 번 건물을 찬찬히 둘러봤다. 들어갈 땐 보지 못했는데 자세히 둘러보니 건물 위로 소나무 가지가 지붕인 듯 건물을 덮고 있었다. 영락없는 ‘현송(玄松)’의 집이었다.

오늘도 그는 사라져가는 소나무를 담기에 여념이 없다. 한 그루라도 더 빨리 화폭에 담고 싶은 맘이다. ‘사람들이 소나무가 흔해서 귀한 줄 모른다’는 그의 쓴소리가 진정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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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송(玄松) 신동철 화백의 작업실. ⓒ 제주의소리

◆현송갤러리 찾아오는 길

제주시 한경면 대한로 1028-3(청수리 1368번지)
신동철(010-7621-9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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