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끝내 울리지 못한 종

잠수사들이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도 오랜 시간 수중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다이빙벨은 세월호 침몰사고의 실종자 구조에 있어서 유용성 여부를 떠나 별다른 뾰족한 수단이 없었던 상황에서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구조당국은 300명이 넘는 실종자들의 죽음이 일촉즉발에 달려 있는데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골든타임 두 시간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다가 이제는 조류와 유속 등을 구실로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럼에도 특별한 이유도 없이 다이빙벨의 투입을 반대하는 구조당국의 태도는 무능함과 무책임함을 넘어서 의도적으로 구조를 방관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실종자 가족들의 강력한 주장에 힘입어 다이빙벨은 몇 명의 잠수사들과 함께 온 국민의 간절한 염원을 싣고 침몰선에 갇힌 실종자를 구하기 위해 칠흑같이 어두운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다이빙 벨은 끝내 축복의 종소리를 울리지 못했다. 왜 다이빙 벨은 실패했을까?

의도된 실패?

논픽션 기록물 영화 ‘다이빙 벨’은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벨이 구조현장에 도착한 날부터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대부분의 주요 장면들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카메라의 눈은 진실을 덮고 있는 심연의 어둠 속을 향해 구조하지 않는 해경, 책임지지 않는 정부, 거짓을 퍼뜨리는 언론 등 세월호 구조를 둘러싼 수수께끼를 생생한 화면으로 펼쳐낸다. 이 영화를 감독한 이상호 기자는 추측에서 섣부른 결론을 이끌어내기보다 숨 가빴던 구조 현장을 담담한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공정한 판단을 관객들에게 맡기는 태도를 취한다.

이 영화는 다이빙 벨의 실패는 예정된 결과임을 암시한다. 아니, 예정됐다기보다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해 의도된 것이라는 섬찟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모두 세 차례 투입 시도에서 두 차례는 해경과 언딘이 현장에서 몰아내는 바람에 다이빙벨은 바닷물에 몸체를 적셔보지도 못한다. 세 번째 시도에서 다이빙 벨은 드디어 장시간 잠수에 성공하며 탁월한 효율성을 입증한다. 그러나 구조당국은 다이빙벨이 성능을 입증하는데 성공한 것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해경의 위협적 시위와 비협조적 태도가 이어졌고 다이빙벨은 결국 현장에서 철수하기에 이른다. 사실상 쫓겨난 것이다.

권력의 나팔수

다이빙 벨의 소유회사인 알파 잠수기술공사는 세계최고의 선박검사 감정기관인 로이드 선급협회의 공인을 받은 해난구조 전문업체로서 국내 해상구난 업계에서는 선구자로 불린다. 그러나 이 업체가 다이빙벨의 철수를 결정하자 국내 언론들은 마치 실패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 뉴스를 일제히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언론들은 처음부터 다이빙벨에 대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빈 깡통’이라고 깎아내리며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터였다.

다이빙벨이 장시간 잠수작업에 성공하는 장면은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던 언론들이었다. 애당초 사고현장의 실상은 외면하고 정부에서 나눠주는 보도 자료만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읊어대던 그들이었다. 삼백 명이 넘는 승객들의 생사가 경각에 달려 있는데도 ‘승객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날림으로써 침몰 전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드는데 일조를 했던 그들이었다.

이런 그들이 “빈대도 낯짝이 있다”라는 격언을 무색케 하듯, 실종자들을 구하기위한 선의의 일념으로 만사를 제치고 상당한 자비를 들여 무거운 장비를 끌고 먼 길을 달려온 알파 잠수사의 이 종인 대표를 먹잇감으로 삼아 전후맥락은 뺀 채 결과만 놓고 피에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물어뜯었던 것이다.

이 나라에 정녕 진정한 언론이 살아있을까? 이 상호 기자는 이제 언론이 단지 ‘권력의 나팔수’만이 아닌 권력 그 자체가 돼 버렸다고 한탄한다. 그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서민들 몫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영화가 끝난 자리에 마련된 관객들과의 대화에서 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한 여학생의 어머니는 “언론이 제 역할만 했더라도 딸이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이제 우리 언론은 영원히 울리지 않는 다이빙벨이 돼 버렸다.

현대판 조삼모사

영화에서 이종인 대표는 구조작업을 방해했던 이들을 ‘악마’라고 막말을 했다. 여기에는 당연히 우리 언론들도 포함돼야 하지 않을까.

지난 정권만 하더라도 언론들의 따뜻한 비호 속에 4대강 공사와 해외자원 개발에 무리한 투자를 하는 바람에 50조에 가까운 국민들의 세금을 허공에 날려 버렸다. 장구한 세월 대대손손 아름답게 흘렀던 강물을 불과 5년 임기의 별정직 공무원인 대통령이 일거에 ‘녹조라떼’의 시궁창으로 만들어버린 4대강 공사를 당시 언론들은 ‘녹색성장 산업’의 동력이라고 노래를 불러댔다.

더욱 가관인 것은 단 일 달러짜리 외국자원개발 업체를 몇 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거금을 들여 사들이며 국제적 호구 짓을 하는데도 ‘CEO출신 대통령의 역량 발휘’ 혹은 ‘해외자원 투자의 역사적 개가‘라고 떠들어대며 격찬했던 언론들의 우스꽝스런 모습이었다.  

여야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조사대상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책임자들의 입맛대로 만들어진 세월호 특별법으로 기소권과 수사권도 없이 진실이 규명될 수 있다고 정말로 믿고 있는 사람이 그들 중 몇 명이나 될까. 약자들을 먼저 배려함이 없이 패거리를 지어 자신들의 이익에만 골몰하니 ‘작당’이요, 짜고 치는 고스톱을 고분고분한 약자들에게 눈가림을 하니 ‘협잡’이다. 그들은 오히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양보를 해달라며 ‘악어의 눈물’을 흘린다. 선거 때는 뼛속까지 바꾸겠다고 읍소를 하더니 선거가 끝나자 머리털 끝 하나 건들려 하지 않는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가 어느덧 국민들을 잡아먹는 괴물이 됐는가. 거세당한 언론과 함께 그들은 자신들만의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침몰한 진실을 건져 올리려는 수많은 다이빙벨들을 막으려는 어둠의 세력의 저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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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기자는 “지지하는 시민들의 양심의 부력이 있는 한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고 위로한다. 그의 말대로 필자도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진실이 언젠가 역사 앞에 그 진면목을 드러낼 것을 간절히 희망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우리들의 행동하는 양심이 살아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시위행렬에 나선 유가족들을 취재하면서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던 그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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