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대한 아홉 가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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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레코드] (36) Jatuh / Liyana Fi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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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tween The Lines / Liyana Fizi (2011)

부루기 대나무숲에 이는 바람 소리.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대나무활. 한라산에 토끼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무렵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맹꽁이를 찾기 힘들어지자 소리의 멸종에 대해서 생각했다. 황동규 시인이 이 세상에 두고 가고 싶다고 한 귀. 가령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앵콜 요청 금지’를 듣는 귀. 소리도 젖으면 슬프다. 멧비둘기 소리 그치면 아이가 젖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까. 사실 집은 이미 깊은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다. 아주 가끔 몇 가닥의 불빛이 창문을 비추지만 멀리서도 빈집인 것을 알고 돌아서는 걸까. 빈집에 가득한 라디오 소리. FM 주파수는 낡은 지도였다. 음악에 맞추어 부유하던 날들. ‘오빠’라는 호칭은 분홍색 단추 구멍 사이로 부는 봄바람 같다. 누군가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음악이 되는 것을 스무 살 무렵에 알았다. 애칭이 곧 음악이었다. 궁극에는 이별이라는 음악에 우리는 전도 되었고, 발각 되었고, 혐의를 뒤집어썼다. 담배나 술이 악기라는 것을 눈치 챈 것은 전역할 무렵이었다. 밤에 방파제 위에 앉으면 술이 줄 끊어진 기타였다. 그리고 ‘Liyana Fizi’의 목소리. 마른 수수깡으로 만든 계절 같은.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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