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메탈 몽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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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레코드] (37) Overnight Sensation / Fire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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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EHOUSE - FIREHOUSE (1990)
제주 청소년 ‘탑밴드 페스티벌’을 봤다. ‘Dream Theater’의 ‘Pull Me Under’나 ‘Firehouse’의 ‘Overnight Sensation’을 거의 똑같이 카피하는 고등학생들은 말 그대로 메탈 키드였다.  이러다 내년엔 ‘AC/DC'나 ‘Iron Maiden’의 연주와 노래를 재현해 내는 팀이 나올 수도 있겠다. 밴드부 연습실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찐따였던 나는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아류들끼리 모여 메탈의 계보를 그리며 서로 옥신각신했다. 그때의 주류는 단연코 ‘Metallica’와 ‘Bon Jovi’였다. 그래서 우리도 그 라인에 설 수밖에 없었다. 헤비메탈의 교과서 혹은 바이블이라 불리었던 메탈리카. 락과는 거리를 뒀던 친구들까지 락 스피릿으로 물들게 했던 대중친화적 본 조비. 자연스레 두 파로 나뉘어 숭상했고 서로 이교도를 보듯 경계하며 때론 경멸하기도 했다. 어쩌다 ‘Skid Row’나 ‘Helloween’ 같은 소수종파가 위력을 과시하며 주류를 엿보기도 했지만 의외의 복병이 나타나면서 게임 아웃 되었다. 그것은 ‘Nirvana'였다. ’Rage Against The Machine‘이 나와 아주 약간 왕좌가 흔들리기도 했지만 폐왕 메탈리카는 명분도 없이 허겁지겁 얼터너티브로 옷을 갈아입고 재입성을 하려다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커트 코베인을 무너뜨린 것은 리볼버 한 자루였다. 이 모든 한낮의 꿈 같은 계보가 말 그대로 언더그라운드로 전락하고 비주류가 된 헤비메탈은 깊은 동면에 들어갔다. 군웅할거의 시대로 명맥은 유지되고 있으나 다시 수면 위로 나오기까지 수많은 담금질이 필요하다. 한때 한국 헤비메탈의 비상구가 부산이었던 것처럼, 얼터너티브 락의 불꽃이 시애틀에서 타올랐던 것처럼 제주가 한국 헤비메탈의 마그마가 되기를 꿈꿔 본다.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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