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항쟁 56주기를 맞이하며..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죽은 자'의 목소리를 우린 들을 수가 없습니다. '살아남은 자'들도 모두 무서워서 숨죽여가며 애써 외면해 버리는 역사적 사실이 바로 ‘제주4.3항쟁’이었습니다.

나는’4.3항쟁’에 직접 가담한 한 '살아남은 자'인 이삼룡 선생(80, 토쿄 거주)을 직접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아직도 그 당시 악몽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고 숱하게 스러져간 동지들을 대할 면목이 없다고 자백하였습니다.

나는 그 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이런 우문을 던졌습니다.

 “왜 항거했나요?” 당시 막강한 미군정에 도전해서 살아 남을 수 있고 또 그 세력은 이길 수 있다고 봤나요?"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럼 왜요?"

"집에 가만히 앉아서 죽느니 차라리 한 번 '항거'라도 하다가 죽자!" 이런 결론에서 출발했다고 하더군요. '달걀로 바위치기'란 것을 모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조천과 모슬포에서 청년들이 일제출신 경찰들(주로 서북청년단)에게 고문치사 당하는 것을 목격한 이들은 조천에서 모여서 "'무장항쟁'을 할 것인가?"를 두고 격론을 벌였답니다. 모두 19명의 의기투합 된 청년들이 모였는데, 비밀투표로 결정을 했답니다. 12명은 '무장항쟁'을, 7명은 '신중론'을 폈답니다.

적어도 미군정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 수는 있다는 것을 제1목표로 하고...."우리들의 '항쟁'이 그렇게 비화될 줄은 아예 예상을 하지 못했다...희생된 분들께 너무도 미안하게 생각한다"라고 회상하더군요.

미군정과 이승만은 당시 '신식무기' 만을 믿고 제주도를 초토화해서 소위 '빨갱이' 의 씨를 말리자고 했던 것이지요.

'제주4.3사건 진상조사'가 마무리되고 보고서가 작성된 마당에도 4.3 위령제 위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여러 분들이 있습니다. 오로지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소위, 희생자)만이 그 서열에 설 수가 있다고 합니다.

외람된 주장일지는 몰라도 '항쟁'의 일선에 섰다가 죽어간 이들도 모두 '4.3항쟁’의 희생자임에는 틀림없다고 봅니다. 이 분들을 우리가 다시 심판대에 올려 놓고 두번 세번 죽인다면 이건 인간의 도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난 이를 두고 '부관참시'라고 했습니다.

서로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용서하는 일이 남아 있지요. '살아남은 자'들의 도리가 그것이지요.

수년 전 지리산 위령제에서 군 토벌대 출신과 빨치산 출신 두 영감이 만나서 얼싸안으면서 화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웠습니다. "난 너를 잡아 죽이려고 x나게 좇아 다녔고 ..."난 너를 피해서 x나게 도망쳤지..." 저들은 우연하게 생년월일이 똑같더군요. . '운명적인 만남'(=숙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모두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 주장하더군요. 저들이 말하는 ‘우리의 조국과 민족’은 지금의 분단된 조국과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용산 한국전쟁 기념관 마당에 들어서면 왼편에 인민군 동생과 국군 형이 서로 얼싸안고 있는 동상을 접하게 됩니다. 너무나도 감명깊은 장면입니다. 그러나 기념관 전시관 2층에 가면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에게 보내는 영문편지는 이런 화해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자랑거리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육지 각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한국전쟁 직후 공권력에 의해서 처형된 억울한 죽음들, 그리고 제주 국제공항과 이름 모를 산과 바다에 묻혀버린 죽음들...우리가 수습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이들의 명예를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는 논의의 대상밖에 놓여져 있습니다. 이게 또한 우리들 살아남은 자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외래 종교나 다름없는 이데올로기의 싸움으로 두 동강난 한반도가 평화통일되는 날 아마도 우리는 ‘제주4.3항쟁’을 제자리 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자의적으로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희생되었든지, 타의에 의해서 희생되어 갔든지 간에 모두 억울한 죽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한국전쟁에 죽어간 숱한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집니다.

오늘 제주4.3항쟁 56주기를 맞이하는 제주인들의 심정은 터질 것만 같습니다. 대통령이 이 위령제에 직접 나와서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고 명예회복은 물론이고 국가배상과 같은 사후대책을 선포해야 하는 마당인데도 ‘탄핵소추’로 인해서 그 직무가 정지되어 있다는 현실이 지나간 역사의 필름을 되돌려 보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힙니다.

언제 우리가 ‘수구’의 망상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진보’를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선조들이 외쳤던 그 함성과 항거는 바로 외세를 배척하고 자주 독립된 조국이었음을 다시 상기하면서 '산자의 도리'를 다짐해 봅니다.
그날 나는 억울하게 희생되어간 여러 선조님들의 명복을 새롭게 빌겠습니다.

2004년 4월 3일 새벽녁에

살아남은 자, 이도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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