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인문학 기자단 '와랑'] 노루왕의 꿈/서연주 서귀중앙여중 2학년

토요일 오후 청소년 인문학 기자단 와랑 친구들과 거문오름을 향했다. 청소년 인문학기자단은 제주의소리와 제주문화포럼이 함께 이끌어 주는 기자단이다. 매월 마지막 일요일 문화포럼 지하전시실에 모여 친구들과 글쓰기 수업도 하고 현장학습도 간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가 가장 문화포럼다운 행사라는 청소년기자단 팀장님의 말씀에 잔뜩 기대가 되었다.

전시회장에 도착한 오후 4시. ‘제주 신화전 10년 생명의 숨, 신화의 방’이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벌써 무엇인가 시작되었나 보다. 전통의상을 입은 세 명의 여자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떤 내용인지 정확하게 몰랐다. ‘죽은 아기를 슬퍼하는 모습일까요?’ 팀장님께 물어 보니, “잘 모르지만 모르는 체 감상하면서 스스로 느끼고 나중에 작품해설 찾아보면 그 거리가 멀수록 얻어지는 게 많고 작품해설과 내 생각이 비슷하면 보람도 얻고 기분도 좋아지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나중에는 두 사람끼리 손을 잡고 터널을 만들어 모두 전시회장으로 들어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림 전시회에 들어가니 수많은 그림 속 인물들 때문에 주눅이 들었다. 그림전시만이 아닌 촛불을 들고 행위예술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알고 있는 미술전시라는 틀이 깨진 것 같았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고 공연을 하는데 집중이 잘 되었다. 초가 타는데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쓸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공연이 어떤 내용인지는 잘 모르지만 마음대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해석해 보았다.

같이 간 한란(서귀포여중)은 강요배 선생님의 그림을 좋아했다. 구름으로 치마를 입어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생크림 같기도 한 간단한 그림인데 푹신푹신하게 느껴지고 얼굴이 궁금하다는 것이다. 강요배 화가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읽은 4·3책에 많이 있다. 그런 그림들과 전혀 달라 놀랐다.

천강현(남주중)이라는 친구도 강요배 그림을 좋아 했는데 해골이 그려져 있어서라고 했다. 나도 해골이 그려져 있어서 인상적이라고 말하니 조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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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신화전을 맨 처음으로 맞이하여 주는 것은 페이퍼 커팅(paper cutting)을 한 작품이었다. 내가 가장 오랫동안 서서 바라본 작품은 나현정 작가님의 페이퍼 커팅이었다. 페이퍼 커팅은 도안을 볼펜으로 따라 그리고 커팅용 칼로 자르면 된다. 인내심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안데르센도 페이퍼 커팅을 취미로 하며 수많은 페이퍼 커팅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너무 정교해서 사람이 자른 거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나현정 작가님은 얼마 전 노루를 포획하게 됐다는 기사를 접한 뒤 ‘노루왕’이라는 캐릭터를 탄생시켰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쫒기다 한라산 끝까지 올라가 비밀스러운 굴을 발견하는데 그 굴속으로 들어가면 바다로 이어진다고 한다.

'노루왕'이 '고래'를 만나 결혼하는 내용의 ‘고래를 사랑한 노루왕의 꿈’ 동화는 제주시 애월읍 아트스튜디오 그리메에서 그림자극으로 무대에도 올랐던 적도 있다고 한다. 나현정 화가는 고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제주에서 고래를 볼 수 있다’라는 말에 냉큼 남편, 딸과 함께 이주를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래는 슬픈 동물이라고 말한다. 커다란 몸집을 가졌는데도 사교적이고 유순해 많은 사람들에게 포획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포획의 대상이 되는 고래의 아픔과 유해조수로 지정된 노루의 아픔을 접목시킨 걸까? 그녀는 고래와 노루의 포획 그리고 제주 신화에 대해 많은 생각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생각과 관심을 아름답게 예술로 표현해 낸 것 같다.

전시회를 구경하고 돌아오는데 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저 노을을 보면서도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살았을 것 같다. 신화라는 게 왜 중요한지 몰랐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전시회를 다녀 온 뒤 어떤 책에서 읽은 것보다 더 신화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이런 작품을 작업하는 작가들이 제주문화포럼에 엄청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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