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 (39) 또다시 크리스마스 / 들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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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Ⅱ / 들국화 (1986)
김종길의 시 ‘성탄제’는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와 ‘산수유 붉은 알알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시구가 따뜻함을 준다. 그런데 이 시에는 크리스마스 가까운 도시에 겨울바람처럼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부분이 있다. ‘옛 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라고. 크리스마스 가까운 도시에는 추운 겨울을 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아무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거울을 보여주면 우스운 눈썹과 코도 삐뚤어서 슬퍼할 것이다. 한겨울에 밀짚모자를 쓴 것처럼 추운 겨울을 지내는 사람들. 들국화의 캐럴은 ‘이름모를 골목에선 슬픔도 많지만’이라는 노랫말만이 아니라 가락이 처연하기까지 하다. 가난한 동네엔 눈이 더 많이 내린다. 음지여서 눈도 잘 녹지 않는다. 좁은 골목길이나 계단은 시(市)에서도 제설작업의 손이 닿지 않는다. 긴 겨울방학 동안 눈이 내리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보일러도 잘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어떻게 견딜까. 함박눈 쌓인 아침. 아이들은 장갑도 없이 눈사람을 만든다. 좁은 골목길마다 눈사람이 있다. 모처럼 이름모를 골목이 밝아진다. 들국화 2집에서는 ‘1960년 겨울’이 끝나면 바로 이어서 ‘또다시 크리스마스’가 나온다. 옛것을 그리워한다. 앨범 커버곡은 ‘너랑 나랑’이다./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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