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8년만에 고향 제주를 찾은 김명식 시인

1980년대 4.3자료집 ‘제주민중항쟁’을 발간해 옥고를 치렀던 김명식 시인(60)이 3일 제주4.3평화공원에 모습을 보였다.

8년 만에 고향인 제주에 왔다고 했다. 다섯 살 어린나이에 4.3의 잔혹함을 느낀 탓인지 온 몸으로 4.3을 말해왔던 그가 아무런 소리소문 없이 56주기 4.3범도민위령제가 열리는 평화공원에 불쑥 나타났다.

8년만에 왔다지만 그러나 그는 여전히 제주4.3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그는 어느날 갑자기 가족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어느날 김명식씨의 모습을 본 것은 몇 년전 TV를 통해서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화천군 노동리 선이골 골짜기에서 부인 김용희씨(44)와 15살의 큰 아이에서부터 12살, 11살, 10살, 8살 등 모두 5명의 아이를 자연 속에서 교육시키는 그였다.

4.3재단에 분향하기 위해 늘어선 긴 줄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 선생님은 어디에서 4.3을 느꼈습니까.

“어스름한 노을 속에 하귀에서 어머니와 함께 광령리로 피난 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여동생은 어머니 등에 업혀있고, 형은 어디로 끌려갔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여동생이 우는 거예요. 동네 사람들은 군인들을 피해 웅덩이에 숨어 들어가는데 어머니께서 ‘이 년 때문에 우리가 죽게 됐구나’ 하시면서 갑자기 “가자”고 말하고는 길 가운데로 걸어나가시는 겁니다. 어머니의 치맛바람이 일었는데 그 바람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제주의 바람, 역사의 바람, 그리고 어머니의 바람이었습니다. 다시 하귀 집에 왔더니 돼지 한 마리가 총에 맞아 죽어있습니다. 그런데 기적적인 것은 우리가 그 집에서 4.3이 끝날 때까지 살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웅덩이에 숨어 있었던 마을 사람들은 혹독한 고초를 겪었는데 말이죠.”

- 4.3의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의미를 말씀해 주신다면 .

“4.3은 디아스포라입니다. 유태인들은 그들의 디아스포라를 새로운 이스라엘로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도 4.3으로 흩어진 이웃들을 하나 하나씩 엮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우도 좌도, 상하도 아닌 하나된 4.3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4.3은 이제 국제화가 돼야 합니다. 연구가와 운동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4.3을 국제화 시켜야 합니다. 세계 각국마다 이 같은 아픈 역사가 매우 많은 데 외국학자들은 4.3을 대단하다고 합니다. 제주4.3은 동북아 역사의 첫 장이 될 것입니다 오늘 행사가 56주년이지만 57주년, 58주년, 59주년, 60주년에는 또 하나의 도약이 생겨야 합니다”

- 8년만에 고향에 오신 느낌은 어떻습니까.

“이틀동안 중산간과 바다를 돌아다녀 보면서 이것은 아니다, 제주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느꼈습니다. 바닷가에 가면 횟집이 늘어서 있고 중산간 땅은 다 파헤쳐지고, 도로는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한지…(4.3평화공원) 이 자체도 이렇게 파야만 하는지, 이 자연의 아픔은 누가 달래줍니까. 땅 속에 묻혀 있는 영령들이 흙과 같이 호흡을 하면서 우리와 하나되는 어머니다움이 있어야 합니다.”

- 강원도에서 살고 있는데 요즘은 창작활동을 하지 않습니까.

“산골에서 생활하면서 틈틈이 써 온 시집을 내려고 합니다. ‘하늘 그리운 사람들’이란 제목인데 어떤 때는 이름으로, 어떤 때는 얼굴로 발걸음으로, 또 어떤 때는 어머님으로 나타나는 이 시대를 그리는 내용입니다”

- 좀 구체적으로 내용을 설명해 주시죠.

“참나무 한 그루를 보면 그 속에 제주의 역사가 흐르고, 제주역사 속에 비슷하게 성장해 나가는 나를 봅니다. 하늘과 공기, 흙과 땅, 총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려 냅니다. 어디에선가 갑자기 나타났다가 흩어지는 이름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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