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제주사회에 던지는 5가지 질문] ④ 중산간 보전

2014년은 역사 속으로 저물었다. 지난해 제주사회는 이른바 ‘제주판 3김 시대’를 끝내고 목 말라했던 변화와 개혁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했나. 아직 더디다. 2015년에는 지난 9년간 도민사회와 강정마을에 비수가 된 해군기지 갈등, 광풍처럼 불어 닥친 차이나 자본의 공습, 위기의 중산간 난개발, 대규모 카지노 자본들의 진출 가시화 등 녹록치 않은 현안이 쌓여있다. 제주사회를 향해 도민들이 도민사회에 던지는 질문을 추려봤다. 청양의 해, 순한 양의 지혜로 제주사회 현안과 그 진정한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제주도 중산간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골프장, 콘도, 리조트 등 수년 간 이어진 개발도 모자라 중국자본의 위협까지 높아집니다. 제주섬의 젖줄기와 같은 중산간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제주에서 중산간은 통상 표고 200m 등고선에서 600m사이 지역을 의미한다. 빗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중류역할을 맡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물들이 모여 사는 서식지, 경관적으로도 한라산과 함께 제주도의 경관을 형성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제주도 중산간 지역에 대한 인식은 근 10여년 사이에 크게 변화됐다. 수려한 경관으로 각종 개발사업의 타깃이 됐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더 이상의 훼손 없이 보전해야 할 장소로 꼽힌다.

무엇보다 제주도민들의 생명수인 지하수가 중산간 지역을 통해 형성된다는 점에서 보전가치는 높게 평가받고 있다. 

각종 개발에 눈 감았던 도민여론 또한 본래 모습 그대로 지켜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로 자리 잡은 상황이다.

원희룡 도지사가 취임한 지 한 달 만(2014년 7월 31일)에 “중산간은 보호돼야 한다. 산록도로 기준 한라산방면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경관과 생태환경이 유지되도록 관리하겠다”고 공식적인 개발가이드라인을 밝힌 점은 이런 도민여론과 무관하지 않다.

새로운 제주도 개발가이드라인에 대해 환경단체들이 환영의 뜻을 밝힐 만큼, 원 도정의 중산간 보전 인식은 이전 도백들보다 진일보한 개념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이 과연 얼마나 지켜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상당하다. 특히 민선 6기 출범 이후 진행될 개발 사업은 큰 문제가 없지만, 민선 6기 이전에 인허가 과정을 밟았던 사업은 이미 행정절차를 거친 계획이 새로운 기준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개발사업과 가이드라인의 충돌은 현실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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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년 간 각종 개발사업으로 신음해온 제주 중산간을 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가운데, 원희룡 도정의 개발가이드라인이 주목받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관광지, 애월읍 차이나비욘드 힐 관광단지, 애월읍 애월국제문화복합단지, 애월읍 열해당리조트, 서귀포시 안덕면 라온프라이빗 Ⅱ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상가리관광지의 경우 경관심의, 도시건축심의 등을 비롯해 대부분의 행정절차를 마무리짓고 환경영향평가심의만을 남겨두고 있다. 차이나비욘드 힐 관광단지도 도시건축 심의와 환경영향평가심의만 앞두고 있다. 

라온프라이빗 Ⅱ는 골프장 건설 예정지였던 블랙나이트리조트를 매입해 재추진하는 방식이어서, 이미 운영 중인 골프장들도 콘도 등 숙박시설로 탈바꿈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나머지 사업도 진행 단계별 차이는 있지만 모두 민선 6기 이전에 사업 절차를 밟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중산간 개발 불허’라는 민선 6기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기 까다로운 이유다.

행정도 이 같은 점을 알고 있다. 제주도청 국제자유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중산간에 위치를 두고 있는 사업들의 경우 행정절차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검토해 대응하고 있다”며 “이미 많은 과정이 지났을 경우 행정이 취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남아있는 절차에서 최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에 부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도정의 이런 태도는 중산간을 지켜달라는 도민들의 염원을 가볍게 생각하는 처사라는 지적이다. 

이미 허가를 받은 드림타워 경우에도 도민여론에 힘입어 조정을 이끌어낸 만큼, 상가리관광지를 비롯한 중산간 내 개발 사업은 인허가도 나지 않은 협의단계라는 점에서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드람타워도 인허가가 난 상태에서 제주도민의 정서상으로 정말 문제가 있다고 지사가 판단해 제동을 걸지 않았느냐”며 “중산간에 있는 개발 사업도 아직 인허가 없이 협의단계라면 원 도정의 가이드라인에 준해서 다시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사업자 입장에서는 불합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12년 사업을 신청했으면 그 당시 행정에서 판단했던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식”이라며 “그러나 규정과 가이드라인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인위적으로 타당성 없는 기준을 잣대로 들이댄다면 소송도 불사하겠지만 원 도정의 가이드라인은 수많은 난개발 우려 속에 제주도의 미래와 맞지 않다는 판단으로 제시된 것”이라고 밝히며 행정 입장에서는 충분히 사업 원점 검토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덴힐리조트 등의 사례에서 볼 때 지금까지 개발행위에 따른 각종 심의와 환경영향평가 심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더 크게 볼 때 사실상 공직사회도 개발사업의 편의를 고려한 자세를 취했던 만큼, 이번에야 말로 과감히 보전에 포커스를 맞춘 정책이 실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200m부터 600m까지 제주 중산간 지역에 계획, 공사중이거나 운영 중인 면적 10만㎡ 이상의 대형 관광개발사업장은 무려 19곳에 달한다. 

여기에는 곶자왈 부지에 눌러 앉은 초대형 규모의 신화역사공원이 포함돼 있고 중산간의 마지노선으로 꼽히는 600m 산록도로에 근접한 사업장도 상가리관광지 등 4곳이나 있다. 중산간 지역에 자리잡은 골프장은 30개나 있다.

신음하는 제주도민의 숨골이 더이상 훼손되서는 안된다는 위기감이 도민사회에 커지고 있다. 중산간 보호를 천명한 행정 최고 책임자의 결단과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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