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40) 지붕 위의 별 -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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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에서/변해가네 - 동물원(1988)

연말이면 아버지는 집 근처 새마을금고에 가서 달력을 받아 오신다. 몇 해 동안 마루 한쪽 벽에는 새마을금고 달력이 걸려 있었다. 은행 달력에는 거의 그림이 없다. 숫자가 크게 표시되어 있다. 그림 감상할 겨를 없이 일만 하라는 명령서를 보는 느낌도 든다. 예전에는 멋들어진 그림이 있는 달력들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요즘 달력들은 숫자만 있는 것들이 많다.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모델 사진으로 된 달력이 최고이긴 하지만 그런 달력을 버젓이 벽에 걸어놓기는 민망하다. 그다음으로는 항공사 달력이 좋다. 먼 나라의 사진들은 상상의 여행을 하게 만들어 어느 서랍 속에 처박혀 있는 여권을 찾게 만들곤 한다. 건너 건너 기상청에 다니는 공무원을 알게 되어 대뜸 기상청 달력을 부탁했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달력 제작 부수도 줄어들었다는데 새해 들어 기상청 달력을 받을 수 있었다. 기상 사진, 절기, 평균 기온, 달의 위상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낚시점에 가면 낚시 달력을 볼 수 있다. 조금, 사리 등의 물때를 표시한 것이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낚시 달력처럼 기상청 달력은 구름과 햇빛과 바람이 내 몸을 휘감는 것 같다. 기상청 달력을 보고 있으면 날씨가 멜로디처럼 흐른다. 내년 목표는 외국에서 발행된 달력을 벽에 걸어놓는 것이다. 몽골 달력은 어떨까? 우즈베키스탄은? 아이슬란드는?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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