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딧 가까이보기-만난 사람] 외화번역가 이미도

# 이미도 1:0 관객

약 100여명의 관객에서 반은 그가 ‘여자’인줄 알았다.

“난 ‘미도’하니 여자인줄 알았어요” “번역이 워낙 섬세해 남자는 아닌 줄 알았지”

일부 관객들은 예상보다 다른 그의 모습에 뒷통수를 얻어 맞은듯 한 반응이었다. 사실 여자든 남자든 무슨 상관이랴. 그만큼 외화를 볼때마다 영화의 마침표를 찍는 그의 흔한 이름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는 증거일 것이다.

영상에서 실재로 드러난 그의 본 모습은 소탈하기 그지 없었다.

듬성듬성 흰 머리에 열렬한 도보의 흔적이 엿보이는 등산화, 경직되지 않은 여유로운 얼굴 , 가는 음색의 목소리 등... 국내를 대표하는 ‘외화번역갗는 관객들의 예상을 뒤엎고, 서로간 장벽을 허물고 관객들을 만났다.

제주씨네아일랜드와 프리머스 시네마 아트플러스 제주가 공동 주최한 ‘엔딩크레딧 가까이보기’에 ‘외화번역갗 이미도씨가 등장했다.

시종일관 관객들은 이미도씨의 달변에 압도당하시피 했다.

▲ 외화번역가 이미도.
“작품을 편식하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가슴 따뜻한 휴먼드라마를 좋아해요. ‘이보다 더 좋을순 없다’(잭니콜슨 주연) 같은...아, ‘아이엠(I am) 삼(Sam)’('아이엠 셈'-숀 펜 다코타페닝 주연)도 좋아해요” (관객 폭소)

영어를 잘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영어를 ‘업’으로 삼다보니 ‘영어’를 정복키 위해 목말라있는 관객들은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칠 수 없다.

이미도씨와 관객과 ‘밀고 당기는’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 이미도 1:1 관객

정해진 강좌시간 1시간 30분을 넘어서 두 시간 가까이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자주 찾는 제주지만 대중들을 상대로 강의를 한 것은 처음인지라 관객의 공격을 자연스럽게 받아치면서도 가끔은 움찔한 반응을 보였다.

“듣던 것 보다 많이 참석해 주셨고,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셔서 참 감사하네요”

“무엇을 번역할 것이냐에 대한 생각을 하세요. 언어는 문화에요. 외화 속 대사들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긴 어려워요. 우리 문화에 맞게 의역이 필요한 거죠”

“‘슈렉 2’를 보면 'Far far away kinddom'이 나와요. ‘Far far away'는 스타워즈의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에서 따온거라 미국민들은 척 들으면 다 웃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이미도씨는 ‘Far far away'를 직역한 ’아주 먼‘을 재치있게 ’겁나먼‘으로 바꿨다. 실제 ’슈렉2‘를 보면 ’겁나먼 왕국‘으로 번역됐다.

“외화번역가는 영화 한편 갖구 계속 돌려보면서 번역할 것 같지만 사실 영화를 딱 한번 보고 번역해야 해요. 동영상 따로 주지 않아요”

놀랍다. 그럼 ‘반지의 제왕’같은 런닝타임이 겁나먼 작품도 한번만 보고 번역한단 말인가. 답은 “그렇다”다.

“영화 개봉전에 동영상이 유출되는 것을 막는거죠. 단, 영화 대사 녹음은 가능해요. 그래서 번역가는 기억력, 관찰력이 굉장히 좋아야해요. 녹음된 대사를 들으면서 장면을 연상해야 해요”

# 이미도 2:2 관객

'밀고 당기는‘ 기싸움이 치열하다.

아마도 절충점을 찾아야 할 듯하다. 물론 처음부터 이들은 서로 발전적인 관계를 모색하던 터였다.

   
‘외화번역갗 선생님은 많은 것을 주고 싶었고, ‘관객’ 학생들은 가급적 많은 것을 받고 싶었다. 정해진 시간이 한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학생들의 영어실력 발전과 끊임없는 학습 의욕을 높이기 위한 ‘처방전’을 내렸다.

선생님은 “허리병에 걸리지좀 마세요”라고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허리병?’.....아, ‘허리(Hurry) 병’.

“120분만 하면 영어를 잘 한다느니, 6주만에 영어가 완성된다느니 하는 학습법은 영어를 순 날로 먹겠다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훈수한 뒤 “여러분이 한글을 배울때 조급하지 않았듯이 영어도 조급하면 절대 안되요”라고 ‘고기’를 주기보다 ‘고기잡는 법’을 우선 알려준다.

“아버지가 ‘통역장교’셨어요. 자식이 영어를 잘하길 바라셨나봐요. ‘브레이크(break)' 하나쓰는데 공책 5장이나 들었어요”

“아버지는 저보고 ‘브레이크’를 ‘블레이크’라 발음한다고 얼마나 때리셨는데요. 전 왜 맞아야하는지도 모르고”

이미도씨는 ‘영어’를 곧 ‘활어’라 칭한다.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쉴새없이 말해지고 들어야하는 언어이고 문화라 일정기간 공부했다고 정복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

따라서 영어 학습도 살아있는 언어 중심으로 하라고 권한다. 대표적인 것이 그의 주전공인 ‘영화’.

“영화 속엔 실제 미국민들이 쓰는 표현들이 대부분 들어가 있어요. 유명한 외화 DVD를 사고 원문으로 한번 보세요. 그 뒤 인터넷 서점에서 그 작품의 ‘영상소설’을 읽으세요. 그러면 분명 다음 DVD를 볼땐 몰입이 쉬울거에요. 그만큼 영어가 쉬워지고 친숙해지는 거에요”

그가 추천하는 대표작은 나이트 M. 샤말란 감독의 ‘식스센스’.

“극중 브루스 윌리스가 하는 대사가 느려요. 등장인물 대부분 대사가 느리죠. 대사가 많지도 않고. 한번 해보세요”

이미도씨와 관객들이 내뿜는 열기가 강의장을 채울때쯤 승부가 났다. 2:2 무승부다. 양쪽 승부는 다음에 결론지어야 할 듯 싶다.

이미도씨도 다음 승부를 의식했는지 올해 하반기 제주에서 외화번역 ‘전문강좌’를 준비하고 있다. 이 강좌 또한 제주씨네아일랜드가 주최할 예정이다. 다음 승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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