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문학' 몸으로 보여온 34년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빙의’ 출판기념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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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신간 '빙의'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김수열 시인(오른쪽)이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제주의소리
시력(詩歷) 올해로 34년. 시인의 얼굴은 사람 좋아 보이는 털털한 미소에 하회탈 눈웃음까지 퍼주는 영락없는 마음 좋은 동네 아저씨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과 어울리기를 즐기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다가 어느 날 시인이 됐다. 시인은 최근 다섯번째 시집을 펴냈다. 
 
그와 평소 정을 나눠온 선후배·친구들이 한 데 모여 막걸리로 축배를 들며 시인의 새 책 '출산'을 축하했다. 제주시인 김수열(57. 교사)은 “지금껏 사람 속에 살았고 앞으로도 사람 속에 살겠다”고 화답했다.

김수열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빙의’(실천문학사)를 기념하는 출판기념회가 14일 제주시 중앙로 각 북카페에서 열렸다. 

작가의 첫 번째 시집 ‘어디에 선들 어떠랴’ 이후 20여년 만에 열리는 출판기념회답게, 전시회가 열린 북카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한때 교단에서 해직돼 함께 옥고를 치렀던 이석문 제주교육감도 한걸음에 달려왔고, 오는 2월말이면 정든 교단을 떠나게 되는 김 시인의 마지막 재직학교인 제주서중학교 김정두 교장·박홍익 교감,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등 100여명이 함께 했다.

흡사 이날은 동네 잔칫집이었다. 돔베고기(삶은 돼지고기), 빙떡, 김밥, 막걸리까지 한 상 푸짐하게 차려지면서 내내 웃음과 이야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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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이들이 출판기념회를 방문하면서 행사는 성황을 이뤘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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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열 시인이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독자들에게 기념 서명을 남기고 있다. ⓒ제주의소리
출판기념회는 제주MBC 라디오 ‘즐거운 오후 2시’를 진행하는 DJ 오창훈, 임미선 씨가 진행했고, 현택훈 시인과 김수열 시인과 함께하는 토크콘서트, 한보리 씨의 시노래 공연 후 다과회 순으로 진행됐다. 

토크콘서트에서 시인은 자신이 1982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지만 당시에는 시가 아닌 마당굿에 심취했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1989년 교직에 입문 한 뒤 해직을 당하며 4년 만에 학교에 돌아오는 과정을 겪고, 1994년 첫 시집을 펴내면서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되돌아봤다.

시인은 이후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 <바람의 목례>, <생각을 훔치다>, 산문집 <김수열의 책 읽기>, <섯마파람 부는 날이면> 등의 주옥 같은 작품을 펴내며 제주를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으로 우뚝 선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제주시 원도심 일대에 대한 추억을 시 속에 자주 녹여냈다. 동시에 4.3, 강정마을 등 제주의 아픔과 역사를 한순간도 외면하지 않았고, 우리사회를 관통하는 불의와 왜곡된 것들에 대해서도 비켜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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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열 시인(왼쪽)과 출판기념회에서 토크 콘서트 사회를 맡은 현택훈 시인(오른쪽).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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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열 시인. ⓒ제주의소리
원도심에 대한 추억을 묻는 질문에 “집이나 고향을 떠나고 싶은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집에 대한 그리움이 생긴다”며 “예전 집안 사정으로 살던 집을 나가게 됐는데 지금은 빈집으로 남아있다. 그곳을 가끔씩 혼자 둘러보며 추억에 잠긴다. 주변 골목을 걷다보면 어릴 적 친구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시인은 “내 시의 모태이자 근원은 크게 두 가지다. 어머니와 어릴 적 자랐던 고향”이라며 “옛 모습이 사라지는 무근성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람 없는 저녁에 쓸쓸해진 무근성은 한 편의 시가 돼서 다가온다”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근래 부친의 죽음을 경험한 작가에게는 이번 빙의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 시집에는 그분의 흔적이 드문드문 박혀있다...부끄러운 이 글에도 눈길 한번 주십사 하면 지나친 욕심일까? 나이가 들수록 내 글의 눈높이가 그 분을 닮아간다"는 시인의 말에는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을 느낄 수 있다.

각종 사회적 사안을 다루는 실천 문학에 대해서는 “늘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부끄럽다. 노력하는 입장”이라며 말을 최대한 아꼈다.

그렇지만 이번 ‘빙의’에서도 제주 강정마을, 아프리카 노동자, 북한 주민, 학살을 경험한 베트남 주민 등을 소재로 다루면서 여전히 그의 시선은 낮은 곳을 향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 신간 속 '시인의 말'을 낭독하는 김수열 시인(왼쪽). ⓒ제주의소리
특정 인물에 대해 시를 쓰는 것은 어떠냐는 질문에는 ‘사람과의 관계’로 답했다.

시인은 “저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 시를 쓴다. 잊혀져 있다가도 느닷없이 (사람이) 떠올라 제게 시를 선물한다”며 “어느 외국에는 ‘사람은 나이가 50이 되면 숲으로 들어간다’는 속담이 있는데, 저는 50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 속에 살고 있다. 앞으로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게 될 것 같다”고 참석자들을 바라봤다.

제주어에 대한 시인의 생각도 질문에 등장했다. 그는 이번 시집에도 제목과 동일한 <빙의>를 비롯해 <상군해녀> <폭설> 등 일부 작품을 제주어로 써냈다.

시인은 “제 시에는 제주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있게 말했다. 또 5~6살 정도에 한글을 깨우쳤지만 제주어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배웠다며 제주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

시인은 “4.3 현장을 취재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말씀이 그대로 시가 되곤 했다. 제주어 시를 표준어로 고쳐서 내면 의미가 살지 않는다”며 “제주어는 한번도 가해자의 위치에 있지 않았다. 늘 피해자의 언어였다. 의도적으로 제주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주어가 아니면 안되는 시가 있다. 앞으로도 제주어로 시를 쓰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한 권의 시집은 시들이 세 들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한다. 빙의는 70여편의 시가 사는 집”이라며 보석처럼 심혈을 기울여 써낸 새 책에 대한 소개를 마쳤다.

빙의 / 김수열


 옛말 고르커메 들어보라

 느네 성할망은 느네 아방 낳고 소박맞앙 여든 나도록 촌집에 혼자 살아시녜 어느 날 집에 강 보난 우영팟엔 검질이 왕상 정지엔 거미줄이 고득허연 아이고, 영허당 죽어져도 모를로고나 싶언 옷가지 몇 개 이불 보따리에 싼, 집으로 모셩와신디 온 지 얼마 아니 되연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헌거라

 느네 아방은 성할망신디 술은 절대 먹지 말렌 불호령을 해노난 말벗 어신 촌 할망 오죽이나 곱곱해실거라? 보기에 하도 딱허연 아방 모르게 점방에 강 할망 좋아허는 흰 술도 사고 붉은 술도 사고 찬장에 곱져둠서 흰 술 한 잔 붉은 술 한 잔 드려나시녜 느네 아방 모르게

 성안에 온 지 두 달 보름 만에 할망이 오꼿 죽으난 정성치성으로 영장 치르고 왕강징강 구왕풀이도 허고 사십구재도 허연 저승 상마을로 잘 인도해 드렸주


 일 년 만에 소상 치르고 닷새 정도 지나신가 이모한테서 전화가 온 거라 영장 때영 소상 때 부지런히 부름씨해준 진수 어멍이 꼭 할망 씌운 거 닮덴 허멍

 이거 무슨 일인고 허연 와랑와랑 달려간 들어보난 소상 날 밤부터 빌빌빌빌 아프기 시작허여신디 누워둠서 허는 짓이나 허는 소리가 영락없는 죽어분 할망이렌 허는 거 아니라?

 내가 봐도 할망이 돌아온거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물이 숨딱허연 손목 심엉 솔솔 달래멍 고랐주


―아이고 어머님아 무사 이제도록 아니 갑디가? 구왕풀이에 사십구재에 소상까지 동그랗게 촐령 보내신디 무신 칭원헌 일이 이선 죄 어신 진수 어멍 몸에 의탁을 헙디가?

―곧고 싶은 말 곧젠 해신디 몸은 진토가 되어부런 잠시 잠깐 놈의 몸에 의탁을 해시난 고라지민 바로 가켜

―경허걸랑 고릅서 어머님아

―고마웁다 메누리야 흰 술 받아줜 고마웁고 붉은 술 받아줜 고마웁다 메누리야 흰 술 한 잔만 받아도라 붉은 술 한 잔만 받아도라

―아이고 우리 어머니 막 기리와났구나게 걸랑 그리헙써 와랑와랑 슈퍼에 달려간 소주 한 병 콜라 한 병 사단 

―흰 술 한 잔 받읍서 붉은 술 한 잔 받읍서, 허멍 드리난

―고마웁다 메누리야 고마웁다 메누리야


닷새 동안 거동도 못허던 진수 어멍 소주 한 잔 쭈우욱 콜라 한 잔 쭈우욱 허연게마는 ‘아이고 시원하다, 이젠 살아지켜, 나 감져’

 벽장더레 돌아눕자마자 소르륵 자는 거라, 죽은 사람고치

 다음 날 아침 그 어멍 ‘아이고 잘 잤져’ 허멍 펀드룽이 일어난 세수허고 로션 바르고 루즈 칠허고 십 년 넘게 다니는 사무실에 출근허연 이십 년 넘게 더 다니단 사오 년 전엔가 죽었덴허여, 여든다섯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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