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선거, 이제는 바꿔야 한다] (1) 너도나도 눈독 왜? 돈.명예 따르는 유명인사 

오는 3월 11일 대한민국 전체가 다시 한 번 선거의 도가니에 빠져든다. 사상 최초로 실시되는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다.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지역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은 대선.총선에 못지않다. 전국적으로 후보자만 4000여명, 선거인 수는 300만명에 이른다. ‘미니 총선’으로도 불리는 조합장 선거의 실태와 문제, 개선방안을 세 차례로 짚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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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 선거는 그 동안 각 조합별로 치러졌다. 임기 만료 시점에 따라 연중 선거가 진행됐다. 선관위는 2005년부터 조합장선거를 위탁 관리해왔지만 1년 내내 선거가 치러지면서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극복하게 위해 작년 6월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의무적으로 모든 조합들이 동시에 선거를 치르게 됐다. 비용이 절감되고 효율적인 관리·지도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제주 지역에서는 총 31개 농·수·축협과 산림조합에서 선거가 실시된다. 예상선거인수는 10만663명에 이른다. 투표소는 21곳, 개표소는 제주시와 서귀포시, 추자면과 우도면 등 총 4곳이다. 

이번 동시선거 이전 제주 각 조합장 선거의 평균 투표율은 85.7%. 대선, 총선의 투표율을 압도한다. 조합원들에게는 자신이 출자한 돈으로 각종 사업을 총괄하고, 권익을 직접 대변하는 자를 뽑는 만큼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과거 불법 만연, 이번에도 제주서 벌써 13건 적발...선관위 단속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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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가 조합장선거 위탁관리를 시작한 2005년부터 최근까지 전국적으로 1400건이 넘는 위법행위가 적발됐다.

후보자가 구속되기도 했고, 때로는 지역사회가 선거 하나로 분열되기도 했다. 조사를 받던 조합장이 목숨을 끊는 일도 생겼다. 제주에서도 돈봉투를 뿌리다 적발돼 대법원 판결(2010년) 끝에 당선무효가 된 경우가 있었다.

조합장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은 자기 알리기에 열심이다. 이 시기에는 꼭두새벽부터 농산물유통센터나 선과장 입구에서 일일이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자연스레 ‘도의원도 도지사도 아닌데 뭐 저리 열심인가’하는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지역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 조합을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이 후보자들이 강조하는 출마의 변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제주지역 농협의 경우 조합장 평균 연봉은 7500만원. 규모가 큰 조합의 경우 연봉이 1억원 가까이 되는 곳도 있다. 제주지역에서 웬만한 직업군은 범접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당연히 구미가 당기는 자리일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더. 조합장에 당선되면 조합에서 벌이게 되는 다양한 이권사업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제주지역 조합 당 평균 ‘교육지원사업비’는 13억7000만원에 이른다. 한 지역 단위에서 이 정도 사업비를 운용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는 것은 웬만한 지역유지 이상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이 13억7000만원은 조합장이 직접적으로 농업인들의 교육이나 복지를 위해 사용한 금액만 포함된다. 대형 조합이 추진하는 경제사업 총 규모가 1000억원이 넘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판매, 구매, 유통 등에서 이권이 개입될 여지는 더 많아진다.  

조합은 조합원들의 돈이 모이는 곳이다. 그리고 조합장은 모인 돈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자리다. 돈의 움직임을 관리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는 말이다.

‘명예’도 얻는다. 지역 내 각종 행사 마다 주요 기관장 다음으로 소개를 받는 VIP 반열에 오르게 된다. 명실상부한 지역유지가 되는 셈이다. 농·수·축협이 지역 내 가장 큰 대형기관인 지역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가 더 심하다. 조합 고유의 금융사업, 유통사업 등에 나서면서 자연스레 얼굴을 알리게 된다. 해당 지역에서는 웬만한 선출직 수준의 유명인사가 된다.

조합장을 두고 ‘지역의 제왕’이라고 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명망있는 지역 인사가 눈독을 들일 이유가 충분하다. 기초의원, 광역의원 출신이나 고위공무원 퇴직자들이 대거 이번 선거에 참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자연스레 경쟁이 과열될 수밖에 없다. 

농협 제주지역본부 관계자는 “아무래도 농·수·축협이 농촌에서 가장 큰 기관이기 때문에 지역에서 대접을 받는 측면이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제주도선관위 관계자는 “지역경제에서 농·수·축협과 산림조합을 빼고는 얘기할 수가 없다. 지역 단위에서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게 조합장”이라며 “지역 기관장협의회에서도 반드시 이름을 넣어야하고,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식 때 조합장 이름으로 상장을 줄 정도”라고 말했다.

선관위가 올해 최초로 동시조합장선거를 진행하며 ‘돈 선거 척결’을 내걸었지만 이번 선거와 관련해 제주지역에서 적발된 불법행위만 벌써 13건이다. 사안이 중대하지 않아 대부분이 경고 조치에 그쳤지만 설 연휴를 앞둔데다 아직 공식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이를 감안해 제주도선관위는 지난 12일부터 ‘설·대보름 특별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조합장선거 입후보예정자 등이 설 인사 명목으로 조합원이나 가족들에게 금품을 나눠주거나 찬조금을 낼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서다.

제주도선관위 관계자는 “과열·혼탁선거가 예상되는 지역에는 광역조사팀과 공정선거지원단 등 선관위의 단속역량을 총 동원할 것”이라며 “설 연휴기간에도 상황근무를 실시해 평상시와 같은 신고·제보 접수체제를 갖추고 불법행위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관위가 ‘위탁 관리’한다는 게 무슨 말?

공직선거를 선관위가 관리하는 건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조합장 선거를 선관위가 관리하는 걸 두고 의아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다. ‘위탁’이란 말 그대로 선관위가 어떤 단체의 선거를 대신 맡아 관리한다는 의미다. 여기는 중소기업중앙회, 새마을금고, 조합장 선거는 물론 아파트 동대표를 뽑는 선거까지도 포함된다.

단체 스스로가 평온하게 선거를 치를 수 있다면 최적이겠지만 이권이 많이 걸려있고 분쟁 발생 소지가 많을 경우 신청하면 선관위가 대신 관리, 지도를 해주는 방식이다. 필수비용만 일부 국가에서 지원하고 나머지는 해당단체에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선관위는 2005년부터 조합장 선거를 위탁관리해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1328개의 조합에서 동시에 조합장을 뽑는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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