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선거, 이젠 바꿔야] (2) 화환.찬조.향응에 허위사실까지 혼탁 조짐 

오는 3월 11일 대한민국 전체가 다시 한 번 선거의 도가니에 빠져든다. 사상 최초로 실시되는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다.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지역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은 대선.총선에 못지않다. 전국적으로 후보자만 4000여명, 선거인 수는 300만명에 이른다. ‘미니 총선’으로도 불리는 조합장 선거의 실태와 문제, 개선방안을 세 차례로 짚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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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 선거는 다른 공직 선거에 비해 더 적은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린다. 평균 투표율도 85%가 넘는다. 그 만큼 후보자들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불법이 끼어들 여지가 더 많다는 얘기다.

선관위가 2005년 전국 조합장 선거를 위탁관리하기 시작한 후 적발된 위법행위만 1400건. 제주지역에서도 60건이 넘는다. 이번 선거에서도 벌써 12건이 선관위에 적발됐다. 선거운동 기간 전 전화나 문자로 지지를 호소한 것이 각각 1건, 화환 제공 4건, 행사 찬조 4건, 향응 제공 1건, 허위사실공표 1건이다. 특히 모 조합에서 현직 조합장의 가족에 대해 허위사실을 퍼뜨린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조합장 A씨는 검찰에 넘겨진 상태다. 

지난 10년간 제주지역에서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고발된 경우는 모두 13건. 개별 사례를 뜯어보면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가족들이 동원된 경우도 있고 직접 돈 봉투를 돌린 후보도 있다.

2005년. 제주 지역 모 조합장선거에 출마한 B씨는 선거를 앞두고 지역 초등학교 총동문회 체육대회와 지역 주민 체육대회 등에 방문해 각각 10만원과 20만원을 기부해 고발 조치됐다. 입후보예정자의 친구가 조합원들에게 7만2000원 어치의 식사를 제공해 수사의뢰된 경우도 있었다.

같은 해 다른 조합에서는 사적 목적의 해외관광에 조합의 예산을 ‘견학비 지원’ 명목으로 부당하게 150만원을 제공했다가 적발됐다.

2006년 한 조합장 예비출마자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조합 대의원에게 현금 100만원을 전달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2010년 모 마을 주민 C씨는 전통마을행사 걸궁팀을 이끌고 조합 선거에 출마하는 D 후보의 집을 방문해 금전을 기부할 것을 요구했다. D씨의 배우자는 결국 203만원을 걸궁팀에게 기부했고 이것이 탄로나 고발당했다.

당선 무효라는 초유의 사태도 있었다.

2009년 제주지역 모 조합장 선거에 출마한 한모(64)씨는 어촌계장 김모(62.여)씨 친척 결혼식에 참석한 뒤 운전기사를 통해 김씨와 해녀회장 이모(60.여)씨에게 금품 200만원을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미 조합장에 당선된 뒤였다. 지리한 법정공방 끝에 마침내 대법원은 벌금 400만원을 확정했고, 한씨는 조합장직을 상실해 해당 조합은 재선거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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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3건 적발 “돈봉투 대신 향응은 여전...유권자 의식부터 달라져야”

이마저도 2005년 선관위가 본격 위탁관리하면서 상황이 나아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제주의소리>가 직접 만난 지역 인사들은 한결같이 ‘금품 향응’이 일반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70대 후반의 촌로 강두형(가명)씨는 주변으로부터 ‘조합장에 한 번 나가보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약 10년 전에는 정말 조합장 선거에 한 번 도전해볼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에 목격해 온 관행들은 차마 그 마음을 실천에 옮길 수 없게 했다.

“조합장 보수가 참 좋지. 활동비까지 별도로 나오는데 1억 가까이 돼. 명예도 자기 실속도 차릴 수 있지. 그런데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누가 돈을 얼마쓴다’가 중요하더라고. 돈을 보고 조합장 선거를 했어. 그 사람 능력이 어느 정도 금권을 동원할 수 있는 지 여부로 평가를 받았지. 근래까지도 그런 일이 굉장히 많았어”

과거 조합장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신 바 있는 60대 후반의 임동구(가명)씨는 좀 더 자세히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2005년 선관위의 위탁 관리 전까지는 말 그대로 ‘물품 선거’였다는 증언이다.

“‘당선되면 무엇무엇을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공공연하게 하던 시절이지. 그 이후로 최근까지도 향응선거는 변함이 없었어. 밥 사고, 대접하고... 물론 돈 봉투를 직접 주는 건 제주에는 거의 없었어. 육지와 달리. 하지만 선물하고 밥 사는 건 아주 흔했어”

이들은 후보자와 유권자 스스로가 변화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한다. 강씨는 조합장들의 마인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합원들과 조합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하는데 그게 어려워. 그 지역 농산물이 인정받을 수 있게끔 해주고, 조합원 이득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데 그게 아니잖아. 그런데 신경쓰기 보다는 자기 경비나 개인이 얻을 이익을 계산하는 거 같아”

임씨는 유권자들의 의식이 달라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유권자들의 의식이야. 조합장 선거 때마다 대놓고 후보자들한테 향응이나 접대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 이제는 많이 달라지고 있긴 하지만 향응은 여전한 거 같아. 이제는 그런 게 없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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