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선거, 이젠 바꿔야] (3) 단속강화만으로는 한계...'깜깜이 선거'도 문제

오는 3월 11일 대한민국 전체가 다시 한 번 선거의 도가니에 빠져든다. 사상 최초로 실시되는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다.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지역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은 대선.총선에 못지않다. 전국적으로 후보자만 4000여명, 선거인 수는 300만명에 이른다. ‘미니 총선’으로도 불리는 조합장 선거의 실태와 문제, 개선방안을 세 차례로 짚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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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난 9일. 대전지역 조합장 선거 입후보예정자들이 기자회견에 나섰다. “불공정한 현행 조합장선거 운동방식을 개선하라”는 목소리였다.

이들은 선관위가 규정한 선거운동방식이 현직 조합장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할 뿐 아니라 후보자들이 유권자들과 실질적으로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예비후보자 제도도 없고, 선거사무소를 개소할 수도 없으며, 단체토론회도 없는 만큼 새로운 얼굴을 알리기에는 불리해 현직 조합장만 유리한 방식이라고 볼멘소리를 늘어놨다.

이번 선거에서는 오는 26일 시작되는 선거운동 기간 전에는 일체의 선거운동이 불가능하다. 선거운동 기간에도 선거운동은 후보자 본인만 가능하다. 후보자 외에는 누구든지 어떤 방법으로도 선거운동이 금지된다.

선거공보·선거벽보·어깨띠·윗옷 또는 소품, 전화, 정보통신망, 명함을 통해서만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지방선거와 같이 대중 앞에서의 연설이나 대규모 유세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투표권을 가진 조합원의 근무지나 집을 개별 방문하거나 대중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할 수도 없다. 

'깜깜이 선거'라는 불만이 터져나온 이유다. 이는 제주에서도 다르지 않다.

이번 조합장 선거에 출마하는 A씨는 <제주의소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현행 법이 현직이 유리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유세나 토론회도 없고 벽보만 붙여서 알린다는 건 사실상 알릴 기회가 없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관위는 과거에 비해 선거운동에 제약이 많다는 주장은 옳지 못하다고 반박한다.

제주도선관위 관계자는 “과거 개별 조합법(농협법, 수협법...)에 의해 치러지던 선거에서는 선거 공보, 벽보, 공개토론회 및 합동연설회, 전화, 홈페이지 등 다섯가지 방법 중 두 가지 이상 가능하도록 규정했는데 대부분 현직 조합장이 선호하는 2~3개 방식으로만 진행됐다. 공개토론회와 합동연설회가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며 “특히 합동연설회는 인원 동원에 따른 대가 제공, 세 과시에 따른 과열 경쟁 등 역기능이 많았다”고 말했다.

또 “선거운동 방법이 다양하면 좋다. 그러나 선거운동 사무소를 개설하고, 운동원을 동원하는 등 비용을 많이 쓰다보면 당선된 뒤 자연스레 ‘본전’ 생각이 나게 된다”며 “그런 여지를 뿌리뽑으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과도한 통제가 아니냐는 목소리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조합장 선거에 출마예정인 B씨는 “호별 방문도 못하게 만들어버리고, 합동토론회도 없애버리고 팸플릿만으로 조합원들에게 호소하기엔 역부족”이라며 “이 상황에서 13일밖에 안되는 기간에 수천명의 조합원들에게 어떻게 얼굴을 알리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현직 조합장은 선거운동기간 전 벌써 여러 행사에 다니면서 공개적으로 선거운동 아닌 선거운동을 하는 셈인데, 조합장이 아닌 후보들은 사실상 알릴 기회가 없어 불리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불법-병폐 없애기 위한 열쇠는 조합원들의 주인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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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관위는 단속을 강화하고 돈 선거를 척결한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이번 선거에 벌써 제주지역에서만 단속된 게 12건이다. 단속과 지도관리를 강화했다지만 불법이 고개를 내미는 양상이다. 

B씨는 “지방선거도 그렇고 조합장 선거도 그렇고 아무리 단속하고 단속해도 해결책이 없다고 본다. 선거에 뿌리깊이 박힌 관행을 철폐하는 게 쉽지 않다. 아무리 벌금을 올려도 그런 관행은 계속 남아있을 것”이라고 단속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B씨의 얘기는 협동조합인 농협의 조합장 선거가 기성정치권과 다를 바 없다는 현장의 정서를 반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협동조합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조합장 선거가 직선제로 바뀐 것은 1988년부터다. 그 전까지는 임명제였다. 조합원이 주인이 되는 협동조합의 원리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관변단체’의 성격이 짙었다.

직선제 도입 이후를 ‘농민들의 자조·자립·협동을 바탕으로 한 협동조합 정신’을 회복하는 여정으로 본다면 지금이 과도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과도기를 끝내기 위해서 필요한 건 ‘주인의식’이라는 설명이다.

김성오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은 ‘직선제 도입→선관위의 위탁관리→동시조합장 선거’라는 변천사를 협동조합 원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본다. 조합장 선거가 혼탁한 것은 과거의 ‘관성’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반증이라는 것.

김 이사장은 “과거의 관성 때문에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이 자기 것이라는 ‘주인의식’이 약하다. 사실 조합원들의 주인의식이 투철하고 정말 자기들의 경영자를 뽑아야 한다는 의식이 있다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농협 안에서 민주성이라는 협동조합의 기본 원리가 작동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린다는 분석이다.

김 이사장은 “30년의 관행은 한 번에 개선될 수 없다. 30년 동안 관 주도의 협동조합이었다가, ‘당신들이 주인이다’ 하면서 선거권을 돌려줬다. 제도적으로 정상화가 됐다. 그런데 그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선관위가 적극적으로 관장을 하게 되면 조합장 선거가 좋아지고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농협이 협동조합의 본모습으로 갈 거라고 본다”고 기대했다.

김용호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이 지난 달 29일 공식발표한 ‘공명선거 담화문’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당시 김 사무총장은 “조합장선거는 자주적 협동조직인 조합을 이끌어갈 대표자를 조합원 스스로 선출하는 선거”라며 “조합의 주인은 바로 조합원 여러분”이라고 강조했다.

‘주인의식’을 찾는 것. 혼탁함이 가시지 않고 있는 조합장선거에 주는 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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