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물고기 잡으러 산으로 올라가는 국정 운영

시기 놓친 인사

드디어 국무총리와 비서실장의 교체가 완료됐다. 정부와 청와대의 두 핵심 요직의 교체 필요성이 회자된 지 약 일 년, 대통령 임기가 5년임을 감안하면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그동안 현 정권이 세월호 참사와 비선의혹, 그리고 연말정산폭탄 등 결정적인 치명타를 맞고 휘청댈 때마다 ‘민심 돌리기’를 위한 타개책으로 점쳐져 왔던 게 대폭 개각이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그러나 만사에는 시기가 있다. “쇠는 뜨거울 때 두들기고, 젖은 풀은 해가 쨍쨍할 때 말리는” 법이다. 꾸물거리다 적기를 놓치는 바람에 뒤늦게 국민들의 식탁에 내놓은 인사야말로 ‘불어터진 국수’가 아니고 무엇인가. 떠나간 민심이 감동 없는 인사에 다시 돌아올지 의문이다.

현 정권의 비판에 거시적 정책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세월호 참사는 현 정권의 무책임하고 무능한 국정수행능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핵심 요직치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고, 책임을 진심으로 통감하는 사람도 없었다.

세월호 참사는 여느 정권 같았으면 진작 전면개각이 있었을 대형 사고였지만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한 유일한 사람은 정홍원 총리였다. 하지만 대통령이 일개 부처의 국장, 과장에 대한 인사까지 친히 지시를 내리는 희한한 정부에서 사고 대책과 수습 과정에서 총리에게 얼마나 권한과 책임이 있었을까.

그러나 그마저도 총리후보를 구하지 못하면서 사표 제출은 없던 일이 됐고, 급기야 ‘헌’ 총리를 재활용하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신기원을 세웠다. 자리에 눌러 앉는 사람도 얼굴이 두꺼웠지만, 눌러 앉히는 사람은 얼굴이 더 두꺼웠다.

재활용 정부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아서 그런가. 새 인물을 자리에 앉히지 못하며 오랜 기간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이 새 정부가 내걸었던 원대한 공약 실천은 유야무야가 돼버렸고 현상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일 정도다.

견실한 재정구조를 지켜왔던 국가의 곳간은 MB 정권이 이른바 ‘사자방’ 비리로 거덜 낸 것도 모자라 엄청난 빚꾸러기로 전락했다. 국민들을 부자로 만들어준다고 하더니 구제불능의 빚쟁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비리가 아니라도 작금의 ‘정보화 혁명’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토건경제에 집중적인 삽질을 하는 바람에 미래 성장 동력에 투자 적기를 놓치는 것만 해도 책임이 크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실패한 전 정권의 주역들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그들의 ‘아바타’들을 재탕, 삼탕으로 중용해 왔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것인지, 핵심 인사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현 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가 도대체 무엇인지 짐작조차 어려울 정도다. 물고기를 잡으러 산으로 올라가는 격이다. 

편협한 인재풀

적임자를 찾지 못하는 게 과연 우리 사회에 인재가 부족한 때문 만일까. 모든 국정 구상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는 그 분의 ‘수첩’이 얇아도 너무 얇은 것이 아닐까. 엄선했다는 후보자들마다 한 결 같이 똑같다. 도덕적으로 흠집 많은 인물들을 우선으로 고른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현 정권의 ‘수첩인사’는 참여정부의 ‘코드인사’와 원천적으로 비교를 불허할 정도다.

이제 후보들에게 소관업무에 대한 능력과 비전을 따지는 것은 차라리 사치스런 일이 돼버렸다. 신임 국무총리만 해도 부동산 투기와 병역기피, 언론사 개입 및 외압 논란 등 기본적인 자질 문제로 반대하는 국민들이 더 많았다. 오죽하면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민족의 명절인 설날을 앞두고 국민들에게 ‘비리종합완구세트’를 선물했다는 말이 나왔을까.

신임 비서실장도 마찬가지다. 이름이 귀에 낯익어 자료를 찾아보니 이른바 총풍과 북풍 공작의 주역에다가 차떼기 심부름까지 했던 인물이란다. 여당 대표마저 유감과 우려를 표명할 정도였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 것인지, 악수를 두기 위해 장고를 한 것인지 분간이 안 된다.

국정의 공신력

물론 ‘친박’ 인물들의 중용 인사가 단지 정국주도권 장악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효율적인 국정 수행을 위한 차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 명성과 명망을 얻기 위한 부도덕한 욕망과 탐욕의 과정이 정죄되지 않는 사회와 국가가 국민들에게 무슨 믿음을 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이러다간 “착하게 살아봐야 나만 손해”라는 이기적 행동양식이 학생들 도덕교과서에서 공자와 맹자의 말씀을 대체할까 두렵다.

핵심인물들의 도덕성은 국정의 공신력에 치명적이다. 정부와 여당이 아무리 ‘증세 없는 복지’를 열심히 떠들어대도 ‘복지 없는 증세’로 받아들이는 국민들이 대부분이다. 무수한 의혹들을 제대로 해명조차 하지 못한 신임총리가 취임사에서 “공직기강 확립”을 선언한 것도 공허한 수사(修辭)를 넘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웃지 못 할 해프닝으로 비춰졌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정원의 최고책임자는 또 어떤가. 많은 나이에도 국정원장으로 중용된 것은 평소 정권 창출을 위해 음지에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았을 터. 그런 그가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은 굳게 닫힌 청와대 문고리에 철통자물쇠를 하나 더 채운 꼴이다. 그가 취임사로 “국민들과 청와대 사이에 소통의 길을 열겠다”고 말하니 소통이 불통으로 들릴 수밖에.

맛있는 국수

세월호 참사와 연말정산 폭탄에서 보듯이 국정 운영은 국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다. 국정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국민들은 아무도 없다. 긍정적인 정책에 대해 야당의 부당한 발목잡기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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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그러나 정치적 헤게모니에 함몰된 나머지 널리 인재를 구하지 못하는 수첩인사는 분명 잘못된 일이다.

제때 내놓지 못한 국수가 불어터졌다고 허기진 국민들이 못 먹기야 하겠는가. 하지만 국수 위에 고명으로 얹힌 고기가 맛이 갔다면. 맛있는 국수는 타이밍도 문제지만 신선하고 깨끗한 재료를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부디 맛있는 국수를 만들어 국민이 건강한 국가를 이룩하기를 기원한다.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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