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엔 빛과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며칠전 한라산 정상을 다녀왔다.
정상(백록담) 일대 고산식물과
훼손지 복구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함께 갔던 이의 말처럼
발걸음을 뗄 때마다
한라산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바람이나 비·눈 때문이건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 때문이건
정상 일대는 암벽균열·토사유실·식생파괴 때문에
온 몸이 성한 데가 없이 상처투성이 그대로였다.
앙카메트 공법, 녹화마대 공법 따위
갖가지 훼손지 복구 공법을 동원해도
이미 상처받은 산은 쉬이 제 모습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험하고 가파른 비탈에 피어난 작은 들꽃은 아름다웠다.
가시엉겅퀴, 구름떡숙, 한라돌쩌귀, 한라부추, 한라고들빼기...
특히 비탈 사이사이에 수줍게 피어 있는 구절초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작은 들꽃들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건
아마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제 삶을 지켜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작은 들꽃과 맑은 가을 하늘처럼
이 가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2003.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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