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평화영화제,4.3 영상 순회 상영회 계획

며칠째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의 글을 읽자마자 휴대폰의 ‘발신’버튼을 누른지 일주일 여가 지났다. 언제나 그는 부재중이다. 이러한 그의 마음 속이 궁금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타나 큰 일을 벌이곤 한다. 그는 대구에서 독립영화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장우석이다.

그는 이번호 『녹색평론』(통권 87호, 2006년 3-4월호, http//www.greenreview.co.kr/)에 ‘4.3 항쟁, 변방, 끝나지 않은 세월’이라는 글을 기고하였다. 지난해 쓸쓸히 이 땅에서 잊혀져간 ‘끝나지 않은 세월’의 김경률 감독에 대한 추모글이다.

지난해 7월 1일, 제3회 대구평화영화제가 열렸을 때,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장 감독은 “끝나지 않은 세월”을 개막작으로 선정하여 상영하였다. 그리고 김경률 감독을 초청하여 감독과의 대화시간을 가졌었다.

▲ 2005년 3월. 대구 반월당의 횡단보도를 없앤 것에 항의하는 평화시위에 참석한 장우석 감독.
제주어를 모르는 대구지역의 관람객을 위해 자막을 넣은 필름 상영을 마치고 뒷풀이 자리에서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12월, 김경률 감독은 뇌출혈로 숨졌고, 장 감독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와주었다. 열 한 시간 동안 여객선 삼등실 칸에 몸을 맡긴 채.

그리고 또다시 4.3이 찾아온다. 더불어 김경률 감독에 대한 기억도 떠오른다. 장 감독은 그래서 자기가 딪고 서있는 땅에서 그를 기리기로 했다. 그의 변을 들어보자

“내가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대구평화영화제(cafe.daum.net/dpff)에서는 오는 4월 한달 동안 대구․경북 지역의 4개 대학―대구대.계명대.영남대.경북대―을 돌면서 매주 한 차례씩 “끝나지 않은 기억―4.3”(가칭)이란 이름으로 제주 4.3 관련 상영회를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여름이면 4회째를 맞는 대구평화영화제 기간에 그가 남긴〈끝나지 않은 세월〉을 더한 여섯 편의 유작들을 모아 작으나마 “김경률 감독 추모전”을 열기 위해 함께 준비하고 있다. “

전화를 받지 않는 지금, 그는 4.3 영화상영회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래 글은 그가 이번호 ‘녹색평론’에 실은 것을 발췌한 것입니다.

▲ 녹색평론 87호 표지사진
[녹색평론] 통권 87호, 2006년 3-4월호

4.3 항쟁, 변방, 끝나지 않은 세월

장우석

지난 2005년 12월 2일 새벽, 제주의 한 젊은 감독이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사인은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 죽기 직전까지도 그는, 미혼이었으며 아버지와 형제도 없이 기초생활수급자인 일흔을 훌쩍 넘긴 노모와 함께 정부에서 내어주는 영구임대아파트에서 근근이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하루에도 몇번씩 자신과 노모를 괴롭히던 생활고와 채 지불하지 못하고 빚으로 남겨둔 제작비 500여만원에 자주 무릎이 꺾이곤 했다지만, 그래도 그는 일주일 뒤 열리게 되어있던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자신의 유작이 되어버릴 작품을 관람할 관객들을 위해 ‘감독과의 대화’ 자리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제주 이외의 지역에서 만나는 관객들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혹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것이 틀림없을 헛소리라도 그는 그것을 너무도 소중히 여겼다.

그가 숨을 거둔 날은 공교롭게도 그 자신의 음력 생일이었다. 생일도 챙겨주지 못하고 자신보다 먼저 어린 자식을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예고 없이 덜컥 세상을 등진 그에게 늦은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5일 동안―제주는 육지에 나가 있는 고향사람들이 늦게라도 섬으로 들어올 수 있게 요즘에도 5일장을 치른다―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들에겐 노모가 그에게 끓여 먹이지 못한 미역국이 내어졌다. 그의 하관이 있던 날 하늘은 내내 비를 내렸다가 그쳤다가 눈을 내렸다가 그쳤다가 바람을 뿜었다가 말았다가 하며 변덕을 부렸다. 며칠 전 있었던 악천후 때문이라지만 나에게 그것은 어이없는 그의 요절을 애통해 하는 제주의 울음으로 들렸다. 꼬박 열한시간 동안 부산발 제주행 여객선 삼등칸에 미련스레 몸을 실었던 건 그런 그의 마지막이라도 꼭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그는 그랬다. 그는 바로 제주가 만들어낸 최초의 4.3 장편극영화〈끝나지 않은 세월〉을 만든 김경률 감독이다.

(중략 - 4.3에 대한 소개)

끝나지 않은 세월
영화는 어린 시절 4․3을 겪은 ‘형민’과 ‘황갗라는 서로 다른 두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어지럽게 오가며 과거의 참혹한 기억들이 현재를 사는 그들의 삶을 아직도 여전히 같은 무게로 짓누르고 있음을 아프게 보여준다. 연출을 맡은 김 감독은 “4․3을 겪은 분들은 아직도 상처가 남아있는 게 현실”이라며 무엇보다 “잘못된 역사,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 당시에는 설령 시대적, 정치적 혼란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가해자들은 이제는 인간적인 양심에서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를 해야만” 화해할 수 있는 것인데 “가해자는 아직도 침묵으로 입을 다물고 있다”며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역사적 소명 앞에서 아무런 대답을 않는다는 자체가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이 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피해자는 물론이고, 가해자도 진실된 이야기를 전해주는 게 중요하다”며 “비록 자신의 아픈 상처이긴 하지만 그래도 밑바닥에 있는 잘못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긴 연출의 변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대학시절 당시 제주대에서 열린 ‘4.3 사진전’을 우연히 보고난 후 4․3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고 1999년 박광수 감독의 영화〈이재수의 난〉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제주의 이야기는 제주사람의 목소리로 만들어야 맞지 않겠느냐”는 자각을 하고 1년여 동안 서울을 오가며 뒤늦은 영화수업을 하게 된다. 이후 제주로 내려와 2000년 지역 영화인 몇몇이 함께 모여 작은 독립영화 제작단체를 만들어 제주의 정체성을 담는 노력을 차근차근 밟는 한편 4.3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꿈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그런 꿈의 빛나는 처음인〈끝나지 않은 세월〉에는 제주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가려진 참혹함 모두를 담아내기 위한 그의 눈물겨운 노력들이 죄 담겨 있다. 충무로에서도 쉬 시도하지 못하는 역사물을, 그것도 사계절을 모두 담아내면서도 1억원 미만의 저예산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놀랍지만, 제작비의 거의 대부분을 제주사람들의 모금으로 충당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만큼 4․3의 온당한 평가에 대한 그들의 어떤 목마름 같은 게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나간 과거를 현재처럼 기억하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는 것, 남의 것으로 여겨 예사로 넘기던 아픔을 마치 자신의 몫처럼 그대로 느끼게 하는 것, 모두 잊거나 빨리 내치고 싶은 기억들을 오래 붙들고 쉬 놓아주지 않는 것이라는 것도.

(중략)

그 아득함을 어느 시인의 시구를 잠시 빌려 말한다면, 우리가 어제를 오늘처럼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건 정말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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