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씨를 뿌리다] (1) 어느덧 우리 곁에 성큼 다가선 사회적경제

원희룡 지사는 신년 인터뷰에서 ‘제주를 사회적경제 시범도시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앞서 작년 12월에는 ‘제주도사회적경제 기본조례’가 제정됐다. 도민들은 의아해할 수 있다. ‘도대체 사회적경제가 뭐길래 이렇게 난리들인가’하는 생각이 들 법하다. 사실 사회적경제는 갑자기 ‘짠’하고 등장한 게 아니다. 자본주의의 여러 결함들을 보완하기 위한 전지구적인 추세가 됐다. 또한 사회적경제는 그 특성상 관이 주도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근간은 각 주체들의 ‘자발성’과 ‘연대’. 사회적경제가 대세인 시대, <제주의소리>는 도대체 사회적경제가 무엇인지, 어떤 이점이 있길래 국내 지자체마다 아우성인지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사회적경제 시범도시 제주’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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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조천읍 선흘1리에서 12년간 사무장을 역임했던 김호선(45.여)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지난 5년여간 마을에서 일어난 변화가 신기하기만 하다.

“저희는 관광지라고 할 만한 게 없었어요. 이 마을이 있는 줄도 모르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동백동산요? 어휴, 예전엔 이거 때문에 개발을 못하니까 불만이 많았죠. 아예 없애버리면 안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어요. 생태관광요? 5년전에 그게 뭔지도 몰랐어요”

동백동산을 품은 선흘1리는 이제 ‘생태관광의 선진모델’로 전국에서 주목받고 있다. 환경부의 ‘생태관광 성공모델’ 전국 4곳 중 하나로 꼽혔고, 전국 각지에서 벤치마킹을 하겠다며 이 마을을 찾아온다.

5년간 마을에서는 서서히, 분명한 변화가 일어났다.

주민들이 중심이 돼서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관광객들에게 판매할 음식을 만들었다. 생태해설자가 되고 지킴이가 되고, 프로그램 관리자가 됐다. 노인들은 찾아온 외지인들에게 마을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일자리가 생겼다. 관광객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자연을 지키면서도 관광이 가능하다는 걸 몸소 깨닫게 됐다.

선흘1리는 생태관광을 통해 얻은 소득을 마을 복지에 다시 쏟을 구상까지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연을 지키면서 마을이 함께 번 수익금을 학생들 장학금, 어르신들 의료복지에 사용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또 얼마 전 ‘리민 한마당’에서는 만장일치로 마을 자체의 협동조합을 만들기로 했다.    

“처음엔 ‘그거 어지럽게 뭐하러 하냐’, ‘바쁜데 왜 나오라고 하냐’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뭔가 같이 해야한다’는 인식이 생겼어요. 이제는 간담회를 열면 어르신들이 ‘우리 역할을 달라’고 말씀들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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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화(45.여)씨도 최근 몇 년간 찾아온 삶의 변화가 반갑다.

이씨는 현재 행복나눔마트라는 제주시 노형동의 한 마트에서 일을 하고 있다. 전환점이 된 것은 2년 전. 자신이 일하던 마트에 새 대표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새로운 인수자가 나타난 것인가’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출자금을 모으자는 말이 나왔다.

“사실 걱정됐죠. 주변에 대형마트도 있는데... 마침 큰 애가 대학에 들어갈 때라 사정이 넉넉지 않아 300만원을 출자금으로 냈어요. 출자금, 배당금 개념에 대해선 알고 있었지만, 잘 될 수 있을까 염려도 됐죠. 그렇게 시작했어요”

현재 그녀는 자신의 삶이 ‘훨씬 좋아졌다’고 말한다. 주5일제를 정확히 지키게 됐고, 이전에는 없던 ‘연차’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근무시간이 줄었는데 급여는 오히려 올랐다. 직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근무 여건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는 여유가 더 생겼고, 저에게 투자할 여력도 생겼죠. 이젠 다른 지역에서도 배우겠다고 찾아와요. 여기 직원들이 다 자기 사업처럼, 내 일처럼 생각해요.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여러 혜택을 더 주려한다는 걸 느끼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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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신뢰, 협동이 빚은 성공...시장경제 원리 만으로는 한계 

행복나눔마트는 제주의 대표적인 ‘직원협동조합’이다. 선흘1리가 추구하고 있는 모델은 ‘협동조합’이자 본질적인 의미의 ‘마을기업’에 가깝다. 동시에 이 기반을 마련한 것은 (주)제주생태관광이라는 ‘사회적기업’이다.

이들 모두 사회적경제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사회적경제는 보통 시장경제나 자본주의 원리에서는 볼 수 없는 가치들을 추구한다. 상호성, 연대, 신뢰와 협동 등이다. 선흘1리나 행복나눔마트는 이런 가치들을 추구하면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모델들이다.

사회적경제의 밑바탕에는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방향성이 있다.

행복나눔마트는 직원들이 직접 마트의 운영방향을 정한다. 직원 모두가 소유주니 일부 경영진의 이익 독점이나 근로자 처우 문제가 발생할 일이 없다. 수익의 2/3은 지역에 무조건 환원한다. 그런데도 잘 돌아간다. 최근엔 2호점을 낼 계획까지 세웠다.

선흘1리는 마을을 찾는 외지인이 별로 없던 상황에서 그들이 가진 특유의 자산으로, 마을 주민들이 주도를 해서 관광객 유치에 성공했다. 마을 주민들이 화합을 하게 되면서 공동체가 끈끈해졌고, 지속적인 마을 차원의 수익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선흘1리의 생태관광은 현재 제주관광이 지닌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대안이다. 관광업계 수익이 지역주민보다 개발업자나 투자자들에게 돌아가고, 각종 관광시설의 개발로 중산간이 파괴되는 데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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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과 친절한 해설에 감동한 여행자들은 지역에서 소비를 하고, 마을 주민들은 ‘동백동산을 보존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된다. 그럼 자연은 더 잘 보존되고, 그럼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선순환 구조가 생긴 셈이다.

고제량 제주생태관광협회 대표는 “잘 보전된 환경이 지역 주민에게 경제적 효과를 갖다주고, 자연친화적 생활방식을 지켜줘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다시 주민 자발적인 환경보전 행동을 유도한다”며 “생태관광으로 번 돈은 지역 주민들 복지 향상에 쓰인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어려운 경제서적 안에서만 머물 것 같았던 ‘사회적경제’는 이렇게 오늘날 우리 바로 곁에 존재하고 있다. 물론 이제야 갓 싹을 틔운 단계다.

장애인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일배움터, 지역노인들에게 자전거센터 관리와 마을 해설을 맡긴 푸른바이크쉐어링, 마을주민들이 조랑말체험공원의 주인이 되는 이어도사나 모두 제주에서 나름대로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경제의 모습들이다.

이들의 영역은 ‘정부’도 ‘시장’도 ‘시민단체’도 아니다. 더군다나 대기업의 사회적공헌과도 차원을 달리한다.

강종우 제주희망리본본부장은 “대기업의 기부 등 사회적공헌이 남의 손을 빌려서 문제를 해결하는 거라면, 사회적경제는 우리 손으로 직접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필요한 욕구들을 집단적, 조직적으로 지역사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게 사회적경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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