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씨를 뿌리다] (2) ‘사회적경제’로 우뚝 선 지역, 비결은?

원희룡 지사는 신년 인터뷰에서 ‘제주를 사회적경제 시범도시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앞서 작년 12월에는 ‘제주도사회적경제 기본조례’가 제정됐다. 도민들은 의아해할 수 있다. ‘도대체 사회적경제가 뭐길래 이렇게 난리들인가’하는 생각이 들 법하다. 사실 사회적경제는 갑자기 ‘짠’하고 등장한 게 아니다. 자본주의의 여러 결함들을 보완하기 위한 전지구적인 추세가 됐다. 또한 사회적경제는 그 특성상 관이 주도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근간은 각 주체들의 ‘자발성’과 ‘연대’. 사회적경제가 대세인 시대, <제주의소리>는 도대체 사회적경제가 무엇인지, 어떤 이점이 있길래 국내 지자체마다 아우성인지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사회적경제 시범도시 제주’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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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가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스페인 몬드라곤 등의 지역은 기원을 찾으려면 19세기 혹은 20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50년 넘게 세계 곳곳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만들어내던 사회적경제가 최근 더 주목받게 된 것은 ‘현대 자본주의가 이대로는 안된다’는 문제의식이 본격화 된 데 따른 것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촉발제가 됐다. 현대의 자본주의가 치명적인 결함을 지녔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2009년 2월 유럽연합(EU) 의회가 ‘사회적경제에 관한 결의’를 채택했고, UN은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에 이어,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탄생했다. 제주에서는 2009년 사회적경제육성조례와 2013년 협동조합 활성화 지원 조례가 제정됐다.

관련 지원 법제도가 사회적경제의 핵심은 아니지만, 국가 차원에서 이제 사회적경제에 적극 관심을 갖게 됐다는 상징적인 사건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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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와 협력의 경제로 대안 찾은 지역들은?

스페인의 몬드라곤은 사회적경제의 상징처럼 꼽힌다. 몬드라곤 마을에서 시작해 반세기만에 세계 최대의 노동자 협동조합 그룹이 만들어졌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풍파를 해고 없이 극복해냈다.

스페인 바스크 지역에 기반한 몬드라곤은 257개의 기업, 조합에서 7만4000여명의 조합원이 일하는 연합체다. 2013년 기준으로 총자산은 40조원, 총수입은 15조원. 웬만한 대기업 수준이다. 스페인 기업 중 TOP 10에 들 정도다.

생산량이 줄어들면 탄력근무나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임금을 다소 줄이는 대신 해고를 피한다. 몬드라곤은 바스크 지역 경제의 근간을 이룬다. 이 때문에 스페인에서 노동양극화가 가장 덜한 지역으로 꼽힌다.

인구 53만의 트렌토(Trento) 시는 이탈리아 평균 보다 실업률이 5% 이상 낮고, 1인당 국민소득은 8000유로 이상 높다.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높아 이탈리아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역으로 불린다. 500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있고 조합원 수가 28만명에 이르며 총 적립금이 30억 유로가 넘는다.

19세기 말, 아이들이 굶어 죽는 게 일상이었던 이 도시에는 1892년부터 협동조합이 생기면서 일대 전기를 맞았다. '협동조합끼리의 협력'을 통해 이 지역의 사회적경제는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같은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 지역은 160여년의 협동조합 역사를 갖고 있다. 1만5000개의 협동조합이 에밀리아로마냐 주에 집중돼있다. 2010년 기준으로 이곳의 1인당 GDP는 4만 달러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고, 실업률도 늘 전체 평균의 절반 이하 수준을 유지한다.

에밀리아로마냐의 주도가 바로 이탈리아 협동조합의 수도로 불리는 볼로냐다. 이 곳의 대표적인 소비자협동조합 ‘코프 아드리아티카’는 조합원 수가 100만명이 넘고 세계금융위기로 전세계가 흔들리던 2008년 말 20억 유로(약 2조800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영세한 규모로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와인을 유통시킬 힘이 없었던 농민과 개별 양조장들이 모여 만든 ‘리유니트&치브’는 세계 4대 와인 협동조합 중 하나다. 연간 매출액이 2000억원 가까이 된다.

캐나다 퀘벡은 어떤가. 3000개의 협동조합과, 880만명이 넘는 조합원 수. 협동조합이 창출하는 일자리는 7만8000개, 연간매출액은 180억달러(약 19조8000억), 자산은 1000억 달러(약 110조원)을 기록하고 있다.

1995년 당시 12%에 이르는 높은 실업률로 애를 먹던 퀘벡에 등장한 연합체 ‘샹티에’는 각종 시민단체와 주 정부, 협동조합, 사회적기업들이 연석회의를 가졌고 그 이후 10년 동안 탁아 서비스 부문에서 2만50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 진 게 시발점이었다.

이들 모두가 기존 전통적인 시장경제 혹은 신자유주의의 논리와는 다른 '사회적경제'라는 새로운 문법으로 지속가능한 경제를 이끌어낸 지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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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격히 다른 역사적 배경...해외 방식 그대로 적용 '위험'

경계해야 할 점은 이들은 특유의 역사적 배경을 통해 이뤄진 ‘성공사례’일 뿐이라는 점이다.

사회적경제의 도입이 무조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특히 성공 지역은 주민들의 자발성, 밑으로부터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정부주도로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한국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황준욱 소수연구소 대표(경제학 박사)는 “여러 사례들을 듣고 공부하는 게 도움이 될 순 있다. 그러나 몬드라곤이든 볼로냐든 그 지역의 자연, 역사, 지역주민, 관계 등이 감안되고 고려되면서 실패와 성공을 겪은 것이다. ‘저 나라의 방식을 가져와서 제주에 적용하자’는 식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황 대표는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주체들이 모여서 우리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연구자나 정치적 지도자가 ‘자, 우리의 모델은 이런 겁니다’라는 식은 성사될 수 없다. 관련 주체들이 모여서 서로 합의하고 우리에게 가장 잘 맞는 걸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자경 제주대 한국사회과학연구사업팀(SSK) 전임연구원(농학박사)는 “성공모델로 꼽히는 스페인 바스크, 캐나다 퀘벡 모두 정말 극한에 상황에 몰렸던 지역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사회주의 정권이 10년 이상 집권했던 경험이 있다. 각 지역의 문제와 역사는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김 연구원은 “우리가 겪는 문제를 우리 식대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식이 스페인, 이탈리아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제주도는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제주 사회적경제 종합발전계획 수립 연구용역’에 착수한 상태다. 앞으로 ‘사회적경제 시범도시’ 제주의 청사진을 그리는 중요한 연구다. 올 10월 결과물을 내놓을 이 용역에 제주를 잘 아는 제주도민이 직접 제주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선 5기 ‘사회적기업’ 육성정책은 성공? 실패?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는 임기 동안 ‘사회적기업 100개 육성’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여기에 ‘사회적기업 일자리 1000개 창출’을 내걸었을 만큼 전형적인 양적 육성 정책을 폈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냉혹하다.

사실, 해외 성공사례의 경우 밑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생태계 구성이 이뤄졌지만, 정부 주도하에서 진행되는 국내의 경우 ‘사회적경제의 기본성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진행된다’는 불만이 민간 영역에서 제기돼 왔다. 일자리 창출이나 시혜적 복지 처럼 여겨졌다는 것. 이는 제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밑바닥에서부터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도움을 줘야할 행정이 단순 인건비 지급에만 치중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준욱 소수연구소 대표는 “지난 도정의 정책목표, 지원이 (사회적경제 육성에)일조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시드머니(Seed money)를 깔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힘들다. 그러한 시드머니 이외에 ‘사회적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에 대한 투자’가 더 중요했을 수도 있다. 지난 도정이 그런 세세한 부분, 사회적경제의 기반을 확충하는데 꼭 필요한 도움을 줬느냐 하는 점에선 낮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황 대표는 “하지만 그렇게 해서 발생된 문제를 통해 사람들이 새로운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 여러 문제점을 발견하고 논의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지자체는 자생적으로 자랄 수 있는 판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팁도 건넨다.

황 대표는 “사회적경제에 있어서의 공공지원은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사회적경제는 ‘연대’와 ‘시장’을 양축으로 두고 있는데 더 중요한 건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상품을 판매해서 자립할 수 있는 구조가 사회적경제의 핵심이다. 결국은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서 차라리 행정의 역할이 사회적금융의 기반을 구축하는데 집중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자경 전임연구원은 민선 5기의 사회적경제 접근 방식에 대해 “사회적경제를 제대로 이해하면 ‘사회적기업 100개 만들겠다’ 이런 말이 쉽게 나올 수 없다”고 꼬집는다.

김 연구원은 “무조건 일자리 창출에만 치우친데다, 과연 3년이 지나서 임금 보조가 끝나면 ‘이들이 정규직으로 계속 채용 가능하냐’는 질문엔 물음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취약계층과 저소득층 중심으로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했는데 이건 양질의 일자리가 나올 수도 없었다. 차라리 복지강화로 갔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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