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씨를 뿌리다] (3) 사회적경제 밑그림 그리는 제주, "건강한 판 깔아야"

원희룡 지사는 신년 인터뷰에서 ‘제주를 사회적경제 시범도시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앞서 작년 12월에는 ‘제주도사회적경제 기본조례’가 제정됐다. 도민들은 의아해할 수 있다. ‘도대체 사회적경제가 뭐길래 이렇게 난리들인가’하는 생각이 들 법하다. 사실 사회적경제는 갑자기 ‘짠’하고 등장한 게 아니다. 자본주의의 여러 결함들을 보완하기 위한 전지구적인 추세가 됐다. 또한 사회적경제는 그 특성상 관이 주도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근간은 각 주체들의 ‘자발성’과 ‘연대’. 사회적경제가 대세인 시대, <제주의소리>는 도대체 사회적경제가 무엇인지, 어떤 이점이 있길래 국내 지자체마다 아우성인지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사회적경제 시범도시 제주’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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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24일 제주 미래컨벤션센터 연회장에서 열린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제주특별자치도지부 신년하례회에 참석한 원희룡 제주도지사. 이 날 원 지사는 “대기업은 커녕 중소기업도 많지 않은 특성상 사회적경제가 맡아야 할 비중이 다른 곳 보다 크다”고 말했다. ⓒ 제주의소리

현재 제주도는 ‘사회적경제 시범도시’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청사진이 될 ‘제주특별자치도 사회적경제 종합발전계획 수립 용역’이 오는 10월 결과 도출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제주발전연구원을 중심으로 사회학, 경제학 등 분야에서 외부 연구진과 사회적경제지원기관과 현장 전문가 등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 ‘내공’이 있다고 인정받는 학자와 전문가들이 합류해있다. 

이 연구는 ‘사회적경제 시범도시 제주’의 중장기 기본방향, 정책목표, 추진전략과 중점 추진과제를 설정하게 된다. 행정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민관 파트너십은 어떻게 구축할지, 또 재원은 어떻게 확보할 지 등 제주지역 사회적경제 생태계 조성에 밑바탕이 된다.

시간은 촉박한데 실태조사부터 기본구상과 전략 모색까지 해야 할 일은 많다. 임기내 ‘GRDP 25조’를 강조하고 있는 원 지사가 짧은 기간 내에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려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직접 지원 대신 생태계를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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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퀘벡의 사회투자기금 ‘퀘벡사회적투자네트워크(RISQ)’.
일단 문제는 지원의 방식이다. 수많은 돈을 지원금으로 쏟아 붓는다면 도민들의 공감대를 얻기도 힘들 뿐더러, 자생력이 있을지도, 지속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을지도 의문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다. ‘보조금 사냥꾼’이라는 오명을 얻을 지도 모른다.

결국 행정은 ‘생태계 조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황준욱 소수연구소 대표(경제학 박사)는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구조가 사회적경제의 핵심이다. 다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민간사업체와 경쟁하는 게 어렵다. 그렇다면 시급한 것은 그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황 대표는 “사회적경제가 돌아가려면 필수적인 게 ‘금융’이라고 제시한다.

지역 내에서, 공공(행정)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된, 민간과 공공이 서로 매칭을 하고 지역민이 서로 출자를 해서 만드는 ‘사회적금융 펀드’가 있어야 한다는 게 황대표의 주장이다. 공공은 처음으로 시드머니(Seed money, 종잣돈)를 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민간 부문에서 처음 만들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사회적경제를 하는 사람이 자산이 많은 것도 아니고 기존 자본주의만큼 검증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공공이 이 정도 낼게, 우리가 협력해서 이 펀드를 관리하고, 한 번 투자를 해보자’라고 유도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본다"

강종우 제주희망리본본부장은 사회적경제에 대한 우호적 금융환경 조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제도를 개선해서 금융환경을 사회적경제에 우호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 유럽의 사회투자기금, 서울시의 서울사회투자기금 처럼 자금지원할 수 있는 바탕이 있어야 한다. 제주도와 제주도개발공사, 농협, 제주신용보증재단 등이 참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캐나다 퀘벡 주의 사회적경제를 총괄하는 민관 협력기구인 샹티에가 처음 한 일 중 하나도 ‘퀘벡사회적투자네트워크(RISQ)’라는 사회투자기금 설립이다. 이 샹티에 기금은 연방정부와 노동조합이 함께 투자해 탄생했다.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나 몬드라곤 역시 협동조합 내부 기금, 협동조합 보험 등 사회적금융 체계가 든든한 힘이 됐다.

사회적경제, 꽁꽁 묶고 연결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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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경제, 씨를 뿌리다' 연재에 도움을 준 이들. 왼쪽부터 강종우 제주희망리본본부장, 황준욱 소수연구소 대표, 김자경 제주대 SSK 전임연구원. ⓒ 제주의소리

또 하나의 키워드는 ‘연결고리’, 바로 네트워크다.

사회적경제로 성공한 기업들은 서로의 협력을 기반으로 한다. 자본주의 질서 내에서 대기업들과의 경쟁에서 기존 방식으로는 힘들다. 그래서 ‘뭉친 사람들’끼리 다시 뭉치자는 말이 나온다. 행정의 역할은 이 이음새를 단단하게 해주는 접착제와 같아야 한다는 의미다.

강종우 본부장은 “행정에서 첫 번째로 해야 할 것은 공적 지원체계와 소위 민간과의 접수 부분들을 어떻게 잘 꾸려낼거냐, 어떻게 협의할거냐 하는 점이다. 그 다음으로는 칸막이를 스스로 깨고, 사회적경제 공간에 들어와있는 영역들을 어떻게 잘 꾸려낼거냐. 통합·협업을 어떻게 만들것이냐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김자경 제주대 한국사회과학연구사업팀(SSK) 전임연구원(농학박사)은 “촘촘하게 망이 연결됐을 때 ‘생태계’가 되는건데 아직까지는 연결망이 단순하다. 이런 식으로 말고 촘촘히, 그 선 중 하나가 끊겨도 살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생태계가 건강하게 나온다”고 말했다.

‘교육’ 역시 중요하다. 이는 지역주민, 공무원, 사회적경제 영역에 들어서는 젊은이들에게 모두 필요하다. 대학 차원의 관련 ‘계약학과’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됐다.

‘판을 깐다’, ‘생태계를 마련한다’, ‘네트워크를 잇는다’는 기본적인 방향성 아래에서도 이 처럼 담아야 할 것이 많다.

이에 앞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도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사회적경제’의 자발성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에 대한 김자경 전임연구원의 말이다.

“국가에서는 자율, 자치를 할 수 있는 그 영역, 그 기반을 마련해주면 된다. 행정이 그 영역을 받춰져야지 ‘내가 통제하겠다’고 하면 이건 사회적경제가 더 이상 아니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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