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재닛 옐런 의장의 미 의회 증언이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던 것은 달러 금리의 정상화 시기가 더 늦추어 질 것이라는 그의 암시 때문이었다. 

달러화는 미국의 양적완화 종식이 거론되던 작년 6월 이후 줄기차게 강세를 보여왔다. 주요 10개국 통화에 대한 '블룸버그 달러 인덱스'의 상승 폭은 16% 에 달한다.

오는 6월 쯤 달러 금리가 인상될 것이라는 예측도 달러화 강세에 한몫을 했는데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는 실업률은 개선되었지만 임금 상승이 미흡하다는 점 외에도 인플레이션이 마이너스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금리인상의 시기를 결정하기 어려운 이유로 들었다.



4조5000억달러에 달하는 전대미문의 대차대조표 잔액을 어떻게 감축해나갈 것인가라는 의원들의 관심에 대해서는 현재의 채권 포트폴리오를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않겠다"라고 일축했다.

미국이 구사했던 저금리정책은 간접적인 수단에 불과했고 그에 비해 채권매입( QE3)은 매우 노골적이며 직접적인 통화팽창 수단이었는데 이들 채권들을 계속 보유하겠다는 뜻이다.



또한 옐런은 "강한 달러는 미국의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토를 달아 금리 인상을 미루는 또 하나의 속내를 드러내 보였다.

다시 멀어진 양적완화 출구


여기서 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한결같이 인플레이션 타깃 2% 달성에 몰입하는지, 하버드대 원로교수 마틴 펠드스틴의 말을 들어보자.



미국의 경우 인플레에션은 현재 마이너스 0.1%로 진행 중이지만 이는 국제원유가격 하락과 달러화 강세에 따른 수입상품 가격 인하에 기인한 것이다. 이를 배제한 근원 인플레이션(core inflation)은 이미 1.6%에 달해 있다. 에너지 가격의 반등 또는 달러화 하락의 경우에는 쉽게 2%를 넘을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통화팽창의 구실로 내세우는 이면에서는 환율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통화가치를 떨어뜨려야 환율이 떨어져서 수출이 늘어난다. 즉 속셈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환율에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실제로 물가는 오를대로 오르고 있다. 다만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 때문에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지 않았을 뿐이다.

실물경제의 뚜렷한 개선이 없는데도 금융자산과 주택가격에 거품이 다시 형성되고 있다는 우려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플레이션 통계를 낼 때 저축과 투자 항목을 빼고 소비자물가만을 계상하는 방식은 임금을 물가에 연동시켜야 한다는 노동경제학적 사고, 즉 노동을 제공하는 자에게는 저축과 투자보다는 의식주의 가격 안정이 관심사일 것이라는 잘못된 선입관에서 연유된 것이다.



금융 역사상 큰 금융위기를 불렀던 것은 소비자물가가 아니라 자산가격이었다. 1930년 세계대공황이나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도 소비자물가와는 전혀 무관했다.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지 않는 한 인플레이션은 오지 않을 것이고 자산가격을 외면하는 인플레이션 숫자놀음은 양적완화 정책을 유지하는 구실로 계속 이용될 것이다.



환율전쟁이 숨겨진 통화팽창 경쟁

최근에는 IMF도 미국이 성급하게 금리인상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발언을 했다. 이유는 달랐다.


작년 12월 국제결제은행 BIS는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이 다른 나라들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면서 미국 밖에서 비금융기관 달러 부채가 9조달러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2008년 이전의 규모 약 6조달러에 비하면 3조달러가 늘어난 것인데 이는 미국 중앙은행 연준이 지난 6년 동안 새로 찍어낸 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이 중 57%는 신흥국가에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늘어난 돈이 고금리를 찾아 사방으로 흘러나갔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이 자금들은 미국 본토에서 금리가 인상되면 본국으로 송환될 수 있다. 상환을 할 때는 인상된 달러 환률로 인한 환차손도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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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더 고약한 것은 국제 자본시장의 무리본능(herd instinct)으로 인하여 자금회수 시도가 쇄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의 라틴 아메리카, 1990년대의 아시아 외환위기의 양상이 재현될 가능성이 없지 않은 상황인데 IMF의 경고는 이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지난 월요일부터 유럽중앙은행도 채권매입, 즉 돈 찍어내기에 본격 돌입함으로써 통화팽창이라는 이름의, 멈출 수도 없고 내릴 수도 없는 '설국열차'가 한동안 지구를 전속력으로 질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이 글은 <내일신문> 3월 11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 게재됐습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제주의소리>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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