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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島詩樂 산책](5) 삽시 / 김영란

제주섬 바람소리엔 뼈 맞추는 소리가 난다 일어나 아우성치는 이백육 마디마디 사월의 제단 앞에선 산다는 게 죄만 같아

애비 아들 보내는 날 가슴 치며 울던 육십년 만에 찾아온 육신 젓갈 삭듯 녹아내려 생살점 떼어내듯 봄꽃 벌써 지려 하네

머리 하나에 팔다리 맞춰는 놓았다만 내 남편 내 아들 맞기는 한 것이냐 어디다 하소를 할까 혼절했던 시간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절뚝이는 저승길 열두 대문 훠이훠이 고이 넘어 가시라 어머니, 고운 멧밥에
떨며 꽂는 숟가락 / 삽시 - 김영란 詩

김영란 =『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꽃들의 수사修辭』가 있음

어느 역사학자가 그랬다지요. 한반도는 그 자체가 공동묘지라고 말입니다.
저만치 4월이 오고 있습니다. 동백이 피고 매화가 피고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왕벚이 꽃망울을 달고 북상하고 있습니다.
제주의 4월은 아픔입니다.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입니다.
누군가는 언어절(言語絶)이라 했지요. 인간의 언어로는 담아낼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제주4․3을 두고 하는 말이지요.
남편과 아들의 집단학살 현장에서 육십년 만에 머리 하나에 팔다리는 맞췄지만 누가 누군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저승 먼 길 보내드려야지요. 고운 멧밥에 숟가락 하나 떨면서 꽂습니다. 제주섬 전체가 한 그릇의 고운 멧밥입니다.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김영란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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