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딧 가까이보기-만난 사람] 영화 카피라이터 윤수정

누구는 '카피 문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을 쉽게 한다. 몇 페이지 글보다 단 한 문장의 카피 위력을 실감한다. 예부터 그랬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카피'의 힘을 쉽게 인정해버리는 사람을 지켜보는 이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카피'의 힘을 무한대로 끄집어 내는 이 사람. 남들이야 카피의 위대함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한다지만 이 사람은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매번 카피의 위력을 대중들에게 증명해야 할테니.

▲ 카피라이터 윤수정.
영화 카피라이터 윤수정. 어느덧 마지막까지 다다른 제주씨네아일랜드와 프리머스 시네마 아트플러스 제주가 공동 주최한 '엔딩크레딧 가까이보기' 마지막 주자다.

어린 시절 누구하나 '카피라이터'란 직업에 환상을 갖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 매혹적인 판타지를 지닌 일을 하는 사람이 현실에서 겪는 속사정은 어떨까.

# "힘든 순간이 곧 기회"

국문과를 나온 그는 남자친구의 권유로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무심코 광고회사 시험을 봐서 덜컥 합격한, 요즘 취업 준비생들이 알면 이런저런 시기와 질투가 많이 나올 만한 배경을 갖고 있다.

그만큼 스스로도 광고인에 대한 자부심이 많았다고 한다. 광고계에서 잘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드높았다.

하지만 쉽게 광고회사에 적응하지 못한 그는 운명처럼 영화사 '백두대간'('아름다운 시절' 제작, '브로크백 마운틴' 등 수입) 카피라이터로 영역을 옮겼다.

스스로 당시를 '힘든 나날'인 동시에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 순간으로 기억한다. 그도 그럴것이 '백두대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400~500편에 달하는 영화 카피를 만들어냈다.

아직까지도 영화가 끝난 뒤 자막에 이름이 걸리는 카피라이터는 '윤수정'이 유일하다. 카피라이터라는 명목으로 영화 제작사와 계약을 성사시킨 것도 그가 처음이자 유일한 사례.

일반광고와 영화광고의 차이가 뭐냐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빠르게 대답이 돌아온다.

"일반광고는 돈이 많고 일은 적다. 영화광고는 돈은 적고 일은 많다"

"던킨도너츠의 '한입의 행복' 등이 제 작품인데, 일반 광고는 짧은 문구 하나로 끝나죠. 이에 반해 영화 홍보는 전단지, 예고편, 광고, 보도자료 등에서 무수한 텍스트를 생산해내야 하는 만큼 시간도 6~8개월 정도 소요되죠. 심지어 크랭크인 전부터 제작사와 컨셉을 잡기 시작하면 티저광고, 메인광고 등 일반광고에 비해 많은 시간이 들어요"

   
벌써 그에게 두 달동안 4편의 작품이 들어왔다. 그가 말하는 일의 적당량은 두 달에 한 편꼴. 과로를 조심해야 겠다.

# 삶의 순간순간이 가능성

카피라이터 같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명인 직업을 가진 이들을 만나면 항상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아이디어는 어떻게 뽑아내나. 노하우가 있나"

"음..." 이번 질문의 답은 한 템포 늦게 돌아왔다.

"메모를 항상 해요. 책상위엔 메모지가 있는데 휴대폰에도 메모기능이 있구. 항상 메모를 하는 것 같아요. 계속 생각을 해야해요. 일상적인 사물도 특이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만약 영화 마케팅에 관심이 있다면 매 주말 극장에 가서 개봉작에 따른 관객층 분석을 하라고 조언합니다. 극장 가는 것을 생활화했으면 하구요. 독서도 버릇처럼 해야하구"

언뜻 보면 윤수정 씨에게서는 소녀같은 순수한 인상이 묻어난다. 그가 하는 카피 작업은 작품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열정이 가득한 사춘기 시절의 흔적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가족'(수애 주현 주연)을 작업할 때 '아버지와 딸, 그 찬란한 러브스토리'라는 카피를 만들었는데 작업하면서 실제 아버지 생각이 떠올라 많이 울었어요. 개인적으로 많이 애착이 가는 작품이죠"

이처럼 그는 일을 할때 이처럼 감정을 모두 풀어놓으면서도 어김없이 긴장의 끈을 꽉 조인다.

"카피라이터는 자격증이 없는, 그래서 더욱 위험한 직업이에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내 라이벌이기에 더욱 매진해야 하죠. 돈을 받고 나를 쓰기 때문에 그 가치를 느낄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죠. 아직까지 카피라이터에 대한 대우가 좋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길을 따라올 후배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매 순간순간이 기회고 가능성이에요. 제가 예전에 방송작가 아카데미 과정을 밟을 때 어리숙해 보이는 사람의 과제물을 읽게 돼 당시엔 무시한 경험이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그 어리숙했던 사람이 '대장금'을 쓴 김영현 작가였어요"

"순간순간을 놓치지 마세요. 지금 내가 접한 현실에 훗날 어떻게 변할지 몰라요. 항상 노력하고, 꿈을 잊지 말고 가능성을 키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길 바랍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