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5) 제주 엄마 관찰기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엄마 위주의 육아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

나무 한 그루가 주변의 공기와 물, 땅에게서 에너지를 머금고 성장하듯이, 아이의 정신 건강은 엄마와 아빠의 고른 사랑에 좌우됩니다. 특히 부부 관의 관계는 아이의 태도와 성취도, 감정 통제와 타인과의 교류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제주의 여성과 남성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십여년 전 서당 훈장님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제주도의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남편은 낮잠을 자고 아내는 부지런히 밭을 메고 물질을 하러 갔다가 돌아와 아이에게 젖을 물립니다. 남편은 여전히 낮잠을 잡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남편은 문득 잊어버린 일이라도 떠올랐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작두로 촐(말이나 소에게 먹이는 풀의 제주 방언)을 벱니다. 한동안 힘을 쓰고 난 남편은 다시 마루에 드러누워 잡니다. 이 이야기는 제법 잘 들어맞습니다.

육지의 경우 남편이 가사와 육아에 참여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지만, 제주에서는 그런 남편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역시 아이들입니다. 동양의 음양사상에서는 엄마를 땅, 아빠를 하늘에 비유합니다. 아이를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한다면 땅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비와 햇빛을 받아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죠. 하지만 지금 제주 아이들의 처지는 비와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나무와 같습니다.

인간의 성장이란 측면에서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엄마가 육아를 주도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제 경험기를 통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는 요즘 '나무' 때문에 고민이 깊습니다. 애월의 광령에 살다 보니 광령초등학교 운동장에 놀러갈 일이 많습니다. 거기에는 오래된 아름드리 나무가 참 많죠. 아이들은 나무 위에 올라가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아이 엄마와 할머니는 위험하다고 반대합니다. 나무에 올라가는 날에는 부부싸움도 각오해야 합니다. 한 번은 아이들과 엄마 몰래 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다섯 살배기 둘째 아이가 손가락에 조그만 상처가 났습니다. 둘째 녀석은 엄마한테 아프다고 울면서 낮에 있었던 일을 다 자백해 버렸습니다. 저는 참 난처했습니다.

아이들이 나무 위에 올라가고 싶어하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저도 어릴 적에 나무 위에 올라가는 걸 좋아했어요. 나무타기를 어찌나 잘 하는지 별명이 '원숭이'였습니다. 어린이들이 나무타기를 하면 모험심이 한껏 충족될 뿐만 아니라 체력이 강해집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평생 동안 먹고살 수 있는 '이야기'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엄마에게만 길러지거나 육아에서 엄마의 의견이 지배적인 가족에게는 이런 기회가 차단됩니다.

book-659203_640.jpg

이런 특징은 심리학자 매슬로가 제시한 유명한 욕구단계설로도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직접 낳았기 때문에 두뇌 중에서 가장 근원에 있는 부위의 역할을 합니다. 즉, 뇌간과 변연계입니다. 이 부위는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담당합니다. 요컨대 엄마의 의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생명과 안전입니다. 나무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죠. 아빠는 엄마에 비해서 멀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부위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바로 두뇌의 전전두엽입니다. 전전두엽은 이성을 담당합니다. 전두엽은 총괄기획과 계획 등을 담당하고, 전전두엽은 감정의 제어와 합리적인 타협 등을 담당한다고 합니다. 제가 부모강의를 할 때 흥미를 끌었던 비유는 부모와 정부기관의 비교였습니다. 아빠는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을 담당하고, 엄마는 경찰청, 행정안전부, 검찰청, 국정원 등을 담당한다고 비유했죠.
 
앞서 제주 아빠 관찰기에서 남자와 아빠는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 이치로 여자와 엄마도 역시 다릅니다. 아빠가 엄마와 친구, 고양이 등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처럼 엄마는 아빠와 친구, 나무 등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엄마는 여성의 본능적인 한계에 머물러 있으면 아이의 성장을 방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바닷가에 갔을 때 바닷물을 무서워하는 예닐곱 살 여자아이를 보았습니다. 아이는 아주 어릴 적부터 자연에 노출되어야 자연을 장난감처럼 다룰 수 있습니다. 엄마의 보호를 오랫동안 받은 아이는 자연으로부터 차단될 수밖에 없죠. "자연은 최고의 친구이자 스승이다"라는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위태로운 모습입니까.
 
육아의 제자리 찾기
 
육지에서 가족 놀이 수업을 할 때 많이 썼던 주제는 '감정 놀이'들이었습니다. 감정을 다친 아이들이 워낙 많아서 감정과 관련된 놀이를 많이 만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 '자연 놀이'를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주가 세계적인 자연 관광지이지만 아이들은 자연으로부터 차단되었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새가 한쪽 날개만으로는 날 수 없듯, 육아 역시 엄마만의 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제자리로 와야 합니다.
 
덕으로써 나라를 잘 다스린다는 것을 별에 비유하면, 북극성이 제자리를 잘 지키고 뭇 별들이 그 주위를 질서정연하게 돌고 있는 것과 같다
- <논어>, 위정편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가정을 다스리는 일은 비슷한 이치이므로 역시 제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빠는 아빠의 자리, 엄마는 엄마의 자리를 차지하고 서로 영향을 주면서 육아를 하면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목표로 삼고 육아를 하면 참 좋겠죠. 하지만 지금의 제주 상황에서는 먼 목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부가5.jpg
이 글에서는 놀이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자연마음 그리기'놀이입니다. 한 사진작가가 소년원의 아이들과 사진작업을 했던 <꿈꾸는 카메라>라는 책을 보고 힌트를 얻은 놀이입니다. 주말이나 휴일 오전 가족들이 손을 잡고 공원이나 숲에 가서 눈에 보이는 자연물을 채집합니다. 나뭇잎, 솔방울 등 많은 자연물이 있죠. 이 놀이를 한 한 엄마는 유년시절로 돌아가는 귀중한 경험을 했다며 즐거워했습니다. 한껏 모은 자연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 탁자 위에 펼쳐놓습니다.

이번에는 집안에서 찾을 수 있는 자연물을 모읍니다. 감귤, 양파, 사과 등 냉장고에는 자연물이 가득하죠. 자연물을 모았다면 이번에는 마음속에 있는 그림을 그릴 차례입니다. 감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정물화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이미지를 떠올려 보고 그것을 그립니다. 그래서 '자연마음'이죠. 예컨대 감귤을 까서 두 개를 포개놓으면 나비 모양이 됩니다.

그렇게 감귤나비를 그릴 수도 있죠. 처음에는 아이들 마음속에 그림이 잘 안 떠오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림이 떠오릅니다. 제주의 가족들은 이 놀이를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놀이를 할 때는 <나무 하나에>라는 그림책을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자연의 축복을 받은 이 섬에 사는 사람이라면 역시 자연의 향기가 가득 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 글은 글쓴이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내용으로 실제 제주 어머니들의 모습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140자 Q & A 상담코너]

5. 아이가 강아지를 무서워해요

Q = 6세 남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아이가 공원에서 강아지를 보고 놀란 적이 있는데, 요즘은 조그만 강아지만 보면 질겁하고 울려고 합니다. 무섭지 않다고 말해도 소용없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 강아지 같은 동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네요. 이 때 부모가 가장 피해야 할 행동은 “괜찮아”라는 말과 아이 앞에서 동물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성인까지 이어질 수 있어요. 어떤 부분이 무서웠는지 말하게 하고 스스로 경험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 독서지도사 오승주 씨에게 자녀들의 학습방법과 독서 등에 관한 궁금한 점을 이메일로 상담할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 dajak97@hanmail.net

160111_181090_0823.jpg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