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교육적·교훈적 가치 인정…유형문화재 지정예고

▲ 의녀 김만덕 영정 ⓒ제주의 소리
조선 정조때 기녀(妓女)의 신분으로 아사 직전의 백성을 구휼한 의녀(義女)이자 세상의 흐름을 꿰뚫는 안목으로 출중한 수완을 발휘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거상(巨商)인 김만덕 의녀 묘비가 지방문화재로 지정된다.

제주도는 제주시 건입동 묘충사에 있는 김만덕 묘비를 제주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키로 하고 27일 예고했다.

도는 김만덕 묘비가 김만덕 의녀의 삶과 연결해 충분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으며, 비록 묘는 이장됐으나 비문에 남아있는 김만덕 행적에 대한 교육적, 교훈적 가치와 제주여성의 위상을 세웠다는 입지에서 볼 때 문화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고 문화재 지정 예고사유를 밝혔다.

김만덕 묘비는 순조 12년인 1812년 11월 21일 건립된 것으로 가로 47cm, 높이 95cm, 두께 13cm로 현재 묘충사로 옮겨져 있다.

의녀 김만덕은 양가의 딸로 태어났으나 어릴적 부모의 죽음으로 천애의 고아가 되고, 기녀로서 크게 성공했으나 가족의 명예를 위해 성공이 주는 명성과 안일한 행복에 대한 집착을 끊어버린 인물이다.

조선 후기 어려움의 대명사격인 '갑인년(1794년) 흉년'에 전 재산을 내놓아 1100여명을 살려냄으로써, 벌기보다 쓰기가 어렵다는 돈을 어떻게 써야하는 지를 일찍이 몸으로 실천한 주인공으로 당시 제주목사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임금이 상을 내리겠다고 하자 "금강산 유람 이 소원"이라며 유혹(?)을 뿌리친 소박한 성품의 소유자이다.

18세기 후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다산 시문집'을 통해 "김만덕에게는 세 가지 기특함과 네 가지 희귀함이 있다"고 칭송하기도 했다. 

정약용은 '탐라의 기생 만덕이 얻은 진신대부(搢神大夫)의 증별시권(贈別詩卷)에 제함'이란 제목의 한시에서 "을묘년(1795년) 탐라에 흉년이 들었는데, 만덕이 의연금을 내 구원해 줬다"며 "그의 소원이 금강산을 구경하고자 함이었는데, 임금의 분부로 소원을 들어주게 했다"라고 김만덕을 소개했다.

   
정약용은 “만덕을 위해서는 좌승상 채제공(蔡濟恭)이 소전(小傳)을 지어 매우 자세하게 서술하였으므로 나는 덧붙이지 않겠다”고 말한 후 “나는 만덕에게는 세 가지 기특함과 네 가지 희귀함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면서 만덕을 평가했다.

정약용은 세 가지 기특함에 대해 기적(妓籍)에 실린 몸으로 과부로 수절한 것, 많은 돈을 기꺼이 내놓은 것, 바다섬에 살면서 산을 좋아하는 것이라 했다.

네 가지 희귀함에 대해서는 여자로서 중동(重瞳·겹으로 된 눈동자)인 것, 종의 신분으로 역마(驛馬)의 부름을 받았으며, 기생으로서 중(僧)을 시켜 가마를 메게 하였고, 외진 섬사람으로 내전(內殿)의 사랑과 선물을 받은 것이 희귀하다고 평했다.

정약용은 이어 "아. 보잘 것 없는 일개 여자로서 이러한 세 가지 기특함과 네 가지 희귀함을 지녔으니, 이 또한 하나의 대단히 기특한 일이다"라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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