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초대석] 전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장 이효연 “선 보전 후 개발? 이젠 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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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제주도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는 도정의 거수기나 다름없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규모 자연파괴를 수반하는 개발사업에 있어 사실상 키를 쥐고 있는데도 말이다. 심하게 말해, 임무 방기, 일종의 배임(背任)이었다.

인적 구성도 문제였지만, 환경영향평가서에 중대한 하자가 있어도 ‘부동의’를 할 수 없는 제도적 탓도 컸다. 여느 도정이나 출범 당시엔 ‘선(先) 보전 후(後) 개발’을 부르짖었지만, 결국 공염불에 그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지난 1일 활동을 마감한 제7기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제도적 한계 때문에 ‘원천 봉쇄’까지는 아니어도, 굵직한 개발사업에 매번 제동을 걸었다. 상가리(한류문화복합시설), 한림해상풍력, 무수천(블랙파인리조트) 등이 대표적이다. 송악산 개발은 심의 안건으로 올라오지도 못했다.

본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그 중심에는 이효연 위원장(54.제주대 생명공학부 교수)이 있었다. 지금은 친정으로 돌아가 아열대원예산업연구소 소장을 맡은 이 전 위원장은 그 공(?)을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을 꺾지않은’ 위원들에게 돌렸다. 자신은 조정역(役)에 지나지 않았다고 몸을 낮췄다.

“사실 저도 이 자리(위원장)를 맡기 전까지는 제주 환경에 대해 그렇게 깊이 알지는 못했습니다. 4년 동안-그는 연임까지 총 4년의 임기를 채웠다-환경, 개발과 관련된 사업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제주의 자연환경이 어떠해야 하는지, 미래를 위해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개발을 한다면 어떤 식이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했죠. 어려움도 있었지만, 큰 공부가 됐습니다. 새롭게 볼 수 있는 눈도 갖게 됐고요”

‘도정 거수기’ 탈피, 소신 꺾지않은 위원들 때문에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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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어떤 일이 있었길래 호평이 따르는 걸까?

재일동포 자본이 투자되는 상가리는 두 번째 재심의 결정이 내려졌고, 한전 자회사가 추진하는 한림해상풍력은 네 번째 재심의 결정이 났다. 중국자본 유치로 관심을 끈 무수천은 한 번의 재심의 결정 끝에 가까스로 조건부 동의를 얻었다. 한림해상풍력의 경우 번번이 막히자 사업자가 포기 가능성을 운운하는 압박 카드를 쓰기도 했다.

깐깐하게 군 이유가 궁금했다.

“상가리는 위치 자체가 해발 600m, 산록도로 위쪽입니다. 원희룡 도정도 개발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선을 그은 곳이죠. 뿐만 아니라 희귀 동.식물, 주민 협의 미비, 과다한 공유지, 난개발 우려 등 대단히 문제가 많습니다. 한림해상풍력은 대형 발전기 28기가 들어섭니다. 경관이 수려한 애월읍 구엄리부터 차귀도 쪽 신창리까지 해안 어디서든 날개(블레이드)가 보이게 되죠. 드라마든 영화든 앞으로 이들 지역에선 그래픽으로 (날개를)지우지 않는한 촬영하기 힘들 겁니다.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조사도 부실했구요. 경제적 효과가 있긴 있는 건지, 충분한 기술검토가 이뤄졌는지도 미심쩍은 부분입니다. 국내 최초의 해상풍력 사례가 될 텐데, 검토는 지나칠수록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환경평가심의 때문에)사업을 포기한다구요? 정 그렇다면 상관 없습니다. 제주의 자연 환경이 테스트베드가 돼선 안됩니다”

송악산을 언급할 때는 목소리가 커졌다. ‘굉장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했다. 사실상 오름에 호텔을 세우겠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거니와, 진지동굴이 무너질 수 있는 위험성, 경관의 사유화를 경고했다. 특히 중국계 자본은 송악산을 빙 둘러 대부분의 땅을 사들였다며, 송악산 자체가 사유화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탄했다. 그러나 임기가 다한 지금, 송악산은 그의 손을 떠났다.

송악산, 사실상 중국자본에 사유화 “오름에 호텔 짓겠다니...”

사사건건(?) 문제를 삼다보니 압력이나 회유가 없을리 만무했다.

‘당신들 때문에 개발을 못하게 됐다’는 압력을 수도 없이 받았다고 했다. 전화로, 메일로...

언제적인가, 항간의 소문이 떠올랐다. 업자 측에서 돈다발을 들고 온 일도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조심스럽게 “과거에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면서도 각종 연고로 얽힌 지역적 특성상 유혹에 취약한 구조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러한 영향을 덜 받는 인적 구성을 주문했다. 직접적으로는 객관성이 문제될 수 있는 이해당사자, 건설업자, 퇴직 공무원 등의 배제 필요성을 언급했다. 

거꾸로 ‘개발이고 뭐고 다 필요없으니 조상들이 해왔던 대로만 이용하게 해달라’는 요구도 많았다.

“심의 당일, 플래카드까지 걸어놓고 개발을 막아달라고 호소하니까 처절한 느낌이 듭디다. 도처에 민원을 넣어도 먹히지 않으니까 마지막으로 우리한테 와서 사정한 셈이죠”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제도적 한계까지 넘어설 순 없었다.

알다시피, 환경영향평가심의위는 제주도 조례상 ‘동의’ ‘조건부동의’ ‘재심의’ 세 가지 중 하나만 취할 수 있다.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경우가 ‘재심의’에 해당한다. 이러니 중대한 결함이 있어도 재심의 결정만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환경부 예규(환경영향평가서 등에 관한 협의업무 처리규정)에는 ‘부동의’까지 할 수 있게 명시됐다. 엇박자인 셈이다.

또한 같은 제주도 소속 위원회면서 도시계획위원회나 경관위원회, 지하수관리위원회 등은 부동의가 가능한 점도 문제다. 환경단체들이 줄기차게 조례 개정을 요구하는 이유다.

중대 하자 있어도 ‘재심의’만 반복...‘부동의’ 권한 부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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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큰 문젭니다. 하루빨리 고쳐져야 합니다. 제주특별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부동의도 가능했습니다. 도의원도 심의위에 참여했고요. 지금처럼 도의회에만 부동의 권한을 부여하면 정치적 판단으로 흐를 수가 있습니다. 재밌는 사례가 있습니다. 축산분뇨 처리과정에서 나오는 가스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국고보조사업이 있었습니다. (축산 비중이 높은)제주에는 꼭 필요한 사업이었죠. 세 지역에서 동시에 신청을 했는데, 두 곳은 도의회에서 잘 넘어갔지만, 나머지 한 곳에선 브레이크가 걸렸지 뭡니까. 똑같은 사업인데도요. 이유가 뭐였겠습니까? 도의회로 넘어가기 전에 심의위 단계에서 도의원까지 위원으로 참여해서 충분한 논의를 하고, 동의 또는 부동의를 그어버리면 정치적 판단도 배제하고, 결과적으로 도의원들의 짐도 덜어지지 않겠습니까?”   

재심의 결정을 내려도 불과 한달도 안 돼 다시 심의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보완하는데 족히 1년은 걸림직한 사안도. 담당부서는 민원처리 기한이란게 있고, 심의위도 심의를 거부할 권한까지는 없으니까.

“이건 아니죠.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고치지는 않고 자꾸 위원들에게 로비나 하다 보면 위원들도 제풀에 꺾일 수 있습니다. 안되는 건 처음부터 안된다고 딱 잘라야 합니다”

이 전 위원장은 그 대안으로 사업 대상지를 선정할 때부터 외부 전문가와 환경단체 관계자를 참여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 지역이 개발해도 될 지역인지 아닌지는 딱 보면 안다는 것이다. 그래야 불필요한 소모전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환경평가 일부 업체 독식...심의위 회의, 공개 못할 이유 있나?

환경영향평가 제도 자체의 문제점도 짚었다. 비용 부담도, 대행업체 선정도 사업시행자가 ‘알아서 하는’ 지금의 구조로는 제대로된 환경영향평가를 기대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대행업체요? 손에 꼽습니다. 4년동안 봤는데, 5개 안팎의 업체가 다 맡더군요.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사업이 한 두개도 아닌데, 인원이 얼마나 된다고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열악하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 사람(대행업체)들은 그게 생계수단이니까 돈 주는 사람(사업시행자)들의 입맛을 맞출 수 밖에. 문제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가장 좋은 것은,  제3의 기관에서 비용을 부담하면 절대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예를 들어 제주도 같은 곳이 될 수 있겠죠. 재정 때문에 못한다구요? 그건 자치단체 의지 문젭니다. 경남 창원에 가봤더니, 엉터리 평가서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대행업체는 더 이상 수주를 못하게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더군요. 좋습니다. 돈이 없다면 차선책으로 창원의 사례를 벤치마킹해도 되지 않을까요?”

인터뷰 내내 이 전 위원장은 환경영향평가심의위 회의의 철저한 공개를 강조했다. 지론처럼 들렸다. 그만한 명분이 있었다. 우선은 제주의 자연환경을 다루는 문제인데,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거였다. 또 공개해야 사적인 이해를 배제할 수 있다고 했다.

“심의를 하다보면, 치열한 논의를 거쳤는데도, 꼭 ‘원안동의’를 하는 위원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정해져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환경단체를 제외하고 대부분 제주 출신이 아닌 위원들이 ‘재심의’를 요구합니다. 이게 뭘 의미할까요? 그럴 때마다 퀘스천이 생깁니다.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제주인이 아니다?’, ‘누가 제주 자연을 정말 사랑하는가?’”

승인 받은 사업만 4년 걸려...보전 쪽으로 아젠다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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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기 위원회, 그러니까 2011년부터 4년간 위원장을 맡은 이 교수는 우근민 도정의 환경정책을 쭉 지켜봤고, 원희룡 도정의 그것도 간을 봤다. 그런 그에게 역대 도정의 환경정책은 어떻게 다가갔을까?

“김태환 도정 때는 (보전이)약했습니다. (제주)특별법도 만들고, 그에따라 대규모사업도 일으켜야 했으니까요. 일단 그게 탄력을 받으니까 우근민 도정 들어서도 말은 ‘선 보전’이라고 하면서도 브레이크를 걸 수 없었던 거죠. 그러다보니 오늘에 이르러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 겁니다. 중국자본, 숙박사업 변질...이제는 ‘선 보전 후 개발’도 아니고, 보전으로 가야 합니다. 제주의 환경 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아젠다를 잡아야지, 개발을 늘리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현재 승인이 난 사업만 해도 4년 후까지 이어질 겁니다”

전남 순천 출신인 이 전 위원장은 서울 생활을 빼면 11년을 순천에서 보냈다. 1992년부터 2003년 2월까지 국립 순천대에서 교수로도 재직했다. 그러다가 제주대로 적을 옮겼다.

뜬금 없는게 아니었다. 제주대(원예학과)를 나온 것이다. 대학을 다니면서 ‘언젠가는 제주에서 살겠다’고 작정했다. 일본 토호쿠(東北)대학교에서 농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제주대 교수로 부임해서는 기획처장까지 역임했다. 그 때 교대 통합, 수의과대학-로스쿨 설립 등을 지켜봤다. 2011년 7월부터 2년은 교육과학기술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으로도 참여했다.

이 전 위원장의 환경의식은 어쩌면 태생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제주 사람’이 다 됐지만, 그의 고향 순천 만에는 동천(東川)이라는 하천이 있다. 한때 생활하수로 아주 지저분했고, 보잘곳 없던 곳이다. 지금은 잉어가 올라오고, 두루미가 찾는 1등급 하천으로 변모했다. 동천을 살리기 위한 범시민 운동의 결과였다. 이 전 위원장에 따르면 동천은 ‘없는 데’를 명소로 탈바꿈시킨 경우다. 반대로 제주도는 ‘내버려둬도’ 이보다 좋을 수 없는데, 1년이 멀다하고,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냥 둬도 좋은 제주, 있는 것까지 없애가며 개발 못해 안달

이 대목에서 그는 ‘3SOS' 운동을 주창했다. 과거 샛강살리기운동 당시 등장했던 SOS(Save Our Stream)에서 착안했다.

우선 흙(Soil : 토지, 산)을 보전하면 바다(Sea)를 지키게 되고, 산과 바다가 구해지면 우리의 영혼(Soul)을 구하게 된다는 뜻이다.

“SOS는 위급할 때 쓰는 구호 아닙니까? 제주도는 그 어느 때보다 이게(3SOS)필요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그는 ‘교육도시’ ‘환경도시’로서 순천의 사례를 몇가지 더 소개했다. ‘조정래 문학관’(보성군), 산과 댐, 개천의 친환경적 이용...순천은 없는 것도 만들면서 가꿔가는데, 제주는 있는 것 까지 없애가면서 개발을 하지 못해 안달이라고 혀를 찼다.

“(관광객들이)자연을 보러 오지 건물을 보러 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1차적 가치는 뭐죠? 잠자리는 그 다음 문젭니다. 귤밭이든 뭐든 죄다 없애고, (구좌읍)월정리도 정동진처럼 돼 버렸습니다. 잘못 돼도 한참 잘 못 가고 있습니다”

이 전 위원장이 ‘현실적으로’ 원 도정에게 바라는 점은 딱 두가지. GIS(지리정보시스템) 등급을 세밀하게 가다듬은 일과, 이에 기초해 곶자왈이나 생태우수지역의 사유지를 매입하는 것이다.

보전이 필요한 곳은 죽었다 깨도 개발이 불가능하도록 못을 박되 해당 토지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 없으므로 제주도가 비축토지 매각 차익으로 기금을 조성하거나 ‘입도세’ 따위를 걷어 사유지를 사들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중국자본의 먹잇감이 되고 있는 마을공동목장을 지키기 위한 원 도정의 제도적 뒷받침을 당부했다.

공동목장은 이러저러한 유혹에 약할 뿐더러, 마을 사람들 것이면서 사실은 마을 사람들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환경영향평가 위원으로 닦은 내공을 발휘해 장차 환경단체에 가입해 활동해 볼까도 구상중이다.

“시민사회단체들도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하지 않습니다. 좀 더 전문적 지식을 갖고 여러 사안에 조언도 할 수 있고, 기술적 자문도 하면 상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담=김성진 편집국장
정리=김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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