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6) 지금은 ‘공자의 단념’이 필요한 시점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역사성과 새로운 사고를 갖춘 미래의 제주인을 꿈꾸며

2005년 대치동 논술학원에서 일할 때 제주에서 온 여고생이 방문했습니다. 그 학생은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었습니다. 서울대를 목표로 하고 상담을 받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 당시는 논술이나 입시컨설팅의 붐이 일어났지만 제주도에는 대비해주는 곳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오거나, 아예 유명 논술학원이 지점을 개설하기도 했습니다. 벌써 10년도 지난 일이지만 그 당시 제가 느꼈던 슬픔은 생생합니다.

지방에 살면서 입시를 위해 원정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모습은 일상적이지만 이상하게 굴욕감이 들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도 저를 더 슬프게 했습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 빚을 진 느낌이었습니다. 2015년 저는 제주에서 제주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제주 아이들을 만난 곳이 제주라는 점은 저를 가슴 뛰게 합니다. 제 목표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 주는 것입니다. 새로운 경험 중에는 ‘공부’도 포함됩니다.

지난 3월 21일 항몽유적지 역사탐방을 한 것은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현장에서 역사와 제주의 이야기를 느끼고 배우는 것은 아이들이 지금까지 별로 해보지 않은 경험입니다. 그 외에 놀이수업, 논어 동시 쓰기대회, 독서게임, 그림책 논술수업 등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계속 시도하면서 새로운 사고를 자극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의 인간이든 머리는 미지의 세계를 향하지만 발은 과거를 밟고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 균형을 얼른 잡는 사람이 결국 미래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관건은 과거의 관습들입니다. 이제까지 해오던 공부법이나 경험들을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인 사람은 과거에 가까운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넓은 세계의 경험이나 고전의 지혜 등을 폭넓게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관습이 그리 두꺼운 벽은 아니죠. 이 원리만 이해하고 실현할 수 있다면 10세대 이후의 미래도 가늠할 수 있다는 게 공자의 생각이었죠.

자장이 물었다. “300년 이후의 일도 알 수 있을까요?” 공자가 답했다.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법을 계승했고,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법을 계승했으니 더해지고 깎인 부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렇게 역사와 문화의 발전 맥락을 잘 살펴보면 300년이 아니라 3,000년 후의 일이라고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 『논어』, 「위정」 편

공자는 자신에게 연결된 문화를 계승하되 새로 창조해내지 않는다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을 공부의 기본자세로 삼았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처럼 감히 새로 만들지 않는다는 공자의 태도는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항상 역사와 자기 자신을 연결하며 생각하고, 그 연속선상에서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역사적인 인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역사탐방의 첫 번째 현장을 항몽유적지로 삼은 취지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삼별초군에 시달리고 몽골군, 고려군에 시달린 고려 시대 제주 조상들의 고단한 삶을 생각하고, 무장대에 시달리고 토벌대에 시달린 제주 4.3 당시 제주 주민들의 고통스러웠던 삶을 생각해야만 제주도 사람으로서의 역사성과 정체성이 바로잡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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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짧은 시간에 세계 강국이 된 까닭

일본은 고립된 섬나라에 위치해 있으면서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게 선진문화를 많이 배웠고, 조선시대에도 성리학을 배웠습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퇴계학을 공부하려면 일본으로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배우던 일본이 어느 순간 러시아, 중국을 물리치며 세계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조선을 병탄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 궁금했습니다.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바꾼 시간은 1845~1945년까지 100년이라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렸고,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외부의 충격을 애써 무마하려고 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중국이 서구 열강에 농락당하는 것을 보고 적극적으로 외부 충격을 받아들였습니다. 유럽과 미국 등에 파견된 사절단은 유용해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연구하고 수입했죠. 유학생들은 각자 특정한 분야의 서양학문을 공부해서 전문가가 되었고 귀국한 후에는 국민들에게 체계적으로 지식을 전수했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구미에 파견된 일본 유학생의 행보입니다. 그들이 일본의 미래에 든든한 노둣돌을 놓았기 때문에 대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식을 대로 식어가고 있고 사회적인 변화의 바람 역시 멎은 듯합니다. 이 현상이 우리 ‘어른’들에게 말해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지금은 ‘공자의 단념’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공자는 스스로 사회를 변혁시키려고 동분서주하다가 결국 제자 양성의 길로 진로를 바꿉니다.

저 역시 시민운동, 정치운동 등을 하다가 제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접었습니다. 제가 실패하면서 얻은 경험을 아이들에게 전수하며 그 아이들이 자라서 내 실패한 꿈을 이어받게 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자처럼 저도 단념하기까지는 수년의 세월이 필요했지만, 막상 스스로 해결하려는 생각을 단념하고 보니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습니다.

앞서 일본이 100년의 시간을 탄탄히 준비했듯, 제주에 연고를 두었거나 관련이 있는 어른들은 지금부터 30년의 시간을 탄탄히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제주만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140자 Q & A 상담코너]

6. 아이를 혼냈어요

Q =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이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해서 혼냈습니다. 아이는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는 듯하더니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 아이가 중학교 정도 들어갔다면 혼내는 일과는 슬슬 작별을 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아이는 이미 부모의 사정권을 벗어났습니다. 오히려 반감만 높일 뿐입니다. 차라리 아이의 욕구불만 하나를 해결해주는 게 몇 배 더 효율적인 대응법입니다.

 * 독서지도사 오승주 씨에게 자녀들의 학습방법과 독서 등에 관한 궁금한 점을 이메일로 상담할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 dajak9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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