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심의위 개편되자마자 상가관광지 '조건부동의'...조례 위반, '가이드라인' 무색
특히 중산간 일대에서도 가장 고지가 높은 해발 500~540m의 상가관광지 개발사업을 원 지사가 임명한 심의위원들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조건부 동의'함으로써 원 도정의 중산간 보전 의지가 의심을 받게됐다.
더구나 제주도는 스스로 환경영향평가 조례를 위반하고, 작정한 듯 사업자 편을 들며 심의위원들에게 통과를 압박했다.
무분별한 개발을 지양하고, 여러 차례 제주의 경관과 환경을 강조해 온 원 지사의 발언은 '허언'이 되고 말았다.
제주도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위원장 김보영 제주국제대 교수)는 17일 오후 1시30분부터 도청 2층 회의실에서 '상가리 관광지 조성사업 환경영향평가'를 심의했다.
상가리 관광지 조성사업은 그동안 원 지사가 공언해 온 개발 가이드라인에 위반되는 내용이어서 원 도정 환경정책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시금석이었다.
사실상 개발 드라이브 정책을 펼쳤던 우근민 전 도정에서도 여러차례 제동이 걸렸던 '상가리 개발사업'이 원 지사가 위촉장을 새롭게 수여한 지 보름도 안돼 원 지사의 '부름'을 받은 위원들에 의해 단숨에 통과됐다.
이날 심의에는 15명의 위원 중 14명이 참여했다. 심의 결과 환경단체 추천 위원 3명만 '재심의'를 요구했고, 나머지 8명은 '조건부 동의', 3명은 '원안 동의' 의견을 냈다.
조건부 동의는 환경부 멸종위기종인 '애기뿔소똥구리' 보호방안을 마련하고, 사업부지 내 국공유지 소유권을 놓고 제주도와 지역주민이 소송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사업자에게 주민동의를 얻도록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이날 심의위는 회의 시작부터 논란이 일었다. 제주도 환경영향평가조례에 따르면 심의위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7일 전에 회의 통보와 함께 회의 자료를 심의위원들에게 넘겨야 한다.
하지만 이번 심의위는 13일에야 회의 소집을 통보하고, 자료도 13일 심의위원들에게 제공했다. 명백한 조례 위반이다.
제주도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7일 전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해명했지만, 상가리 관광지 조성사업은 이미 2차례나 재심의를 받은 사안이어서 긴급 상황이라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제주도는 본안 심의를 평가서가 제출된 날로부터 45일 이내에 해야 한다고 해명했지만, 상가관광지는 이미 45일을 훌쩍 넘긴 상황이었다.
대부분 심의위원들이 교체되면서 사업부지 현장 방문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사업자측은 마을과 협의가 끝났다고 주장했지만 이마저 사실이 아니었다.
상가마을공동목장 조합장은 현장에서 사업자측 주장에 "마을과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반박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후 3시부터 다시 진행된 심의는 언론에 공개할 지 말지를 놓고 무려 45분간 격론을 벌인 끝에 공개로 결정됐다. 우근민 전 지사가 임명한 환경영향평가심의위는 지난 2년간 대부분 회의를 공개한 바 있다.
공개된 심의에서 도청 공무원들은 노골적으로 사업자의 편을 들었다.
이양문 관광산업과 일괄처리담당은 "원희룡 지사가 지난해 7월30일 대규모 투자사업과 관련해 평화로 산록도로 위 한라산 방면은 개발사업에서 배제하기로 발표했다"며 "이번 사업은 비록 지사님의 발표(내용)에 저촉이 되지만, 2010년 도시관리계획으로 지정됐고, 2011년부터 3년 동안 행정절차를 밟아왔기 때문에 새롭게 정지시킬 수 없다. 행정의 일관성, 신의성실의 원칙을 감안해서 추진하고 있다"고 원 지사의 개발 가이드라인과 무관함을 강조했다.
그는 "지역주민 관계(동의)는 제주도가 더 챙겨서 주민 민원을 해소하는 데 적극 노력하겠다"며 "제주도가 관광휴양형개발지구로 2010년 지정했고, 관광지를 개발할 수 있도록 일본에서 투자를 유치했고, 투자자의 선친이 제주도 사람"이라고 사업자 편을 들었다.
문순영 환경보전국장은 "원 도정 출범 이후 개발사업은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하지만 만일 여기 사업이 불신임되면(제동이 걸리면) 사업자가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며 "심의위원들은 그런 맥락에서 봐주셔야 한다"고 사실상 '무사통과'를 압박했다.
국공유지를 사업부지에서 배척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문 국장은 "공유지는 매각하지 않고 임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영웅 위원은 "원희룡 지사가 취임하면서 (이미)건축허가가 난 드림타워에 대해 사업 제동을 걸어서 층수를 낮췄다. 제주도가 의지를 가지면 사업을 축소할 수 있다"며 "도유지는 공공용지인데 수익 목적의 사업에 제공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제주도가 이상한 행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성환 위원은 "그동안 두차례나 재심의된 사업인데 원 지사가 새로 임명한 심의위에서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식으로) 곧바로 조건부 동의를 내줬다"며 "제주도가 의도한 사업은 무조건 통과될 것 같다. 환경영향평가심의위가 다시 다시 거수기로 전락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이날 환경영향평가심의에 앞서 제주지역 환경단체는 도청 현관 앞에서 기습 피켓시위를 벌였으나, 약 5분만에 공무원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이 때문에 한동안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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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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