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웅변대회 참가 후기

"찬우, 할머니는 어때요?"
"너무 서운해 하지 뭐."

4.3 웅변 대회를 치르고 나서, 참가자 학부모들의 식사 자리다.

찬우라는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4,3은 12'라는 연제로 웅변을 한 아이다. 조그맣고 통통한 얼굴이 이 아이가 연단에서 스물 여섯살에 할아버지를 잃고 혼자된 할머니의 이야기를 할 때, 관람석 중간에 앉은 아이의 할머니는 쉴새 없이 울었다.
아이가 다 끝나 할머니에게로 돌아 왔을 때도 할머니는
지난 50여년 세월을 되돌아 보며 울고 있었다.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 주는 손주를 보며,
이것이야말로 4,3 웅변대회의 대상감이라 생각한 나였다.


벌써 십여년이 지났는가.
하얀 벗꽃이 눈처럼 날리는 거리에서 '4,3 진상 규명하라'
외치던 내가, 다시 그 계절에 딸 아이를 데리고 4.3 웅변대회에 참가했다.
십여년만에 역사는 분명 한걸음 내딛였다.
그러나, 열 두살의 아이에게 이 잘못된 역사를 어떻게 설명해 줄까, 고민이 되었다.
아이를 조퇴 시켜가며, 섣알 오름 양민 학살터를 보여 주었다.
아이는 그 산을 오르며, 억울하게 죽어간 넋들이 고여 있는 죽음의
구덩이 앞에서, 연습을 했다.

찬우의 할머니가 4.3의 직접 피해자라면, 우리 세대는 그 아픔을 들추어낸 세대이고, 우리 아이들은 그걸 넘어서야 하는 하는 세대다.
찬우나 내 딸 아이는 수상권 안에 들지 않았지만, 진정 온 몸으로 웅변을 했고, 가슴 깊이 이 사실을 받아 들였다.

"아이들도 이번에 많이 배웠을 겁니다. 이런 대회 아니였으면,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문제 아닌가요?
상이나 상금은 그리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을 받은 아이의 엄마들이 미안한듯, 참가상이라도 다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말에 내가 말했다.

자꾸 찬우와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송악산을 오가며, '송악산 가는 길'이라는 웅변을 한 내 딸 아이의 외침도 다시 들리는 듯하다.
내 딸도, 찬우도 훌륭하게 자기 주장을 외쳤다.

아이들은 사실 모두 1등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들에게, 역사를 이만큼 일깨워 준 것,
그게 이번 4.3웅변대회의 의의가 아닐까.
또한, 이시점에서 4,3이 갖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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